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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 명품·금 쇼핑 성지
제2 홍콩 노리는 中 하이난 ‘개방 실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14 2026 11:54 AM
봉관 100일 맞는 하이난 자유무역항
"어! 된다, 된다."
지난달 25일, 중국 최남단 하이난섬 하이커우시. 비행기 바퀴가 공항 활주로에 닿자마자 휴대폰을 켜서 카카오톡을 열었다. 중국 본토에서는 '만리방화벽(중국 당국의 인터넷 통제 시스템)'에 막혀 정상적으로 이용할 수 없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순탄하게 전송됐다. 사진 파일도 느리게나마 전송됐다. 베이징 등 중국 본토 내 도시에서는 우연이 겹쳐야만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달 27일 중국 하이난성 단저우시에 위치한 양푸항 전경. 단저우(하이난)=이혜미 특파원
조금 더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는 서방 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이나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의 사정은 조금 달랐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능을 이용해 사진 한 장을 선택해 게시를 눌렀다. 애플리케이션(앱)은 정상 작동하는 듯했지만, 2시간 동안 헛바퀴를 돌더니 '자유무역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결국 게시되지 않았다.
기자가 현지 관계자를 통해 확인하니, 원활하게 해외 사이트를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은 하이난 내 일부 지역에 한해 신청·등록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었다. 화물·자금·인력 이동 등 경제적 요소를 최대한 자유화해 '제2의 홍콩'으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자유무역항 하이난이 여전히 촘촘한 사회 통제 아래에 놓여있는 것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1선은 '열고' 2선은 '잠그고'... 거대한 '보세구'가 된 섬

지난달 27일 중국 하이난성 청마이현에 위치한 하이커우 종합보세구에 화물 차량이 진입하고 있다. 청마이현(하이난성)=이혜미 특파원
'경제는 개방, 사회는 통제'. 대만 전체 면적에 달하는 섬 하나를 통째로 특별 세관구역으로 묶은 하이난이 작동하는 핵심 원리다.
2018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보아오포럼에서 하이난 전역을 자유무역시험구로 지정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발표된 '하이난 자유무역항 건설 총체방안'은 2025년까지 제도적 기반을 완성하고 2050년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나 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유무역항으로 건설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중국 본토와 다른 경제적 자유 수준을 보장해,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를 싹 틔우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7년간 준비를 거쳐 하이난은 지난해 12월 18일 3만여㎢ 전체 섬에 대한 '봉관(관세 구역 봉인)'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 해안선이 아닌 섬 자체를 관세 경계로 삼아, 하이난 전역을 하나의 거대한 보세구(세금이 보류되는 지역)처럼 운영하는 체제다. 해외에서 하이난으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수입 상품에 대해 관세가 단계적으로 면제되며,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세관검사 없이 즉시 반출이 가능하다. 대신 하이난에서 중국 본토로 반입될 때는 별도의 심사와 과세 기준이 적용된다.
이른바 '1선 개방, 2선 통제' 전략이다. 해외와 하이난 사이의 경계인 '1선'에서는 통관을 대폭 간소화하고 제로관세 품목을 확대해 개방성을 높인다. 반면 하이난과 중국 내륙을 잇는 '2선'에서는 가공 부가가치를 30% 이상 창출했을 때 관세 면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1선에서 개방한 품목은 2선에서 관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정밀한 통제 시스템이 적용된다. 경제적 실험은 허용하되, 그 효과와 파급은 중앙이 관리하겠다는 중국식 개방 모델인 셈이다.
섬에 들어온 순간, 세금은 멈추고 물류는 흐른다

지난달 26일 중국 하이난성 청마이현 하이커우 종합보세구 내 자동화 물류창고에서 무인 운반 로봇이 쉴 새 없이 오가면서 나른 상품을 관리 직원이 검수하고 있다. 청마이(하이난성)=이혜미 특파원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세금은 일단 '보류'됩니다."
지난달 26일, 하이커우 종합보세구 내 자동화 물류창고에서 천장 가까이까지 이어진 높이 15m가량 선반 사이로 무인 운반 로봇이 쉴 새 없이 오갔다. 해외에서 들여온 샴푸 등 생필품 상자들이 '보세' 상태로 적재돼 있었다. 아직 중국 내수시장에 정식 반입되지 않은 물량이어서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상태다. 장지민 창고 관리 책임자는 "창고에서는 관세가 부과되지 않고 국내로 반입되는 시점에 과세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보세창고 한편에서는 '보면(보세·면세) 연계'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면세점 판매용으로 전환된 상품이 가상 통관 게이트(뎬즈차커우)를 통과해 바로 옆 면세품 감독창고로 이동한다. 과거에는 보세구의 물리적인 대문을 나가 다시 들어오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구역 안에서 전자 신고만으로 출구·입구 절차가 한 번에 처리된다. 그렇게 이동한 상품은 면세품 감독창고 안에서 자동 분류 시스템을 통해 출고된다. 장씨는 "단지 출입구를 오가는 시간을 줄였을 뿐, 모든 통관 신고 절차는 여전히 해관(중국의 세관 당국) 감독 아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 관찰한 결과 '보면 연계'를 통해 기업과 소비자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혜택을 얻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입 원료에 대한 관세 납부를 뒤로 미루거나 조건부로 면제받을 수 있어 자금 부담이 줄어든다. 통관 절차가 단지 안에서 일괄 처리되면서 물류 시간이 단축되고, 그만큼 재고 회전율도 높아진다. 소비자에게는 해외 브랜드 제품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점이 체감된다. 특히 하이난 면세 한도(1인당 연 10만 위안) 내에서는 일부 품목이 중국 본토보다 저렴하게 판매된다.
이날 하이난섬 내 대형 면세점에서 명품 브랜드 가방의 가격을 직접 확인했더니, 본토에서 2만 위안(약 424만 원)에 팔리는 가방이 1만5,000위안(약 318만 원)에 진열돼 있었다. 할인 혜택까지 적용하면 금 40g을 구입할 경우 본토보다 1만 위안(약 212만 원) 싸게 살 수 있다는 팁이 확산하면서, 재테크 수단으로 금을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금 쇼핑 성지'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무관세 생산기지' 깃발 꽂는 기업들

