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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동맹방위’ 찢어버린 트럼프

美·中·러 ‘천하삼분’ 구도로 바뀌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1 2026 01:28 PM

美, 동맹 가치를 거래 관계로 재정립 분쟁 개입 줄이고 방위비 증액 요구 힘의 논리로 ‘그린란드 병합’ 노골화 中, 대만 침공 대신 지속적 압박 전략 자원 무기화·亞세력 재편 연계까지 러, 우크라 동·남부 편입 기정사실화 美中러, 상대의 반응 지켜보는 상황 국제 질서 빈틈, 역내 불안정성 커져 중견국 등 안보·경제 부담 떠안게 돼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골적인 야욕은 외교적 논란을 한참 넘어선다. 그린란드가 희토류·원유·전략광물의 보고이자 중국·러시아 견제 및 북미대륙 방어, 유럽 접근 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지정학적 요충지임을 감안하면 미국이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규칙 설계자’에서 자국의 전략적·경제적 이익에 집중하는 ‘이해관계 관철자’로 변모했음을 상징한다. 동시에 이는 합의·규범 중심의 국제 질서가 힘과 영향력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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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0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린 사진. 성조기를 들고 있는 그의 곁에 마코 루비오(가운데) 국무장관과 JD 밴스 부통령이 서 있다. 트루스소셜 캡처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러한 변화가 누적될 경우다. 미국이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대해선 무력 사용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기존 질서의 유지·관리를 외면하면 결국 미국·중국·러시아 세 강대국이 정면충돌을 피하며 각자 영향권을 넓혀가는 ‘천하삼분(三分)’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게다가 이 같은 분할 구도는 최소한의 협의 내지 암묵적 합의 없이 균열·혼란이 ‘방치된’ 상황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인 만큼 국제 사회 전반에 불안정과 위험이 증가하고 중견국과 동맹국의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적 패권주의’로 전환하는 美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외교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힘의 쇠퇴가 아니라 역할 인식의 전환이다.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 국방비의 40% 안팎을 지출하는 압도적인 군사 강국이고, 천문학적인 쌍둥이(재정·무역수지)적자 속에서도 국제 결제와 외환보유액 중심 통화로서의 달러 지위는 탄탄하다. 에너지·첨단기술·식량 분야에서도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고 있다. 문제는 이 힘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어 국제 사회가 엄청난 충격을 받을 정도의 큰 변화를 일방적이고 급격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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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 체제, 해양 질서, 동맹 방위 등 세 축을 통해 국제 질서를 관리해왔다. 유일 패권국으로서의 이익에 부합하는 전략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국 내부에선 구조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에 투입된 직·간접 비용만 8조 달러(약 1경1,773조 원)에 달한다. 전 세계 700여 개 해외 군사기지 유지와 동맹 방위에 따른 정치적·재정적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경찰’ 역할에 대한 회의는 미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트럼프는 이러한 피로감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언어로 정치화했다. 그는 동맹을 가치 공동체가 아닌 ‘거래 관계’로 재정의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방위공약 재검토를 압박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5% 방위비 기준을 제시한 게 단적인 예다. 그는 또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줄이는 대신 자국의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영역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북미대륙 방어, 에너지·식량 공급망, 핵심 해상 교통로, 첨단기술 밸류체인, 전략적 요충지 직접 통제 등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은 그린란드 병합 야욕은 아메리카대륙 전체를 안방화하는 ‘서반구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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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개최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트럼프 반대' 펼침막을 들고 있다. 취리히=AP 뉴시스

 

문제는 미국이 국제 질서 유지 비용을 감수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규칙이나 관리 체계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가 제안한 ‘가자지구 평화위원회’와 같은 특정 현안 중심의 한시적 기구는 일방적·이기적 운영이 전제된 터라 국제 사회의 폭넓은 공감과 합의를 끌어내기 어렵다. 이는 국제 질서의 공백을 낳고 있으며, 그 공백은 중국과 러시아에 전략적 실험의 공간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선택적 패권주의’ 전환 과정이 ‘관리’되지 않으면서 국제 질서는 합의^규범 대신 군사력을 동원한 힘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中 ‘중장기 압박’·러 ‘기정사실화’

