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罪 너머의 삶 읽은 ‘흙수저’ 판사
법치의 균형을 맞추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5 2026 07:37 PM
로버트 W. 프랫(Robert W. Pratt, 1947.5.3~2026.1.28)
1998년 미국 아이오와주의 44세 남성이 마약 관련 혐의로 기소됐다.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마약을 운반한, 글을 읽지 못하는 단순 가담자였고 초범이었다. 도주 우려가 없고 사회적으로 위험하지도 않다고 판단해 그를 보석으로 풀어줬던 법원은 정작 재판에선 21년 징역형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연방양형기준(Federal Sentencing Guidelines)’에 따른 마약 관련(소지 운반, 판매) 의무 최저형량이 그거였다. 연방양형기준이란 1984년 제정된 ‘양형개혁법(Sentencing Reform Act)’에 따라 신설된 양형위원회가 정한 범죄 유형별 양형 가이드라인. 유사한 범죄여도 판사에 따라, 피의자의 인종과 빈부, 지역에 따라 들쭉날쭉하던 양형의 불균형을 줄이고, 판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빌 클린턴 집권기인 94년 연방 정부는 이른바 ‘3진아웃법’과 함께 마약 사범 등 강력범죄에 대한 의무 형량을 강화했다. 하지만 ‘문맹자 재판’에서처럼 ‘기준’은 범행 동기와 정황, 피의자의 특수한 상황 등 판사가 감안해야 할 범죄의 맥락, 삶의 맥락을 고려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로버트 프랫은 금수저 아이비리그 출신 일색인 미 연방법원의 드문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 판사였다. 법률공단과 로펌을 거쳐 독립한 뒤에도 공익 시절보다 더 가난한 고객을 대변한 유일한 변호사란 평을 듣던 그는 판사가 된 뒤로도 약자의 법적 권리를 위해 헌신하며 자칫 엘리트 지배의 수단이기 쉬운 '법치'의 진정한 의미를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 '연방양형기준' 등을 두고 상급 법원과 맞섰다. 그가 2020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사면에 대해 정치 중립 의무까지 어겨가며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도 그런 소신 때문이었다. 사진은 은퇴 직후인 2024년 9월 보스턴대 로스쿨 '법관 레지던스' 당시의 프랫. Boston University School of Law
그 불합리에 공개적으로 가장 먼저 반기를 든 현직 판사 중 한 명이 99년 연방법원 2년 차 판사 로버트 W. 프랫(Robert W. Pratt)이었다. 그는 아이오와 유력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연방양형기준을 ‘공평성(Uniformity)’을 위해 ‘정의(Justice)’를 희생시킨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허공에서 뽑아낸 숫자들” 예컨대 소지 마약의 무게로 형량을 나눈 ‘기준’으로 인해 불합리하게 가혹한 형을 선고하고, 장기 수감 비용 등 비효율을 양산하고 개별적 정의를 훼손해온 사례들을 조목조목 들췄다. 그리고 연방판사의 86%가 판사 재량권 확대를 원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우리(판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느냐”고 썼다.
2005년 1월, 마침내 연방대법원이 그 ‘기준’을 의무가 아닌 ‘권고(advisory)’ 사항이라고 판결(U.S v. Booker)했다. 하지만 그 판결 이후 약 2년간 프랫의 판결 9건이 항소법원(제8순회법원)에서 잇달아 파기환송됐다. '권고 기준을 크게 벗어났다'는 게 이유였고, 마지막 아홉 번째가 2007년의 ‘브라이언 갤(Brian Gall)’ 사건이었다.
대학 시절 약 7개월간 엑스터시를 팔다가 손을 씻고 소상공인으로 살던 갤이 뒤늦게 기소된 사건. ‘기준’이 권고한 최저형은 30개월 징역형이었지만, 프랫은 “이미 갱생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라며 3년 보호관찰형을 선고했다. 항소법원이 파기환송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대법원은 “연방양형기준은 법원이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라며 “지방법원 판결문이 밝혔듯이 실제 행위와 양형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리는 가혹한 징역형은 법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조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밝혔다.(Gall v. U.S)
‘9전 10기’ 끝에 프랫이 얻어낸 저 판례 덕에 미국 연방판사들은 비로소 ‘기준’의 족쇄를 벗고 형평과 합리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2021년 인터뷰에서 프랫은 “당시 대법관 9명 중 7명이 내 편이었다(…) 뻐기고 싶었냐고? 글쎄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솔직히 자랑스러웠다. 성숙하지 못했던 탓인데… 당시 나는 무척 화가 나 있었다”고 말했다.
