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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기사

경제난·유혈 진압·혁명 붕괴...

팔레비 왕조 답습하는 이란 정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24 2026 11:04 AM


맹렬했던 이란 반정부 시위가 주춤하는 모양새입니다. 통신을 차단했던 이란 정부도 인터넷 복구를 고려해 본다고 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거리로 나섰지만,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수감됐을 정도로 잔혹했던 정부의 유혈 진압에 결국 수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시위를 독려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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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2024년 10월 테헤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이번 시위에서 이란 시민들의 진짜 목소리는 이란 정부의 인터넷 통제로 인해 밖으로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대신 미국에 거주하는 레자 팔레비 왕세자의 목소리가 자주 외신을 통해 보도됐는데요. 그는 이란 국민들이 혁명을 통해 쫓아낸 팔레비 왕가의 후손입니다. 이번 시위에 대한 미국의 적극 개입을 요청했던 그는 "이란으로 귀국해 시민들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이후 그가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현재 이란의 실권자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입니다. 직책은 대통령도, 총리도 아닌 '최고지도자(라흐바르)'입니다. 이란에도 대통령이 있긴 하지만.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위에 군림합니다. 군대, 경찰을 동원하는 것도 최고지도자의 권한입니다. 대통령이 선출되어도 최고지도자의 승인을 받아야 업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메네이는 누굴까요. 정치인? 군인? 둘 다 아닙니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율법학자입니다. 현재 이란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신정체제'입니다. 신정체제는 역사 속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드문 형태인데요, 이란은 어쩌다 팔레비 왕가를 쫓아내고 신정체제가 됐을까요?
 


경제 망치고 시민 탄압하던 팔레비 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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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이란혁명 시기 테헤란의 모습.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캡처

 

현재 이란의 공식 국호는 '이란이슬람공화국'입니다. 이 정권은 1979년 이란혁명으로 수립됐습니다. 이슬람공화국 이전 이란은 왕정 체제였습니다. 국왕 팔레비 2세는 '백색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급격한 서구화를 추진했고, 사회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토지개혁에 실패해 농민들은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했고, 백화점·대형마트를 지원해 전통 상인이 몰락했습니다.

물론 이란 경제에는 기댈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석유입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석유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석유를 팔아 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란 시민들의 삶은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일단 석유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왕실과 최측근에게만 돌아갔습니다. 반면 이란 시민들은 고물가에 허덕였습니다. 석유를 팔고 벌어들인 달러가 이란으로 쏟아져 들어와 화폐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입니다.

왕실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무지막지하게 탄압했습니다. 비밀경찰 '사바크'를 풀어 지식인, 대학생, 종교인을 감시하고 체포했습니다. 명목상 존재하던 야당마저 해산하고 독재 체제를 강화했습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정치적 탄압까지 더해지니, 이란 시민들은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시민들은 1978년 1월 거리로 나섰습니다.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참여 세력도 다양했습니다. 자유주의자, 공산당원, 대학생, 직장인, 종교학자 등 이란 내 모든 사람들이 '팔레비 왕정 타도'를 외쳤습니다. 팔레비 2세는 유혈진압을 하며 버텼지만, 1979년 1월 1년 만에 이란을 탈출했습니다. 폭정을 일삼던 팔레비 왕조가 사라진 것입니다.
 


국왕 사라진 자리... 이슬람 근본주의가 실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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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메네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사진. 하메네이 공식 홈페이지 캡처

 

