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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에 시작한 공장생활(工場生活)    

박형규(시인·토론토)


Updated -- Feb 20 2026 01:19 PM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Feb 20 2026 01:04 PM


세계적인 명작 ‘레미제라블’과 ‘노틀담의 꼽추’를 지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톨 위고(Victor Marie Hugo, 1802-1885)는 일찍이 “노동(勞動)은 생명(生命)이요, 사상(思想)이요, 광명(光明)이다.”라고 노동의 귀중함을 역설하였다.

나는1989년 3월 수은주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 이국 땅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부터 토론토대학 부설 어학연수원에서 영어공부를 시작한 후 약 10년간 유학생과 영주권자 신분으로 여러 분야의 공부를 계속했다. 학업 중에도 틈틈이 주중 야간이나 주말시간을 이용하여 여러 한국어학교(K.C.C.M/씨알/벧엘교회/중앙 한인 연합교회 한국어학교 등...)의 교사, 편의점이나 식품점 등에서 점원일을 하여 가계에 지원을 하기는 했으나 장기간에 걸친 재정난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다. 또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 외국어로 공부와 연구를 한다는 것부터가 20대 청년시절에 비해 여러모로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인 성과와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결과 나중에는 극심한 신경쇠약과 불면증, 강박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환청(幻聽), 근육경련, 무력감 등의 불청객들이 심신에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한국인 가정의(家庭醫, Family Doctor)와 수차례 상담을 한 결과, 이제 책 보는 일을 그만 하고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 여러 질병도 극복하고 가정의 빈약한 재정확충에 매진하라는 충고를 그로부터 듣게 되었다.

2000년 1월 드디어 새천년(New Millennium)이 밝아왔지만 마땅히 정규직으로 일할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여러 직업소개 신문, 잡지 등을 살펴보다 마침내 한 한국인 직업 안내소장(Job Agent)을 통해 토론토 북부 공장지대에 위치한 한 플라스틱 부품제조 공장에서 2교대 근무 중 주간반(아침 7시부터 밤 7시까지 근무)에 편성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임시직에 불과했기에 다른 정규직 노동자들처럼 출퇴근 카드를 지급받아 출퇴근 시 카드인식 출퇴근 기록기에 시간을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장 출입구에 비치된 방문자 명부에 펜으로 이름과 주소, 출퇴근 시간을 일일이 기록해야만 했다.

그 공장 내부에는 여러 형태의 플라스틱 부품들을 성형해 내는 사출기가 20-30대 배치되어 24시간 계속 가동되고 있었기에 소음이 너무 심하여 그 기계 옆에서 일할 때는 귀마개(Ear Plug)와 보안경(safety glasses)을 반드시 착용해야만 했다. 일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나의 임무는 담당 감독(Supervisor)이 지정해주는 2-3개 사출기에서 생산되는 부품을 제 규격에 맞는 박스에 넣고 포장한 후 펜으로 필요한 사항을 별도 종이에 기록하여 그 박스에 부착한 후 한 곳에 가져다 쌓기만 하면 되었다. 작업장 2층에는 소형 휴게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 내부에는 각종 음료수를 판매하는 자판기 하나, 마이크로 오븐 하나와 탁자 및 의자 몇 개가 있을 뿐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발과 다리가 무척 아프고 저렸다.

그렇게 2주 동안 주간반 근무를 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야간반(밤 7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근무)으로 근무시간이 바뀌게 되었다. 그것도 현장 감독이나 공장장이 내게 정식으로 통보해 주는 것이 아니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동료가 내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야간반 근무는 주간반 근무보다 두세 배는 더 힘들었다.