흔히 미국을 ‘판사의 나라’라 평하는 주된 근거는 ‘판례 중심 법 체계'(한국은 법전 중심), 즉 과거의 판결(판례)이 미래를 좌우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낙태나 동성혼, 총기 규제 등 거대 쟁점들이 현안으로 부상할 때마다 미국 사회가 법원을 주시하는 까닭이 그것이다. 그 권력의 중심에 종신 임기로 독립적 지위를 보장받은 800여 명의 연방판사들이 있다.
주요 판결을 앞두고 흔히 언론은 대법원 판사들의 이념 성향을 따지곤 하지만 연방법원이 지닌 근원적 문제는 따로 있다. 학벌-계급 편중 현상이다. 근년 들어 다소 완화됐다고는 해도 현 대법관 9명이 모두 아이비리그 출신(8명이 하버드와 예일 출신)이고, 항소법원과 지방법원 판사 60~70%도 소위 ‘T(op) 14’라 불리는 미국 상위 로스쿨 출신이다.
명문대에서 비슷한 교재로 공부해 유사한 경로와 사회적 배경 속에서 살아온 그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들이 평범한 대학을 나왔거나 못 나온 대다수 시민들, 특히 월세를 못 내 집에서 쫓겨나는 서민과 육체노동자들의 삶을 충실히 이해하고 공평하게 대변할 수 있겠느냐는 것. 민주주의-공화주의의 틀을 벗어난 법치는 엘리트 통치를 거드는 명분이 되기 쉽다.
프랫은 한국으로 치면 지방 전문대쯤에 해당되는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를 나온 희귀한 이력의 연방판사였다. 그는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 이민자들이 정착해 일군 아이오와주 북서부 작은 농촌 마을 에미츠버그(Emmetsburg)에서 태어났다. 토박이인 아버지(Gregson Pratt)는 영세 가족 농장을 경영했고, 아이오와대 평생교육원(Extension Service)에서 영양학과 가정경제학을 가르쳤던 어머니(Laura Margaret Pratt)는 66세에 평화봉사단으로 자메이카를 다녀온 적이 있는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유년기 대공황기의 궁핍 속에서 아버지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어머니에게서 봉사와 헌신의 미덕을 배웠다는 그는 학창시절 건설 현장과 공장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그는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크레이튼(Creighton)대 로스쿨을 나와 72년 변호사가 됐다. 아이오와주 포크(Polk) 카운티 법률구조공단에서 만 3년을 일한 뒤 몇 군데 로펌을 거쳐 85년 개업했지만, 주영역은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산재 장애 사회보장과 저소득층 형사사건이었다. 공익변호사 시절 한 동료(Art Hedberg)는 그를 “개업하고도 공익 시절보다 더 가난한 고객들을 상대한 유일한 변호사였다”고 평했다.

1997년 7월 연방지방법원 판사 취임 행사 당시의 프랫. 공익변호사 시절 동료였던 상원의원 톰 하킨은 "프랫은 엘리트 법률가들과 달리 농민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며 당시 대통령 빌 클린턴을 설득했다고 한다. iowabar.org
프랫은 97년 빌 클린턴의 지명으로 연방판사가 됐다. 보수적인 아이오와주 농촌 출신에 변변찮은 학벌의 그를 적극 추천한 건 공단 시절 동료였던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 톰 하킨(Tom Harkin)이었다. 하킨은 “프랫은 엘리트 법률가들과 달리 농민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라며 클린턴을 설득했다고 한다. 연방판사 프랫은 2023년까지 만 26년 2개월을 재직하며, 저소득층의 취약한 법적 권리를 대변했고, 연방양형기준 외에도 종교와 낙태, 정치자금법 등에 대한 여러 중요한 판례를 남겼다.
아들 부시는 취임 초기 백악관에 ‘신앙 기반 공동체 이니셔티브 사무국’이란 걸 신설,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종교단체의 개입을 적극 후원했다. 종교단체가 국고 지원을 받아 사회사업을 하려면 종교적 색채를 지워야 했던 ‘정교분리’ 원칙을 ‘기회평등’의 논리로 우회한 조치였다. 부시의 ‘종교’란 대개 보수 복음주의 기독교였고, 교회의 핵심 사업 중 하나가 ‘이너체인지 프리덤 이니셔티브(InnerChange Freedom Initiative)’, 즉 전과자 재범률을 낮추기 위한 재소자 교화 프로그램이었다.