왕이 사라진 자리, 권력을 잡은 건 이슬람 율법학자 루홀라 호메이니였습니다. 호메이니는 이란을 공화국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전면에 나섰지만, 진짜 목적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실권을 잡은 호메이니는 민주공화국 수립을 원하는 과거의 혁명 동지들을 '배신자'라며 제거했습니다. 호메이니는 정적을 모두 제거했고,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1대 최고지도자에 올랐습니다. 종신직이었습니다.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사회는 극도로 보수화됐습니다. 일단 헌법보다 이슬람 율법이 우선하는 구조였습니다. 여성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됐고, 외국 문화는 세속적이라며 배척했습니다. 특히 미국과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이란은 세계사회에서 고립됐고, 경제 제재로 인해 국가 경제는 늘 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왕정을 비판했던 이슬람공화국은 팔레비 왕조의 실정을 답습합니다. 이슬람공화국의 핵심 세력은 '혁명수비대'입니다.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호메이니가 기존의 이란군을 믿을 수 없다며 새로 창설한 군대입니다. 기존 이란군은 왕정에 충성했기 때문에 언제든 배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혁명수비대는 단순한 군대가 아닙니다. 현재 이란에서 돈 되는 이권사업의 대부분은 혁명수비대가 갖고 있습니다.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30~40%가 혁명수비대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에너지, 건설, 통신, 금융 등 알짜 사업을 갖고 있고, 막대한 수익에도 불구하고 세금도 내지 않습니다.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평범한 시민들은 경제적 과실에서 소외된 것이죠.

1989년 6월,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사망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다시 이란을 주목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지도자가 사망했으니, 이란 정치체제가 다시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였죠. 하지만 신정체제는 나름 공고했습니다. 사망 직후 다음 지도자를 뽑는 전문가 회의를 열었고, 지금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가 선출됐습니다. 하메네이 역시 종신직이고,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혈 진압, 경제 실패... 팔레비 악행 답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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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히잡 시위 당시 이란 서부 사케즈로 향하는 반정부 시위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사케즈=AFP 연합뉴스

 

그동안 이란 국민들이 가만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9년 정부가 개혁파 신문을 폐간하자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2009년에는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으로 '녹색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내 표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외쳤죠. 2010년 이후는 경제난이 심각해지며 경제 문제가 시위의 중심축이 됐습니다. 2017년에는 물가 폭등을 비판하는 시위, 2019년에는 휘발유 가격 기습 인상으로 대규모 집회가 촉발됐습니다.

2022년 히잡 시위는 특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히잡에서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는 이유로 종교경찰에게 잡혀갔고, 하루 만에 혼수상태로 돌아왔다 숨졌습니다. 분노한 여성들은 거리로 나왔고, 시위는 정권에 대한 불만과 신정체제 타도를 외쳤습니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이번 시위도 환율 폭락과 물가 상승을 이유로 시작됐지만, 정권 자체를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로 격화했습니다.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이란 정권은 유혈 진압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막았습니다. 팔레비 왕조의 권위적 정치, 경제 실정, 시위 유혈 진압을 문제 삼으며 수립된 이슬람공화국이 팔레비 왕조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죠.
 


다시 팔레비...? 이란 국민들 지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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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 레자 팔레비가 이달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힘들게 쫓아낸 팔레비 왕조의 이름이 이번 시위에서 다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유는 복합적입니다. 일단 팔레비 왕조는 세속주의를 추구합니다. 현 정권의 이슬람 근본주의와는 정반대죠. 히잡 착용을 강화하거나 음주를 금지하는 등 율법 통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경제를 망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했지만, 적어도 율법을 강요하진 않았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이란의 Z세대들은 팔레비 왕조를 겪지 않은 점도 레자 팔레비에게 유리합니다. 이슬람공화국에서 태어난 젊은 사람들은 서구화를 추구했던 왕정 시절이 오히려 더 현대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 정권이 그간 대부분의 반정부 지도자들을 구금·체포해 반정부 시민들의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대안 세력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200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린 에바디는 이란 정부의 신변 위협으로 2009년부터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고, 202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르게스 모하마디는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습니다.

이번 시위 속에서 해외에 있는 이란 출신 이주민들은 SNS를 통해 국제 사회의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유혈 진압으로 시위가 소강 상태에 들어가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이 그린란드로 이동하면서, 서방 외신에서 이란 관련 보도도 부쩍 줄었습니다. 이란 시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체제를 쟁취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 올까요.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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