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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을 맞아 일본 731부대를 되돌아 본다
“인류 최악의 살인공장(Death Factory)”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Mar 06 2026 11:49 AM
일본정부는 사과 보상 거부하고 자료 숨겨 한인회관엔 선열 초상화 제거되고 독립선언문은 영역본 없는지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자.
유대민족의 이 명언은 우리 한민족에게도 그대로 적용될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30년 대 만주에서 활동하던 조선 독립운동가들과 독립군을 의학실험 대상으로 삼아 잔인하게 죽였다. 그래서 잊혀지지도, 잊혀져서도 안된다. 더구나 용서는? 잘 모르겠다.

마취없이 인간 해부
만주를 점령한 일본 관동군 731부대는 마취없이 산 인간을 해부했다. 팔 다리를 자르고 간(肝)이나 콩팥(신장) 등 인체기관을 빼냈다. 동상실험을 한다고 멀쩡한 팔 다리를 얼리고 망치로 두들겼다. 인체를 저기압통에 넣어 눈알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관찰했다. *뇌 연구를 목적으로 산 사람 머리를 도끼로 부셨다는 이야기도 기록됐다. (*쉘든 해리스 저 ‘Factory of Death’) 콜레라균을 전염시킨 벼룩(flea)을 중국 마을 상공에서 투하, 주민들을 감염시켰다. 흑사병 전염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용 쥐 6백만 마리를 키웠다.

실험실 창시자이며 온갖 악행의 대부 이시이 시로 부대장(중장·사진)는 1955년 12월 일본에서 부대설립 경위와 목적 등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장병사망률을 낮추기 위해서 만주 하얼빈 등에 324개의 연구소를 만들었다. 또한 모든 종합 대학에 연구소가 설치됐고 각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후보를 모아 10여 명의 교수진이 구성됐다. 패전 때문에 부대는 폭발하고 모두 태우지 않을 수 없었고 비운으로 끝났다.”
그는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연구와 실험이 패전으로 중단된 것을 안타까워 했다.
세균과 독가스 연구개발
'살인공장' 731부대(Unit 731)는 2차 대전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천황(일왕) 히로히토의 재가를 얻어 만주에 설립한 세균전/화학전 무기 연구기관이다. 부대는 한국인 등 수많은 민간인과 전쟁 포로들을 실험용 기니픽(몰모트)으로 사용, 잔인한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피해자는 주로 중국인이었지만 한국 독립운동가, 소련인, 미군포로, 몽골인도 있었다. 한국 선열이나 독립군도 일본군이나 헌병대에 잡혔을 때 전향하지 않으면 모두 731로 보내져 실험대상이 됐다. 그 숫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본부는 만주 하얼빈시 핑팡구(區), 대외적으로는 물 나쁜 만주에서 군대에 식수를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위장했다. 중장 계급장을 단 이시이 시로는 교토의대를 졸업한 군병원 외과의사였다. 원래는 식수전문가. 성격이 방자하고 거만하며 큰 소리를 팡팡치면서 낮에는 병원, 밤에는 게이샤하우스(기생집) 구역을 주름잡았다. IQ는 보통수준을 넘었으나 목표달성을 위해선 매수, 상납과 협박 등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731의 하부조직은 부산(조선)을 비롯, 태평양 일대 일본군 점령지 도처에 수십 군데가 있었다.
이 부대가 지금도 문제되는 이유는 부대의 수많은 야만적 행위에 불구, 일본정부가 현재까지 이를 부정하고 사과 배상하지 않는 점이다. 이런 행동은 독일정부가 나치의 인체실험에 대해서 매년 반복 사과하는 태도와 정반대다. 731은 패전이 짙어지자 부대건물을 폭파 소각하면서 모든 증거자료를 인멸하고 실험대상자 1천 명을 몰살했기 때문이다. 청산가리 개스로 죽이거나 자살을 강요했다. 불응한 사람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교수(絞首)됐다.