야간이라 일도 일이지만 밤 12시가 지나면 끝없이 밀려오는 잠과의 처절한 싸움이 연일 계속되었다. 잠을 쫓기 위해 육중한 철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카랑카랑한 한겨울의 하늘과 사방을 뒤덮은 눈과 얼음 위로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상회하는 칼바람이 사정없이 내 얼굴을 할퀴면서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공장 내부로 들어와서는 잠과 시간과 고독과 싸우기 위해 유년시절부터 군시절에 이르기까지 배우고 들었던 모든 노래를 있는 대로 동원하여 나는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다. 그렇게 소리치거나 울부짖어도 고도의 기계소음으로 인해 옆에 있는 동료조차도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비로소 그곳에서 오래 근무해 온 다인종 노동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철인(Iron man, 鐵人) 혹은 슈퍼맨(Super man, 超人)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야간 12시간을 단 1분도 눈을 붙이지 않고 버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잔혹하리만치 힘들던 2주간의 야간근무를 마치고 마침내 주간근무로 전환되기 전날 집에서 공장으로 출근하기 직전 나는 공장측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다. 그것도 정식으로 공장직원이 내게 알려준 것이 아니라 내가 소속된 직업안내소 소장을 거쳐 내게 통보된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임시직 근무자가 갖는 권한의 한계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섭섭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 시원스러웠다.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야간반 근무 후 귀가하여 낮에 억지로 수면을 취하기 위해 창문에 검은 커텐을 칠 필요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날부터 일하게 된 곳은 주간반만 있는 분합문(分合門, Patio Door) 제조 공장이었다. 물론 3개월간은 임시직으로 일했지만 정규직 근무자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 출퇴근 카드 대신 종이 출퇴근 카드로 출퇴근 기록기에 시간을 입력시킬 수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다른 동료(이탈리아, 인도, 중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방글라데시, 자메이카, 가이아나, 아르헨티나, 멕시코인 등등)와 2인 1개조로 2층 사무실 직원이 감독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한 주문서에 의거하여 문틀에다 적절한 크기의 대형 2중창 유리를 끼우고 실리콘을 사방에 칠하고, 적절한 쫄대를 그 위에 붙이고 필요한 부착물을 압축공기를 이용한 드릴이나 드라이버로 부착, 포장 후 지정된 곳에 쌓거나 감독의 지시에 따라 사각 혹은 원형 플라스틱 기둥 안에 같은 모양의 소형 알루미늄 막대를 끼운 후 초강력 나사못을 그 위에 박거나, 선반을 이용하여 제품에 특정한 모양의 구멍을 뚫는 일을 수행하였다. 연일 신입 노동자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수시간 혹은 수일이 지나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연일 급증하는 노동자들의 이직현상을 보면서 ‘물’이라는 시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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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물

                                                  박형규

 

멈추면 뒤따르던 흐름 어김없이 멈춤 메우며

언제 멈칫거림 있었는 듯 묵묵히 내리 흐르니

오래도록 흐르다 멈춰도 아무런 아우성 낯설음 없이

빈 곳 메우고 허전한 들판 가득 채워가는 물살.

흐름 멈춤은 개울바닥 새하얗게 말리며

땅 속 깊이 스미거나 공중 높이 날아오름이나

스며든 물줄기 낮은 곳 따라 지하수로 터지고

날아오른 물방울 한여름 소나기로 쏟아지듯

흐름 멈춘 곳에 흐름 잇고

흐름끼리 서로 만나 검푸른 물줄기

하늘가 아스라이 맞닿으면

비로소 망망대해(茫茫大海).

 

여기서의 물은 내 유년시절의 고향 충북 단양(丹陽) 남한강(南漢江) 기슭의 물처럼 자연계의 실제 물일 수도 있겠으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자들의 빈번한 이동, 이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 공장에서 이런 저런 많은 경험과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01년 12월 말 나는 자원하여 그곳을 사직했다. 그곳을 떠나올 때 현장 감독에게 간청하여 외부 홍보용으로 실제보다 5분의 1크기로 축소제작한 분합문(patio door) 하나를 그냥 얻어서 내 차에 싣고 집에 와서 내 거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후 지금까지 중요한 가구로 관리해 오고 있다. 내가 일상에서 마음이 해이해지거나 지나친 자만심에 빠지게 될 때면 그 축소 분합문(Patio Door)을 보면서 일희일비 (一喜一悲)하던 40대 중반의 공장 노동자 시절을 떠올리며 자책의 계기로 삼곤 한다.

서두에서 인용한 위고의 명언처럼 공장노동(工場勞動)은 내 중년기를 지탱해 준 위대한 생명이요, 사상이며, 광명이 되었음을 나는 늘 깊이 절감하고 있다.0배너광고_대표_겨울.png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캐나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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