지난달 27일 중국 하이난성 단저우시 양푸경제개발구에 입주한 오스카국제식용유회사에 대두를 실은 트럭이 진입하고 있다. 단저우(하이난성)=이혜미 특파원
"2020년 프로젝트 계약 후 착공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생산 설비를 완비했어요."
하이난성 단저우시 양푸경제개발구에 입주한 오스카국제식용유회사는 하이난 자유무역항의 '가공증치 30%' 정책을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다. 이 정책은 가공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30% 이상 창출되면 내륙 반입 시 관세가 면제되는 것을 말한다. 캐나다와 브라질 등지에서 들여온 유채씨와 대두는 보세 상태로 공장에 반입돼 압착·정제 과정을 거친다. 완제품은 다시 해외로 수출하거나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중국 본토로 판매된다. 해외로 재수출하는 물량에는 애초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방문한 공장 단지 안에서는 트럭이 쉴 새 없이 유채씨와 대두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 회사의 차오유화 총경리는 "자유무역항 정책 덕분에 원료 조달과 제품 수출이 동시에 유리해졌다"며 "내수와 해외 시장을 함께 겨냥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21년 19만 톤이던 이 회사의 상품 가공량은 지난해 158만 톤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생산액도 10억 위안에서 68억 위안으로 증가했다.
중국의 '국민 음료' 브랜드 미쉐빙청은 커피 원두를 무관세로 들여와 하이난에서 가공하면 추가 관세 없이 중국 다른 지역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현지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홍콩 기업 스와이어퍼시픽 역시 자회사를 통해 중국 시장용 코카콜라 공장을 신설하며 하이난을 거점으로 삼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봉관 조치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하이난에서 본토로 판매된 면세 화물은 약 5,681만 위안(약 120억 원) 규모이며, 감면된 관세는 약 230만 위안(약 5억 원)에 달한다.
제2의 홍콩? '관리된 자유'가 마주한 숙제

지난달 27일 중국 하이난성 하이커우시에 위치한 면세점의 한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 있다. 하이커우(하이난성)=이혜미 특파원
이달 말이면 봉관 100일을 맞는 하이난 실험의 핵심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경제적 개방과 정치적 통제가 동시에, 그리고 장기간 함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관세를 낮추고 통관을 간소화하는 일은 행정 결정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자본과 정보, 인력이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더 넓은 예측 가능성과 제도적 안정성을 요구하게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자유무역항의 경쟁력은 낮은 세율 자체보다, 규칙이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신뢰에서 비롯돼 왔다.
홍콩은 150년 넘게 축적된 영미법 기반의 사법 체계와 투명한 법 집행, 글로벌 금융 인프라를 통해 국제 자본의 신뢰를 쌓아왔다. 반면 하이난은 중앙정부 체제 아래에서 설계·운영되는 '관리된 자유항'에 가깝다. 경제 영역에서는 과감한 완화를 시도하지만, 사법과 행정 권한은 본토 구조 안에 있다. 법적 자율성과 제도적 예측 가능성이 어느 수준까지 보장될지에 따라 투자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쉬톈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수석 경제학자는 "하이난 모델은 공급망 재통합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홍콩이 자랑하는 법률 시스템과 금융 개방성은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일부 해외 언론은 "하이난 자유무역항이 홍콩처럼 거래 중심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과 무역 규범 준수에 대한 명확한 진전이 요구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봉관은 이제 막 시작됐다. 보세구역 자동화 물류창고의 컨베이어 벨트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제도의 신뢰는 시간 위에서만 검증된다. 하이난은 지금, 경제적 개방과 정치적 통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시험받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하드웨어'는 갖췄지만, 법치와 투명성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이식은 여전히 하이난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하이커우·단저우·청마이(하이난성)=이혜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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