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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갉아먹는 노인 우울증
최고 처방은 ‘가족의 관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15 2026 03:40 PM
‘우울하다’ 말 대신 소화불량·통증 호소 꾀병 아닌 ‘신체화 증상’ 우울증 방치하면 기억력 저하 ‘가성치매’ 위험
노년기는 슬프게도 우울에 취약한 시기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노인은 위축되고 우울해진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알려져 왔고, 이를 ‘심리적 노화’라 불렀다. 신체 다른 장기처럼 뇌도 늙는다. 나이가 들면 신경전달물질 조절 기능이 약해지고, 감정과 스트레스를 관장하는 뇌 회로 효율도 떨어진다. 젊은 시절엔 가볍게 넘길 일상적 변화나 스트레스에도 쉽게 지치게 되는 이유다. 여기에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한 활동 감소, 만성 통증, 배우자나 지인의 상실까지 겹치면 정서적 취약성은 더 커진다. 천성적으로 명랑했던 사람도 노년에는 예전만큼 밝게 지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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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은 “우울하다, 슬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식욕 부진, 구역감, 만성 통증, 전신 쇠약, 이물감 등 모호한 신체 증상을 호소한다. 이를 ‘신체화 증상’이라 한다. 자녀들은 흔히 이를 꾀병이나 노환으로 오해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실재한다. 내과나 정형외과를 전전하며 각종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경향은 감정 억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서구 노인에 비해 한국 노인은 우울감을 신체 증상으로 표현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 실제로 국내 가정의학과나 내과를 찾는 환자의 약 14%가 우울장애를 앓고 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원인 모를 신체 증상 뒤에 우울증이 숨어 있는 셈이다.
진료 현장에서도 이런 사례를 흔히 본다. 심한 오심과 구토로 병원을 찾은 한 어르신은 혼자 있을 땐 식사를 거의 못 했다. 하지만 병원에 오거나 자녀들과 외식할 때는 증상이 씻은 듯 사라졌다. 여러 검사에서 신체적 이상은 없었다. 우울증 진단 후 항우울제를 처방하자 서서히 호전되어 몇 달 뒤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처럼 검사상 이상이 없는데도 통증이 지속되거나,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증상이 완화된다면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를 의심해봐야 한다. 물론 실제 신체 질환을 놓치지 않도록 다른 원인을 배제하는 과정은 필수다.
문제는 노인 우울증에 대한 인식과 치료율이 낮다는 점이다. 전체 우울증 환자의 37.5%가 60대 이상이지만, 실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는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기에는 항우울제에 대한 오해와 거부감이 한몫한다. “약을 먹으면 중독된다”거나 “머리가 나빠진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과거 약물은 진정 작용이 강해 무기력함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최신 항우울제는 부작용이 크게 개선됐다.
오히려 우울증을 방치하면 기억력과 판단력이 떨어지는 ‘가성치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때 적절한 약물치료는 인지 기능을 회복시키는 열쇠가 된다. 항우울제는 노화된 뇌의 신경전달물질 조절을 돕는 치료제이며, 신체화 증상으로 인한 고통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소화제나 진통제와 그 역할이 다르지 않다.
특별한 원인 없이 부모님이 쇠약해진다면 외로움이나 우울감이 원인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결국 최고의 처방은 ‘관심’이다. 핵가족화와 바쁜 일상, 명절 여행 문화 확산으로 가족이 모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직접 찾아뵙기 어렵다면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영상통화는 이미 일상이 됐고, 자연어 인식 기술이 적용된 스마트 스피커 등은 기계가 낯선 어르신도 말 한마디로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가족의 빈틈을 채워줄 사회적 자원도 활용해볼 만하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기본 돌봄부터 여가 지원까지 다양한 노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모님이 계신 곳에 어떤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보는 수고, 그 자체가 부모님을 향한 관심의 시작이다. 다가오는 명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 더 관심을 전해 보면 좋겠다.
장건영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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