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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주간한국

“원룸서 자다 죽을지도 모른다”

청년의 삶 위협하는 ‘기후 불안’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15 2026 03:34 PM

폭염·폭우 등 날씨가 ‘뉴노멀’ 되자 두려움과 무력감 느끼는 청년 늘어 기상 이변 탓 식비도 급증 ‘이중고’ 기후 불안 ‘경증 우울증’ 유발 수준 전문가 “청년들 불안 외면하기보다 기후 행동 촉진하는 원동력 삼아야”


“사람이 더워서 죽을 수도 있구나. 그것도 내 집에서 자다가. 기후 재난 앞에선 집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환경운동가 김보림(33)씨가 처음으로 ‘기후 불안’ 증세를 겪기 시작한 건 역대 최장기간의 폭염이 닥쳤던 8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2018년은 대한민국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해였는데요. 서울의 낮 기온이 39.6도까지 치솟아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밤 최저 기온마저 30도에 육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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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관측 이래 가장 강하고 긴 폭염이 지속됐던 2018년 여름, 서울 성수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온도계가 40도까지 치솟아 있다. 뉴스1

 

당시 보림씨 가족이 살던 오래된 다세대 주택엔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열대야로 온 가족이 밤잠을 설치는 날이 이어지던 중 보림씨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여성이 에어컨 없는 자택에서 잠을 자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죠.

“그 소식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기후 위기가 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야외에서 몸 쓰는 일을 하던 오빠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지, 에어컨 없는 우리 집은 오늘 밤 괜찮을지 매일 불안했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무력해지기도 했고요.”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보림씨는 이듬해 환경단체에 합류했는데요. 그 후 7년간 꾸준히 기후 위기에 대해 알려왔지만, 마음속 불안은 여전합니다.

 

“미래 안 보여” 청년들 덮친 심리적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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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5일 강원 삼척시에서 열린 기후파업 참가자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촉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미래세대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신규 석탄 발전을 멈출 것을 요구하며 직접 행동을 벌였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보림씨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에 가장 오랜 피해를 입을 세대인 2030 청년층을 중심으로 ‘기후 불안’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기후 불안이란 기후 위기로 인해 현재와 미래의 삶이 크게 위협받는다는 인식에서 생겨나는 지속적인 두려움·불안·무력감, 환경을 망가뜨린 이전 세대에 대한 분노 등 심리적 고통을 뜻합니다. 폭염과 폭우 등 극단적 날씨가 ‘뉴노멀’이 되면서, 이런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10대 후반부터 기후 행동을 실천해 온 윤현정(22)씨 역시 6년 전 태풍 ‘마이삭’을 겪은 이후 기후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현정씨가 살던 울산은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할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학교가 문을 닫고, 매일 오가던 거리가 쑥대밭이 되는 걸 보며 정말 무서웠어요. 기후 위기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상경해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현실적인 생존 문제까지 덮쳤습니다. 폭염과 혹한이 매년 더 극심해지면서 여름엔 전기세, 겨울엔 난방비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게 된 겁니다. 현정씨는 환경을 생각해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데요. 가뭄, 폭우 등의 기상 이변으로 채소 가격이 갑자기 폭등하면 식비 부담까지 겹친 ‘이중고’를 겪는다고 합니다.

“친구들을 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왜 이렇게 더워?’ ‘너무 추운 거 아냐?’ 하고 말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단순한 불만에서 끝나지 않는 심각한 불안을 느끼는 거죠. 기후 위기가 실제 삶의 위협으로 체감되고 있으니까요.”

기후 불안은 더 이상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2년 제6차 보고서에서 기후 위기 노출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로 기후 불안을 공식화하며 “기후불안은 직접적인 재난을 겪지 않더라도 미디어나 타인을 통한 대리 노출만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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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세이브더칠드런의 아동·청소년 모임 '세이브더칠드런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이 지구의 날을 맞아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아동에게는 365일이 재난입니다'라고 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만성적 불안은 청년들의 장기적인 생애 주기 설계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기후 위기를 비관한 나머지 2세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하는 청년이 많아졌기 때문인데요. 2021년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33%는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 때문에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성인 기후불안 점수 ‘위험 수위’

한국의 상황도 위태롭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미래세대 기후불안에 대한 심층 분석과 중재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64세 성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 성인의 기후 불안 평균 점수는 5점 만점에 1.92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경증 우울 위험 기준점(1.76점)’을 훌쩍 넘어선 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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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재난불평등추모행동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주거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기후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고통은 2024년 청소년기후행동이 ‘기후 헌법소원’을 제기했을 당시 제출한 국민참여의견서에 생생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기후가 망가진 세상에선 도저히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 차라리 죽고 싶다”(장모씨·29)거나,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게 미안해 단념했다”(김모씨·27)는 고백은 기후 위기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삶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거와 경제적 격차에 따른 비관도 적지 않았습니다. “6평(19.83㎡)짜리 원룸이 너무 더워 자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정모씨·29)는 호소는 기후 재난이 약자에게 얼마나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이 불안을 외면하기보다 사회적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 부실장은 지난 8월 열린 ‘미래세대 기후불안 극복을 위한 포럼’에서 “현재 한국의 기후 불안 수준은 우려보다는 적극적 관심이 필요한 단계”라며 “이 불안을 기후 행동을 촉진하는 동기부여와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내상에 대한 심리적 지원 조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겠지요.            

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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