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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과 0.9
김영수(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2 2026 10:55 AM
수필이 있는 뜨락(28)
나는 늘 1.1을 준비하며 살았다. 완전한 1에, 존재감 없는 0.1을 더하는 일. 그 작은 여유가 묘하게도 삶에 여유와 자신감을 주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은 그 느낌이 더 강렬했다. 필요한 것의 두 배를 준비하는 것은 내 깜냥을 넘어서는 일이었지만 1.1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1이라는 숫자는 그 자체로도 이미 완전하고 충분하다. 그런데도 그 옆에 덤처럼 붙는 0.1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일러스트=AI 생성 이미지(ChatGPT)
다음 날로 예정된 연구 수업 준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순간이었다. 노트 한쪽에 적어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추가 질문에 대비해 적어둔 예상 답변이었다. 오래전부터 해온 수업 준비는 이미 끝났고, 1이라는 숫자처럼 단단하고 빈틈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돌발 질문 몇 개쯤 더 들어올지 몰라 작은 메모를 덧붙여 두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왔다.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잠시 긴장했지만, 전날 밤 노트에서 본 그 메모가 떠올랐다. 짧은 문장 하나가 나를 안심시켰고, 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여유롭게 답할 수 있었다. 1에 더해진 작은 0.1이 기분 좋은 자신감을 안겨준 것이다.
그날 나는 생각했다. 삶은 1로 충분할지 몰라도, 거기에 0.1을 더 준비하는 사람의 시간은 좀 더 느긋하고 평온하지 않을까 하고. 0.1은 하찮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다고.
그 후 1.1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되었다. 0.1 덕분에 나는 깊은 호흡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데 익숙해졌고, 그 익숙함은 보이지 않게 능률을 끌어올렸다. 다들 숨 가쁘게 뛸 때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고, 그게 없으면 불안할 정도였다.
나의 0.1은 넘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가짐에 가까웠고, 보이지 않게 하나 더 준비하는 배려였다. 그것은 비상금처럼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어야 마음이 놓였다. 그 작은 여분 덕분에 내 삶은 부드럽게 빛났다. 시간이 임박하여 서둘러야 할 때도 평소의 보폭으로 걷는 맛을 은밀히 즐길 만큼 나는 내 방식의 삶에 만족했다.
별일 없는 일상에서도 1을 살짝 넘는 1.1은 안도하며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의미했다. 나는 계속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복잡한 인생길에서 늘 그것이 통하는 건 아니었다. 몇 달 후 공교롭게도 그 비슷한 수업을 또 맡게 되었다. 이번에도 나는 철저하게 준비한 자료를 토대로 수없이 연습했다. 준비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긴장도 덜했다. 수업도 무난히 마친 듯했다.
그러나 평가 시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연세가 지긋한 장학사 한 분이 빈틈없는 수업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빈틈이 없어 흠잡을 데가 없는 게 오히려 흠이라며, 불완전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발상은 허술한 틈에서 나오고, 그것은 창의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0.1이라는 작은 덧붙임이 나를 늘 지켜줄 거라 믿었지만, 직관력을 키우는 성장판은 오히려 0.1 부족한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노트를 펼쳐 보았다. 거기엔 밤새 붙들고 씨름하던 0.1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철저한 준비에 가려 보이지 않던 빈틈들을 돌아보며, 파격의 미를 보여주던 도자기를 떠올렸다.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한 파격이 주목받듯, 헐렁한 마음 공간에서 독창성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쳤다. 자신감은 1.1에서 얻을 수 있다 해도, 진정한 성장과 변화는 철저한 준비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웠다. 0.1이 좋은 방패막이가 될 수는 있어도,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불완전한 여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노년에 이르고 나니 1을 넘는 0.1은 쓸모를 다한 우수리처럼 여겨졌다. 1을 채우기도 버거워졌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앞으로 그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어 언젠가는 0.5마저 채우기 힘든 날이 올 것이다. 깊이 생각하며 글 쓰는 일은 물론, 여행하거나 반찬거리를 장만하는 것 같은 소소한 집안일조차 예전보다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10년 후를 예상해 본다. 겨우 0.5가 되었을 뿐인데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는 나. 예전 같으면 아쉬웠을 결과에도, 이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모습이 보인다. 1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노년의 삶인지도 모른다.
차 한 잔을 따르며 생각에 잠긴다. 찻잔이 가득 차지 않도록 남겨두는 여유가 차 맛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리라. 조금 비어 있는 자리는 채워야 할 결핍이 아니라 누려야 할 즐거움이다. 1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과 미진함의 경계에서 균형 잡을 줄 아는 조화로움일 것이다. 헐거워진 마음 틈서리에 햇살 한 줄기, 따듯한 전화 목소리, 산책길에 만난 들꽃 한 송이를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 채워지지 않았기에 더 깊고 간절한 삶, 사람 냄새 나는 삶이 그립다. 길들지 않은 곳에 자유롭게 피어나는 시간의 야생미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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