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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건물 어두운 복도에 불을 밝히며
박형규(시인·토론토)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Mar 08 2026 10:06 AM
내가 20년 이상 살고 있는 6세대가 거주하는 이 아파트는 1916년에 준공하여 올해로 100년이 훨씬 지난 건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2층 복도 전등에 부착된 백열전구의 전선이 끊어졌음에도 고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2층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수리를 요청하거나 손기술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건물주에게서 전구를 얻어와서 전등에 새로 부착해야만 했다. 밤에 2층에서 3층으로 난 계단을 오르내릴 때 너무 어두워서 실족하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태가 얼마 동안 계속되었다. 그 전에는 내가 직접 건물주에게 얘기하여 새로 전구를 받아와서 수리를 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우리 집 선반에 여분의 전구가 몇 개 있어 목요일 밤 직장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후 음식물 쓰레기통과 재활용품통을 아파트 밖 도로변에 내놓을 때 전등보수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나는 밤 1시가 지나 3층 3호실인 내 아파트에서 작은 의자를 2층 복도로 가지고 내려와 그 의자 위에 올라가서 전등갓의 나사를 맨손으로 풀고 전등갓을 분리한 후 전선이 끊어진 전구를 제거하고 새 전구를 그 자리에 부착했다. 그리고 다시 전등갓을 제자리에 끼우고 나사를 단단히 조였다. 한 열흘 어둡고 칙칙하고 생기를 잃었던 복도가 순식간에 한여름의 태양 아래 온 마을이 환히 빛나듯 휘황하게 밝아졌다.

언스플래쉬
어둠을 밝힌다는 것은 복도 전등의 경우 그 전구 내부에 텅스텐 등으로 제조한 미세한 전선인 필라멘트(filament)를 조금씩 마모, 부식 혹은 파괴해 가면서 복도와 천장과 계단일대에 빛을 공급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하며, 만약 실내 전등이 정전(停電) 등으로 인해 미작동되어 그 대안으로 촛불을 켜는 경우 양초를 완전히 연소(燃燒)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작은 철선 필라멘트나 양초의 희생이나 헌신 혹은 소멸(消滅)이 전제되지 않는 한 광명한 세상은 결단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이론상으로는 너무나 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업을 실행으로 옮기려면 치밀한 사전 준비작업과 충분한 시간 그리고 크고 작은 기술이 필요하다.
내가 1999년 한국 계간지 ‘믿음의 문학’ 신인상에 응모하기 위하여 20여 편의 시를 서울 도곡2동 소재 문학지 사무실로 발송하면서도 끝까지 당선되리라는 확신이 가지 않던 ‘촛불’이라는 시가 있었다. 수 없이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했지만 시원스러운 결말을 낼 수 없었으며 지금도 어렵기만 한 시작품이다.
촛불
살면서 제 살 태우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저 펄럭이며 솟는
불꽃
잦아질수록
짙어 가는 밝음
부서질수록
익어가는 온기
살면서 제 속 태우는 건
얼마나 두려운가
감춰둔 얼음 벽 허물면
너른 가슴
제 살 태워 그대 덥히고
제 속 태워
그대 넓히는
불꽃.
그러나 나의 이 무수한 의구심(疑懼心)에도 불구하고 세 분의 그 신인 작품상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8편 중 이 ‘촛불’을 제 1석에 배정하면서 이 작품은 영상기법을 사용하면서 촛불을 의인화하여 신앙이 하나로 용해되어 분출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이제 우리는 복도의 백열전구 안의 작은 필라멘트나 책상머리의 작은 양초처럼 어둠을 밝히는 일에 제 살을 태우고 제 속도 아낌없이 태울 수 있어야 하리라. 예로부터 ‘타선즉자선(他善卽自善; 남에게 착하게 하면 곧 자신에게 착하게 함)’이라 했듯이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황폐해져 가는 어두운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 작지만 밝은 빛을 밝히는 선인(善人)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백세인생(百歲人生)을 우리 모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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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