나치 인체실험은 비조직적·소규모
유태인 수용소에 파견된 나치 독일 의사들은 유태인을 대상으로 개인적, 독립적으로 실험했고 국가가 처음부터 기획, 예산배정, 실천하지는 않았다. 일본 부대는 이와 달리 국가 권력이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막대한 예산을 배정한 국가적 범죄다. 학계 등 전문가들은 “잔혹성과 규모로 볼 때 인류 최악의 잔인한 범죄”라고 지적한다.
부대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다가 80년대 들어 도쿄의 공산당기관지가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져 그때부터 세계적으로 연구가 시작됐다.
이 부대에 관한한 미국정부는 입을 다문다. 전후 전범들을 풀어주는 대신 이들이 5년간 연구한 자료를 얻었다. 이때문에 최고 원흉 이시이를 비롯해서 중요 관계자들이 단 한 명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오히려 관계자들은 일본의 유명 의대, 제약회사 등으로 영전했다. 미국이 화학전/세균전 연구자료에 눈 멀어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탓이다. 미국은 일본군의 난징학살, 만주사변,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와 달리 학계가 지적한 사상 최악의 잔인한 이 건에 대해서는 입에 지퍼(재크)를 채운 이유다.
한국서는 이에 대한 영화가 여럿 나오고 소설도 등장했으나 학계는 자료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마루타'라는 단어와 '731부대'란 명칭을 한국에 각인 시킨 때는 1990년이었다. '마루타'(일본어 통나무)라는 말은 실험자들이 실험대상자를 지칭하던 말이다. 일본 실험자 자신들의 잔인성을 중성화하기 위해 고안됐다. 대상자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통나무로 간주, 과감하게 실험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끌려간 표본실에서 머리 절반이 잘린 채 열려있는 시신도 봤다.” 14살 때 군에 징집되어 731에 파견된 시미즈 히데오가 그후 증언한 말이다.
미국의 눈 먼 용서 규탄 받아야
피해자와 가족들은 미국의 관계자 사면을 용서하기 어렵지만 전후 본국 귀환한 자들은 반성과 참회 대신 친목단체들을 구성하고 관계를 유지했으니 분통 터진다. 더구나 일본 의학계가 그들에게 박사 학위까지 주었음은 일부러 피해자와 소속국가의 약을 올리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학문적으로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107주년 3.1절 기념식을 돌아보면
우리 한인들은 지난 28일 3.1 독립운동 107주년을 맞아 옷깃을 여미고 머리 숙였다. 희생당한 선열들을 기억하고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우리 몫으로 남은 후속조치의 극히 작은 부분을 수행했다.
유관순 열사를 기리고 안중근 의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공(功)과 희생을 상기하기 위해 한인회관 로비에 전시했던 독립 선열 초상화들을 모조리 제거된 지 1년이 지났다. 초상화 철거는 한인이민사 기념관을 만든다는 이유에서다. 애국지사협회가 수년 간 모금으로, 정부지원으로, 그래도 모자라 주머니돈을 털어서 만든 초상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회관 밖 풀밭에 앉은 한인 위안부 소녀상이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최남선의 독립선언서는 희대의 명문인데 영어번역문은 없는지? 찾아보기는 했는지?
한 발 더 나아가, 한인회는 우리 사회서 꺼리낌 없이 사용하는 일본말 나무젓가락('와리바시') 사용에 대해서 한 마디라도 '자제'를 촉구하며 동참을 한 적이 있는지.
캐나다 이란인들은 모국의 민주화를 염원, 지난달 말에 무려 35만 명이 토론토에서 시위를 벌였다. 토론토 이란 인구를 줄잡아 20만 명을 감안, 시위 참가자 수를 그 정도로 예상했는데 전국서, 또 미국 등에서 몰려와 이란인들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부러운 애국 애족의 발로였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제연구소, 동북아연구재단, 쉘돈 해리스 'Factory of Death', 브리타니카 닷 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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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전체 댓글
Brendon ( jpa**@newsver.com )
Mar, 06, 12:30 PM Reply토론토 살고 있는 어르신들은 부끄러운줄 아세요. 큰 어른들이 맨날 남 비방하고 헐뜯는 글이나 올리고 진작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남겨줄 역사도 문화도 없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을것이고... 내 죽으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