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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非情)의 마나슬루 정상(頂上)에 서기까지
박형규(시인·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Feb 28 2026 02:35 PM
생사(生死)가 일순간에 교차되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Himalaya) 8천 m 급 고봉(高峯) 14좌(座)를 왜 오르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전문 산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일찍이 영국 산악인 조지 멜러리(George Malory, 1886-1924) 경이 남긴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Because it(mountain) is there.)"라는 말로써 답변을 대신할 것이다.
세계의 지붕(The Roof of the World)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산맥은 네팔과 파키스탄에 걸쳐 동서로 2,500 km나 뻗어 있고, 해발 8,000 m가 넘는 고봉 14개와 7,000 m 급 고봉 350여 개를 거느리고 있다. 이중 네팔에 위치하는 캉첸중가(Kangchenjunga, 8,586 m), 마칼루(Makalu, 8,463 m), 로체(Lhotse, 8,511 m), 에베레스트(Everest, 8,848 m), 초오유(Cho Oyu, 8,201 m), 마나슬루(Manaslu, 8,163 m), 안나푸르나(Annapurna, 8,091 m), 다울라기리(Dhaulagiri, 8,167 m)의 8개와 중국 국경의 시샤팡마(Shisha Pangma, 8,012 m)와 파키스탄에 위치하는 가셔브룸 1봉(Gasherbrum I, 8,068 m), 가셔브룸 2봉(Gasherbrum II, 8,035 m),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 m), K-2(8,611 m), 낭가파르밧(Nanga Parbat, 8,125 m)의 5개의 고봉을 모두 합쳐 ‘히말라야 14좌(座)’라고 부른다.

언스플래쉬
이 히말라야 14좌 중 마나슬루(Manaslu) 봉은 많은 한국 및 일본 산악인들과 셀파들이 희생을 치른 끝에 그 정상에 올랐기에 한국 산악인들에겐 비운(悲運)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마나슬루(Manaslu) 봉은 세계 8위의 해발고도(海拔高度)를 지닌 ‘지혜의 산’ 또는 ‘정신이 깃든 산’이라는 의미를 지닌 산으로 김정섭, 김예섭, 김기섭, 김호섭 4 형제 중 두 명(김기섭, 김호섭)의 고귀한 목숨을 빼앗아 갔기에 비정(非情)의 산으로도 또한 불린다.
1971년 5월 3일 마나슬루 봉 첫 도전에 나섰던 김정섭 대장과 김기섭 형제는 고도(高度) 7,600 m 지점에서 돌풍을 피하려다 동생 김기섭이 40 m나 바람에 날아가 크레바스(crevasse)에 떨어져 절명하는 참사를 당했다.
이듬해인 1972년 김정섭, 김호섭 형제가 마나슬루 봉에 재도전을 했으나 4월 10일 새벽 3시, 해발 7,250 m 지점에서 대형 눈사태가 발생하여 동생 김호섭을 비롯한 한국 산악인 4명과 일본 산악인 1명과 셀파 10명, 도합 15 명이 눈 속에 매몰되어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사상 두 번째 대조난사고를 당함으로써 정상도전은 또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두 동생의 생명을 히말라야 만년설(萬年雪)에 묻은 김정섭은 남은 동생 김예섭과 함께 1976년 제 3차 마나슬루 원정대에 참여하여 정상도전을 시도했으나 기상악화와 대원들 간의 불화로 인해 7,800 m 지점에서 분루를 삼키고 하산해야만 했다. 이렇듯 히말라야 14좌 중 마나슬루를 향한 김정섭 형제들과 한국 산악인들의 세 차례에 걸친 집념의 도전은 16 명의 생명을 잃고도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약 10년간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던 마나슬루 등정은 그러나 1980년 4월 28일 오후 1시 30 분, 7명의 동국대 산악부 대원 중 서동환 대원이 마나슬루 봉 정상(頂上)에 도달함으로써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 등정은 1977년 9월 15일 고상돈 대원이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Everest)에 오른 이후 한국인이 오른 두 번째 8,000 m 급 고봉의 등정기록이며, 국내 최초로 단일 산악회 팀이 이룬 성과였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83년 10월 22일, 제천 산악회 소속 허영호 대원이 단독으로 마나슬루 등정에 성공함으로써 10여년 세월 동안 마나슬루 봉에 쌓인 한국 산악인들의 애환과 통한을 깨끗이 풀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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