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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과하면 ‘독’ 된다
더 먹기보다는 덜 먹는 용기를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01 2026 12:46 PM
다약제복용, 낙상·섬망 등 부작용 가능성 ‘약 수첩’으로 중복 처방 막고 1년에 한 번은 ‘약물 구조조정’ 나서야
의학적으로 다약제복용은 5가지 이상의 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년 환자에게 ‘약을 얼마나 먹느냐’는 종종 ‘얼마나 안전하냐’와 직결된다. 다약제복용은 단순한 번거로움이 아니라 건강위험을 키울 수 있다. 고령에서 여러 약을 함께 오래 복용할수록 낙상·입원·사망 등 위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고, 항콜린성 부담이 큰 약은 섬망과 인지 저하를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필요한 약을 정확히, 불필요한 약은 용기 있게 줄이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상황을 보면, 한국의 다약제복용 문제는 개인의 부주의보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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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는 여러 기관과 분과를 오가며 진료받기 쉬운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처방 정보가 분절돼 약의 중복과 상호작용이 생기기 쉽다. 짧은 진료 시간에 기존 약을 충분히 검토하기 어렵고, 입원 중 조정된 약이 퇴원 후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일도 잦다.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이 중복 처방을 막는 데는 도움을 주지만, 다약제 자체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환자 약력을 통합 조회할 수 있는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도 절차가 복잡해 활용도가 낮다. 결국 좋은 의료 접근성과 정보 단절, 중재 시스템 부재가 맞물려 다약제를 키우는 구조를 만든다.
환자 측의 모습도 한 축이다. 보통 진료실에서 많은 어르신은 오래된 처방을 ‘늘 먹던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증상이 생기면 ‘약 하나를 더’ 기대한다. 약을 줄이면 증상이 악화될지에 대한 걱정도 크다. 또한 약 조정 후 불편이 줄어든 사례도 적지 않았지만, 퇴원 후 기존 병·의원으로 돌아가면서 조정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많다.
해법의 출발점은 ‘내가 먹는 약을 내가 안다’이다. 약 이름과 용량, 복용 이유, 시간을 정리한 약제 수첩을 만들어 항상 지니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약 이력을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로운 처방을 받을 때는 이 수첩과 앱 화면을 보여주며 겹치는 약은 없는지, 함께 먹어도 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환자의 이런 태도는 의사의 판단을 돕고, 불필요한 처방을 줄이는 든든한 안전장치가 된다.
둘째, 새로 생긴 증상은 약의 신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 특히 수면제·진정제, 진통소염제, 위산 억제제, 이뇨제, 항콜린성 약물은 노인에게 취약하다. 예컨대 위 보호를 위해 시작한 약이 몇 년씩 이어지거나, 통증약이 병원을 바꿀 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겹치는 일이 흔하다. 약이 10개를 넘는다면 1년에 한 번은 ‘약 정리’를 예약해 목록을 통으로 점검받길 권한다.
셋째, 약을 줄인다고 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혈압·당뇨·지질이상증처럼 근거가 확실한 약은 안전하게 이어가되, 나이·신장 기능·낙상 위험·노쇠 정도에 맞춰 용량과 종류를 손보는 게 핵심이다. 때로는 목표치를 완화하고, 두세 가지를 하나로 묶거나, 끊어도 되는 약을 덜어낸다. 중요한 건 ‘모든 약을 없애기’가 아니라 ‘최소한의 약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일이다.
필자가 진료하고 있는 약물조화클리닉에서도 약을 새로 더하기보다 우선 정리하는 일을 한다. 하루 16정을 복용하던 78세 여성 환자는 어지럼과 밤 기침으로 고생했다. 약 봉투를 모두 가져오시게 한 뒤 목록을 정리하니, 진통소염제가 겹쳐 있었고 오래된 수면제가 낮까지 졸음을 남겼다. 위산 억제제는 더 이상 적응증이 없었다. 환자와 상의해 통증약을 한 가지로 줄이고 수면제를 단계적으로 감량하자, 어지럼과 기침이 가라앉고 약은 9개로 정리되었다.
약은 잘 쓰면 생명을 지키지만, 과하면 삶을 무겁게 만든다. 노년기의 좋은 약은 때로 덜 쓰는 용기와 함께 조율하는 시간에서 시작된다. 환자와 의사가 한 팀이 되어 필요한 약을 정확히 알고 단순한 조합으로 복용할 때, 치료는 비로소 환자의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오늘 약 봉투를 한 번 열어보자. 거기서부터 진짜 건강관리가 시작된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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