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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오빠 너무 슬퍼”
'왕사남’ 열풍에 역사 공부하는 MZ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5 2026 07:29 PM
“역사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단종 관련 도서판매량 26배 급증 도서관 ‘조선왕조실록’ 예약 불티 영월 장릉 온라인 지도 찾아 응원 “후손은 당신 편” 댓글 600개 육박 세조·한명회 묘역엔 악플 넘쳐나
"고등학생 때는 억지로 외우느라 애먹었는데,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비운의 군주 단종을 소재로 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단종의 실제 이야기를 찾아 읽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서점가에서 관련 도서 판매도 증가하고 있다. 8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시민이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직장인 서모(25)씨는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를 보고 한국사 공부에 푹 빠졌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역사 프로그램 영상을 계속 시청하다 보니 알고리즘도 온통 역사로 도배됐다. 서씨는 "교과서에서 배운 계유정난과 단종 폐위에 이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니 신기했다"고 말했다.
'왕사남'을 세 번 관람했다는 전모(27)씨도 "스크린 속 단종의 슬픈 눈빛이 잊히지 않아 집 앞 도서관에서 조선왕조실록도 빌려 읽는 중"이라며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역사의 퍼즐이 맞춰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덧붙였다.
'왕사남'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20, 30대 젊은층 사이에서 역사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강원도 영월 벽지로 유배된 단종의 애처로운 죽음과 어린 선왕을 돌본 촌장 엄흥도의 우정에 몰입한 관객들이 단종을 다룬 다양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면서 실제 역사로 관심사가 확장된 것이다. '단종 덕질' '단종 앓이' 같은 팬덤 현상도 나타난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왕사남' 신드롬과 역사 열풍을 가장 먼저 체감한 곳은 서점가다. 11일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왕사남' 개봉 이후 한 달간 '단종'과 관련된 도서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약 26배 뛰었다. 특히 단종이 주인공인 이광수의 장편소설 '단종애사'는 무려 80배나 늘었다.
10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을 찾은 조성아(23)씨는 "단종이 어린 나이에 죽은 왕이라는 정도만 알고 영화를 봤는데 내내 마음이 아팠다"며 "자연스럽게 단종에도 관심이 생겨 책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도 대출 예약이 줄을 서 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같은 경우 전체 20권 중 단종·세조실록 편이 단연 인기인데, 국립중앙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기준으로 월간 대출 건수가 개봉 전후 70건에서 186건으로 증가했다.
역사에 과몰입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댓글놀이와 밈(Meme·유행 콘텐츠)도 유행한다. 네이버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보면, 단종 무덤인 영월 장릉 리뷰창에 댓글이 11일 기준 600개 가까이 달렸다. "홍위(단종)오빠 그곳에선 밥 많이 먹고 외롭지 마" "후손들은 모두 당신 편이야" "후생에는 행복하길" 등 위로 메시지가 가득하다.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도 방문객으로 북적거린다.
반면 악인의 무덤에는 저주와 악담이 쇄도한다. 영화에 등장하지도 않은 수양대군(세조)이 잠들어 있는 '남양주 광릉'에는 "너 따위가 뭔데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냐" "지옥에서 천벌 받아라" 등 악플이 1,000개가 넘는다. '천안 한명회 묘역'에선 "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고속도로 바로 옆이라 차량 소음이 장난 아니다. 이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싶다"는 댓글이 눈에 띈다.
전문가들은 '왕사남'이 사회 전반적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극이지만 줄거리보단 실존 인물들의 관계성, 인간적인 면모,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여 인물에 대한 일종의 '팬덤 현상'을 이끌어냈다"며 "이런 요소들이 실제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사극이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 권력 다툼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단종을 전면에 내세워 조명한 드문 사례"라며 "어린 나이에도 유배지에서 보여주는 리더십을 부각해 젊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줬다"고 분석했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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