교회와 교정 당국은 예배와 신앙 교육에 동참하는 재소자에겐 별도 휴게실과 개인 공간을 제공하고 외부 물품 반입과 면회 등에 여러 특혜를 제공했다. 한 종교자유단체가 소송을 걸었다. 2006년 프랫은 그 프로그램이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했고, 국가 예산을 사실상 전도 활동에 쓰이게 했다며 60일 이내에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지원받은 예산 약 150만 달러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듬해 항소 법원은 이미 집행된 예산 회수를 제외한 프랫의 판결에 동조했고, 부시 행정부는 종교 교육과 세속 프로그램을 엄격히 분리하라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했다.
2009년 아이오와주 대법원이 동성혼을 법제화하자 보수단체들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 대법원장 등 법관 3명을 퇴출시키는 사태를 빚었다. 아이오와주 주판사는 법조인과 시민 추천을 받아 주지사가 임명하지만, 일정 기간 뒤 주민 투표(Retention Election)를 통해 자질을 평가받아야 한다. 1962년 그 제도가 시행된 이래 처음 대법관이 무더기로 쫓겨난 거였다. 보수단체들은 나아가, 주 법관 임명위원회 구성 자체를 바꾸고자 했다. 당연직인 대법원장 외에 주지사가 임명한 시민 7명과 변호사 위원 7명으로 구성되던 위원회가 특정 직업군(법조인)을 편파적으로 우대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게 소송 취지였다. 프랫은 “법관 임명위원회는 일반 행정기구가 아니라 전문성을 바탕으로 후보를 추천하는 특수목적기구”라며 그 소송을 기각했다. 즉 판사는 머릿수(민주주의)가 아니라 법률적 전문성(법치와 공화주의)을 발휘해야 하는 존재라는 거였다. 항소법원 역시 그의 판결을 옹호했지만, 주정부는 공화당이 주지사와 주의회를 모두 장악한 2019년 주법을 개정, 시민 위원을 9명으로 늘렸다.
2010년 한 낙태반대단체가 ‘정치자금공개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걸었다. 정치 광고에 일정액 이상을 쓰려면 정치위원회(PAC)에 등록해, 자금 출처와 사용 내역 등에 대한 엄격한 회계 감사를 받아야 한다는 게 법의 요구였지만, 낙태반대 기부자 명단이 공개될 경우 사회적 비난과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게 단체의 주장이었다. 그해 10월 프랫은 “유권자들은 누가 정치 광고 비용을 대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자금 공개는 선거 투명성을 높이는 공익적 가치가 크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저 일련의 판례들은 이후 유사한 소송에서 중요한 기준이 됐다.
트럼프 집권기인 2018년 12월, 연방의회가 ‘First Step Act’라 불리는 형사사법개혁법을 초당적 합의로 제정했다. ‘양형 기준’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재소자들의 형량을 사후적으로 경감해주고, 말기 고령 환자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재소자의 경우 교정당국(교도소장)의 승인 없이 법원이 재소자(변호사)의 청원을 받아 석방할 수 있게 한 거였다. 이듬해 2월 프랫은 저 법을 활용해 한 말기 암환자(Edward Brown)를 석방한 첫 판사 중 한 명이었다. 초범의 비폭력 마약 범죄자였지만 2005년 ‘기준’에 따라 20년형을 선고받은 재소자는 당시 70대 고령이기도 했다. 프랫은 그가 14년 이상 복역한 모범수란 점과 나이 등을 고려했다며 “그가 여생을 가족과 함께 품위 있게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의일 것”이라고 밝혔다.

