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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22 2026 12:09 PM
‘도대체 그 연은 어디로 갔을까?’하며, 며칠을 지하실과 창고를 찾아다녔다. “여보, 우리 이민 왔을 때 그, 스카버러 콘도에 걸려 있던 연, 기억나지?” 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벌써 몇 번을 물어보네. 그 연,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라고 한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이니까, 1998년 말이지 싶다. 한국 전통연(鳶)을 평생 연구한 노유상(盧裕相) 선생의 전시회에 갔었다. 서울 인사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하늘을 수놓는 소망의 날개 짓>이라는 부제로 열린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는 단순한 민속품 전시를 넘어, ‘전통 방패연’을 현대적 미술 작품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노유상이 평생을 바쳐 고증하고 복원한 72가지 전통 문양 방패연이 전시되어, 미술계뿐 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방문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노유상 선생은 당시 90대 중반의 고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관람객에게 방패연의 방구멍 원리와 문양에 담긴 뜻을 알려주는 열정을 보였다. 나는 운 좋은 몇 관람객과 함께 직접 그의 설명을 들 수 있었다.
“연은 하늘에 띄워야 제 맛이지만, 이렇게 벽에 걸어두고 그 문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조상들의 지혜와 복을 빌던 마음을 읽을 수 있죠” 하며 연, 하나하나의 의미와 제조 방법 등을 알려 주었다.
나는 당시 노유상 선생을 잘 알지도 못했고, 전통연에 대해서도 그리 관심도 없었지만, ‘순간’ 방패연에 빠져버려 거금(?)을 주고 연을 구입한다. 아마, 거의 한 달 정도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거실에 걸린 연을 봤던 기억이 있다. ‘아직 그 연을 가지고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살며 이런 일이 이것뿐이던가? 빨리 잊어야 마음이 편하다.
노유상은 1904년에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태어났다. 7세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연 제작과 날리기를 배운다. 당시 신촌 벌판은 연날리기가 좋은 장소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연날리기가 금지되어 몰래 연을 만들며 맥을 이어 갔다고 한다. 1930년대 일제는 우리 민족의 응집력과 문화적의 정체성 말살을 하고자 연 날리기를 금지시켰었다.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사이에 <한국민속연보존회>를 설립하고 사라져 가던 70여 종류의 방패연을 복원하여 체계화한다. 1992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고 2011년에 10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한국 전통연(鳶)을 평생 연구한 노유상(盧裕相) 선생은 <한국민속연보존회>를 설립하고 사라져 가던 70여 종류의 방패연을 복원하여 체계화한다.
노유상 명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외국 연은 바람을 막아서 뜨지만, 우리 방패연은 가운데 구멍으로 바람을 흘려보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집스럽게 버티기만 하면 부러지지만, 바람을 보낼 줄 알면 더 높이 날 수 있다”라며 연에 담긴 정신을 강조했다.
노유상 명인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연을 보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1970년대 말에 ‘연’이라는 불후의 명곡이 탄생한다.
1979년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라이너스(Linus)의 ‘연’이다. 라이너스는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출신 4명이 만든 밴드였다. 이 곡의 도입부의 베이스기타 라인과 ‘동네 꼬마 녀석들~’로 시작하는 신나는 멜로디 덕분에 응원가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작곡과 작사는 연대 의대생이었던 조진원이 만들었는데, 리더이자 보컬로 활동했다. 그는 의대 공부가 너무 힘들어 머리를 식힐 때, 기타를 잡았다고 한다. 조진원은 대학 졸업 후에도 여러 싱어송 가수들과 협업을 이어 간다. 대학원 시절에는 기독교방송 <꿈과 음악사이에>라는 프로그램을 1년간 진행하기도 했다.
연대 의대를 졸업한 뒤, 소아청소년 전문의가 되어 의원에서 일한다. 연세대에서 교수(시스템 생물학과)로도 활동하며 틈틈이 음악 작업도 하는 등 음악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고 있다.
노래 ‘연’이 탄생한 <TBC 젊은이의 가요제>는 1970년대 후반에 <MBC 대학가요제>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꾼 전설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당시 동양방송(TBC)에서 주최했지만, 1980년 11월에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TBC가 문을 강제로 닫는 바람에 이 가요제도 중단된다. 만약 이 대회가 계속되었으면 한국 록과 밴드 음악의 발전은 훨씬 빨랐을 것이라고 평론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 <TBC 젊은이의 가요제> 출신으로 활주로(배철수), 블랙테트라(구창모), 로커스트(김태화), 옥슨‘80(홍서범), 주병진(장두건과 주병진), 징검다리(왕영은) 등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는 캠퍼스 밴드 문화를 주도했다. 외국 팝송만을 번역해 부르던 시대를 떠나 ‘우리도 우리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이들이 기성 가요계로 진출하며 한국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1979년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우수상을 받은 라이너스(Lnus)가 ‘연’을 부르고 있다.
라이너스의 ‘연’은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돌아 가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서운 추위에도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어느 친구가 문방구에서 연이라도 사는 날에는 서울 성동구 신당 5동에서 금호동으로 가는 언덕 방향의 수도국산에 올라 연을 날렸다. 노래 가사처럼 말이다.
“동네 꼬마 녀석들 추운 줄도 모르고/ 언덕 위에 모여서/ 할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연을 날리고 있네.
꼬리를 흔들며 하늘을 날으는/ 예쁜 꼬마 연들 이/ 나의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세상 소식을 전해준다.”
이 노래의 도입부는 평화로운 유년 시절의 풍경을 그리며 향수를 자극한다. 연은 꿈과 구속 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상징하고 있지만, 멀리 떠나고 싶어도 결국 실에 묶여 다시 돌아와야 하는 운명을 표현했지 싶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당시 대학 밴드들이 추구했던 소프트 록(rock)과 펑키(funky)한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다. 곡 전체를 이끄는 경쾌한 기타 연주 기법은 곡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보컬의 담백하고 힘 있는 목소리는 기교보다는 진정성을 강조하며, 고음부에서 뻗어 가는 시원함이 투박하지만, 미숙한 매력이 있다.
그러고 보니, 라이너스의 ‘연’은 답답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하늘 높이 비상하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꿈을 노래한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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