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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Harvard)대 찾아가기
박형규(시인·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an 30 2026 10:13 AM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공이든 사이든, 단기든 장기든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 먼 도시나 타국을 찾아가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대부분 철저한 사전준비와 특별한 각오와 결심을 한 후 행선지를 향해 출발하게 되지만 때로는 별다른 목적이나 용건이 없이도 마치 옆집 방문하듯 부담없이 먼 길을 나서기도 한다.
나는 50세가 되던 해인 2006년, 7월20일 밤, 아들과 함께 토론토 시내에서 장거리 고속버스를 타고 15시간 이상 캐나다와 미국 땅을 달려 미국의 보스턴 소재 하버드(Harvard) 대학과 MIT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였다. 그 당시 아들은 대학진학 문제를 놓고 학비가 저렴하고 제반 여건이 유리한 토론토 대학에서 공부하느냐, 미국과 세계의 명문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중 상위권 대학(하버드, 프린스턴, 예일)이나 역시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 인근에 있는 명문 MIT 대학에 갈 것이냐를 놓고 아직 향후 진로에 대한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과 나는 무박3일(無泊三日) 코스로 무조건 현지 두 대학을 방문해 보자는 데 동의를 했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하버드 대학 정문 사진. AP통신 사진
7월21일 오후 3시경 우리가 하버드 대학에 도착하여 캠퍼스 곳곳을 안내하는 영문과 재학생의 상세하면서도 기지가 넘치는 소개와 설명을 듣기도 하고 설립자 동상의 구두를 손으로 만지면 입학에 행운이 찾아온다 하여 수많은 방문객들의 손이 닿아 5만 촉광으로 빛나는 구두 앞부분을 나도 손으로 문지르기도 하였다. 캠퍼스 곳곳이 황토흙으로 덮여 있어 때마침 내리는 소나기에 바지 곳곳에 흙탕물이 튀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들 비맞은 생쥐꼴이 되었으나 아무도 불만이나 불평을 터뜨리지 않는 이유는 캠퍼스 곳곳의 벽에 걸린 수많은 그림이나 사진이나 조형물마다 미국은 물론 세계를 지배한 영웅들이나 석학들의 명성과 화려한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우리는 MIT 대학도 방문하여 아스팔트와 푸른 잔디로 뒤덮인 도로와 운동장 및 최첨단 과학시설과 건물을 자랑하는 곳곳을 둘러보며 하버드의 고전과 MIT의 최첨단 과학이 빚어내는 두 명문대학의 절묘한 대조와 공존의 원리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며 또 크나큰 이상과 포부를 갖기도 했다. 7월 22일 오후 3시경 토론토에 돌아온 후 아들은 그 두 대학에 원서를 내고 그 대학 출신으로 토론토에서 변호사와 건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동문들을 만나 면접시험도 치르곤 했으나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나 아들은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기 직전 하버드 의학 전문대학원에 다시 응시하였는데 6,600 여 명의 지원자 중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8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의전원측에서 일일이 2차 면접시험을 시행한 다음 여러 입학사정위원들이 계속적으로 표결을 하여 부적격자를 탈락시키는 작업을 계속한 후 최종 표결에서 44대 1의 입시 경쟁률을 통과한 약 150명의 합격생들을 선발하게 되었는데 여러 인종 및 지역별 안배 등이 고려되는 과정에서 아들 역시 비록 미국과 지리상으로 매우 인접한 캐나다 거주 학생이기는 하나 엄연히 외국 유학생으로 분류, 평가됨으로써 많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비록 서류전형은 통과했으나 2차 면접시험에 이은 최종 표결에서 탈락하게 된 주된 원인이었다.
그 후 아들은 미국 북(北) 캐롤라이나 주 소재 듀크(Duke) 의학 전문대학원에서 2010년부터 4년간 학비 전액 면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처음 2년간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아들이 3학년 때인 2012년 9월부터는 연구 및 실습과정으로 보스턴으로 와서 하버드대학 부속 아동병원에서 연구활동비를 지원 받으며 하버드 의학 전문대학원 교수들의 지도하에 의학연구와 병원실습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아들은 현지 교수들과 의논하여 약 2년 더 하버드 의전원에서 전문 연구원으로 연구활동에 참여하여 세계적인 의학 및 과학 학술지에 제1, 제 2저자 혹은 공동 저자로서 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연구과정에서 아들은 원래 전공분야로 예정했던 신경학(Neurology)에서 안과학(Ophthalmology)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으며 입학 동기생들보다 다소 늦게 듀크대 의전원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1년 수련의 과정과 캘리포니아 주 소재 스탠포드(Stanford)대 의전원에서 3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년간에 걸친 혹독한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그 다음 그는 미국 미시간 주 소재 세계적인 안과병원에서 1년간 전임의사(Fellowship Doctor) 과정을 마치고 2023년부터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여 3-4 곳의 안과 진료소와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진료와 시술을 펼치고 있다.
돌아보면 올해로써 20년 전 거의 무작정 방문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아들이 두 번이나 고배(苦杯)를 들었지만 세 번째는 우회로를 통과하여 그곳 의학전문 대학원에서 3년 여 연구원 생활을 계속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안과의사(Ophthalmologist)의 길을 최종 선택하게 된 것은 어쩌면 그 무박3일간의 여행에서 우리 부자(父子)가 얻어낸 최고의 성과라 할 수 있으리라.
The article is fund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through the Local Journalism Initiative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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