중국과 러시아도 대외정책을 일부 조정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만큼 점진적인 세력 확장의 기회로 해석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러 3국의 전략적 이해가 얽혀 있는 그린란드-우크라이나-대만은 이를 상징한다. 미국 입장에서 그린란드는 북미대륙 방어와 북극항로 시대의 전략적 관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직접 참전하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세력 확장 대상이고, 대만은 트럼프가 전략적 모호성을 높인 가운데 중국이 중장기 압박으로 미국의 개입 의지를 소모시키려는 최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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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략은 장기적이고 체계적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적 충돌이 가져올 군사적^경제적 비용과 부담을 의식해 대만 문제에 있어 저강도^고지속 압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즉각적인 침공 대신 전방위 군사훈련과 해상 봉쇄, 법^행정적 조치 등을 결합해 대만의 방위 비용과 사회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높임으로써 대만 사회를 ‘소모’시키는 방식이다. 동시에 중국은 대만 문제를 남^동중국해와 아시아권 전반의 세력 재편과 연계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단일 전선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고 개입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경제와 첨단기술은 중국 전략의 또 다른 핵심 축이다. 희토류, 배터리, 태양광, 통신장비, 반도체 후공정 등에서 중국은 상대국의 정책 선택지를 제약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미중 관세 충돌 와중에 희토류 수출 제한 가능성을 거론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했고, 최근 일본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희토류 수출 제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들 분야의 영향력은 미국이 직접 개입을 주저하는 회색지대에서 특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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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중국 푸젠성에서 발사한 로켓포탄이 대만 북부 해상의 목표 지점을 타격하는 모습. 중국군 동부전구는 드론을 배치해 탄착 상황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 변화를 노골적인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미 의회의 지원 예산 지연, 유럽 사회 내 전쟁 피로감 누적과 방위비 및 에너지 비용 부담 증가 등이 표면화했고,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영토 회복 목표를 사실상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공개 지지하며 ‘대서양동맹’의 틈을 벌리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일부 지역 편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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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으로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택가에 정전이 발생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주목할 건 미중러 3국이 일련의 흐름과 관련해 명시적 합의 없이 상대의 반응을 ‘시험’하고 있는 점이다. 미국은 그린란드와 달리 우크라이나와 대만에선 전략적 모호성과 조정을 반복한다. 중국도 베네수엘라 문제에서 외교적 반발 이상을 자제했다. 러시아는 북극권 맹주 자리의 잠식을 감수한 채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 편입을 두고 트럼프와 거래 중이다. 결국 그린란드-우크라이나-대만(-베네수엘라)은 미중러 3국이 상대의 전략을 분석·활용하는 과정에서 세력권의 윤곽이 조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방치된’ 균열에 부담 커진 중견국

기존 국제 질서에 생긴 균열이 방치되고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중러의 세력권 경쟁이 ‘천하삼분’에 가까운 형태로 굳어질 경우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건 중견국과 동맹국, 전략적 완충지대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강대국은 충돌을 피하면서도 영향력을 넓힐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보 공백과 경제적 부담, 외교적 선택 압박은 주변 국가들이 떠안아야 한다.

그린란드 논란 속 유럽 주요국의 현실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트럼프가 한때 군사력 동원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덴마크를 포함한 8개국이 그린란드에 병력을 보냈지만, 다른 7개국 병력은 모두 합쳐 상징적 수준인 35명에 불과한 데다 트럼프가 추가 관세를 압박하자 독일군 15명은 이틀 만에 철수했다. 미국 빅테크 산업을 겨냥한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거론하지만, 대미 경제 의존도를 감안할 때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러우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개입 의지가 불확실해질수록 방위비, 군수산업, 에너지안보 등 삼중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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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덴마크 군인들이 그린란드 누크 공항에 도착한 모습. 누크=로이터 연합뉴스

 

동아시아·중동·중남미 국가들도 유사한 압박에 직면해 있다. 이들 지역은 전통적으로 강대국 경쟁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지만, 세력권이 고착될수록 전략적으로 선택을 유보할 수 있는 공간은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정 강대국에 대한 경제·군사적 의존도가 높을수록 외교적 자율성은 축소되고, 국내 정치와 경제까지 외부 변수에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게다가 이는 역내 불안정성을 구조적으로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소한의 규율과 합의 없는 일방적인 세력권 분할이 특히 위험한 건 그에 따르는 부담이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하삼분의 경향성 자체가 새로운 질서라기보다 질서를 관리할 책임 주체 부재의 결과라는 점에서 중견국과 동맹국의 위기 대응 비용이 상시화하고 작은 사건 하나가 역내 불안정으로 비화할 위험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양정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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