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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해병대 대학생이 됩시다!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Mar 10 2026 08:58 AM
‘친구야!
넌 현재 어느 대학에 다니니?
요즘 대학생활 어떠니?‘
어느 단톡방에 올라온 대화 한 토막이다.
이 대화 자체로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단톡방이 젊은이들의 카톡방이 아닌데 느닷없는 대학타령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상하게 여겨졌다. 지우려다가 이어진 글을 끝까지 읽어봤다.
다 읽어본 후에야 이 대화가 요즘 노년들 사이에 떠도는 대화 한 토막임을 알고 웃었다.
웃음이 축축했다.
그 대화의 설명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공 : 서럽고 울적해서 공원에 나가서 소일하는 노인들.
*동경대 : 동네에 있는 경로당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동아대 : 동네 아줌마들과 놀러 다니는 노인들.
*부경대 : 부부가 함께 경로당에 나가는 노인부부들.
*전국대 : 전철과 국철을 타고 다니면서 외로움을 달래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연세대 : 연금으로 세상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노인들.
*고려대 : 고상하게 여행을 다니는 노인들.
*서강대 : 서로 위로하며 강하게 사는 노인들. 혹은 서로 위로하며 강하게 살자고 다짐하는 노인들
*건국대 : 건강하면서 국민연금으로 사는 노인들.
*해병대 : 해피하게 병 안 걸리는 노인들.
재치와 재미가 느껴지는 표현이긴 했지만, 축축하게 물기가 묻어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언스플래쉬
얼마 전, ‘K문화사랑방’의 한 회원과의 통화가 생각났다.
“고봉 선생님, 저 요즘 온주 국비장학생 수속을 밟는 중이예요...”
처음엔 뜨악했다. 그 회원은 모 기관의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비교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 터라서, 또 다른 무엇인가를 모색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짐작을 하면서 되물었다.
“아, 그래요? 무슨 공부를 새로 시작하세요?”
갑자기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아, 선생니임, 저도 내년부터는 펜션을 받게 되거든요...”
요즘 그 절차를 밟느라고 좀 바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정부로부터 매달 받게 되는 노년연금(pension)을 말한 것이었다.
더 오래 전의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어느 모임에서 경제학 박사이신 P선생님을 오랜 만에 만났다. 나의 칼럼 애독자이기도 한 P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데, 같은 또래의 다른 분이 다가왔다. P선생님은 그 분을 L이라고 소개하셨다.
“저도 권선생님의 애독자입니다.ㅎㅎㅎ... P와 저는 온타리오 국립대학 동창생입니다!”
“맞습니다. 우린 국비장학생이지요.”
나는 정말 온타리오 국립대학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나보다 훨씬 먼저 이민을 오신 분들이라서 대학공부를 이곳에서 하신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아, 그러세요. 대단하십니다.”
P선생님은 진의를 못 알아듣고 정색하는 나의 바보스러움이 딱했던 모양이다.
“정부로부터 나오는 펜션을 받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펜션, 즉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을 받는 나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제야 알아듣고, 큰소리로 함께 웃었다.
K문화사랑방의 회원으로부터 온주 국립대학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재미있다기보다 아니 벌써? 그 나이가 됐단 말인가! 하는 세월의 빠름을 느끼고 놀라웠다. 그 회원의 실제나이를 50대 정도로 짐작만 할 뿐, 젊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P선생님과 L선생님의 국비장학생이란 말을 들었을 땐 그 표현이 재미있었다.
이번 단톡방에서 접하게 된 대학교이름을 빗댄 표현에서는 세월의 빠름에서 오는 놀라움이나, 재미보다는 훨씬 더 짙은 서글픔이 느껴졌다. 세월을 다 보내버린 노인들이 처한 정신적 육체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은유였기 때문이다.
단어를 새로 만드는 것은 젊은 세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과, 누구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단톡방에서 접한 노년들의 대학명칭에 빗댄 표현은 단순히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절박한 현실의 심정을 그나마 해학으로 담아낸 표현이라는 생각에, 재치보다는 가슴이 찡하게 저려왔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허망함을 그렇게라도 보듬어 안으려는 자조(自助)가 섞여 있음이 더 크게 느껴져서다.
비록 그렇더라도,
‘우리 모두 해병대 대학생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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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