프랫은 매년 홈구장 시즌권을 구입하고 주요 선수들의 개인 기록을 꿰고 있을 만큼 맹렬한 야구광이었다. 인스타그램, bostonuniversityschooloflaw
아이오와 시민들에게 그는 ‘시민권 판사’로 유명했다. 미국 시민권을 얻은 이들은 관행적으로 법원이나 이민국이 지정한 장소에서 약식 수여식을 치른다. 2009년 프랫은 그 행사를 독립기념일(7월 4일)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야구팀(Iowa Cubs) 홈구장인 프린시펄 파크(Principal Park)에서 시민축제로 정례화해 은퇴할 때까지 주재했다. 대형 전광판에 새 시민의 얼굴이 비춰질 때마다 모든 관중이 기립박수로 환대하는 이벤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200년 넘게 세계에서 끊임없이 찾아온 이들이 가져온 언어와 문화적 유산의 축복을 누려왔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우리에게 그 축복을 내려주는 날입니다.” 코비드19 팬데믹 기간이던 2020년엔 문서로 환영사를 대신했다. “여러분은 종교와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단 하나의 진정한 미국적 신념과 가치관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믿지 마십시오. (…) 단 하나의 미국적 방식이란 없습니다.” 굳이 야구장이었던 건, 그가 해마다 시즌권을 구입하고, 홈팀 선수들의 개인 기록을 꿰고 있던 야구광이란 것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 그는 “재키 로빈슨(흑인 최초 메이저리거)이 데뷔하고 2주 뒤에 태어났다”고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프랫 판사가 아이오와가 아니라 미국의 ‘유명인사’가 된 건 2020년 말 트럼프 대통령 사면 관련 AP뉴스 인터뷰 때문이었다. 그해 트럼프는 2012년 아이오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주 상원의원 켄트 소렌슨(Kent Sorenson)에게 뇌물(7만3,000달러)를 준 혐의로 2016년 2년 보호관찰형을 선고받은 공화당 고위 간부 2명(John Tate, Jesse Benton)을 사면했다. 인터뷰에서 프랫은 “트럼프와 같은 범죄자가 다른 범죄자를 사면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의 사면을 받으려면 공화당원이거나 (… 추수감사절) 칠면조여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소렌슨 재판 판사가 그였다. 그는 검찰이 양형거래로 범행 일체를 자백한 소렌슨에 대해 집행유예를 구형하자 “사적 이익을 위해 직위가 부여한 공적 신뢰를 악용한 자들은 엄한 벌을 받아야 한다.(…) 정치 부패에 관대해지면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기반이 부식돼 스스로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15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테이트 등은 사면으로 모든 전과기록 말소와 함께 투표권과 피선거권 등 시민권이 회복돼 곧장 정치를 재개했다.
한국처럼 미국의 판사는 ‘법관 윤리강령- 정치 중립(5조)’ 준수 의무를 진다. 주로 선거로 선출되는 주 판사와 달리 종신 임기의 연방판사에게는 더 중요시되는 의무이자 덕목이다. 2016년 대선 예비선거 기간 고집 센 독설가로 유명한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트럼프 후보를 “사기꾼(faker)”이라고 비난했다가 하루 만에 공개 사과한 것도, 그 오랜 원칙을 존중해서였다. 프랫 역시, 이듬해 4월 공식 서한을 통해 “부적절한 당파적 발언”으로 법원과 사법부에 폐를 끼쳤다며 사과했지만, 그의 분노는 의도된 것이었을지 모른다. 연방법원의 반엘리트주의의 상징적 존재인 그였지만, 2009년 아이오와주 대법관 퇴출 사태 때처럼, 다수의 독재(민주주의)에 법치(공화주의)가 짓밟히는 현실을 그는 방관하지 못했다. 대통령 셀프 사면과 이해관계자 사면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H.J.Res .13)은 지금도 발의돼 있다.

프랫은 사무실이나 강당에서 약식으로 치러지던 시민권 수여식을 2009년부터 매년 독립기념일에 맞춰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프로야구팀 홈구장 '프린시펄 파크'에서 시민축제 형식으로 정례화해 은퇴할 때까지 주재했다. Facebook,The Des Moines Register
2023년 은퇴 후 프랫은 고액 연봉의 로펌행을 마다하고 이듬해 9월 보스턴대 로스쿨의 첫 ‘레지던스 법관’으로 초빙돼 학생들과 멘토링- 대화 세션을 진행했다. 그가 예비 법조인들에게 주문한 건 소신과 용기였다.
그는 운동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항년 78세. 그에겐 아내(Rose Mary Pratt)와 2남 1녀, 의붓딸이 있었다. 여러 정책-판결로 대립했던 공화당 주지사 킴 레이놀즈(Kim Reynolds)는 이례적으로, 주 의회 청사와 모든 주 정부 기관의 조기 게양을 지시하고, 학교와 기업, 기타 기관에도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보스턴대 로스쿨 학장 앙겔라 온와치-윌리그(Angela Onwuachi-Willig)는 “프랫의 유산은 뛰어난 법관으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에 심어준 인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애도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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