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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냐, 영월이냐
단종 충신 엄흥도 ‘진짜 묘 논쟁’ 재점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29 2026 10:23 PM
영월지역 후손 청령포 인근 묘 조성 군위 문중은 “군위 숨어 살다 묻혀” 학계 “당시 영월 거주 어려웠을 것” 족보^문헌 분석 땐 군위 묘에 무게 영화는 엄흥도 묘 소재 영월로 묘사 군위 “국가 차원 공식 규명을” 요청
'임금을 향해 충성을 다하고 구차히 삶을 이어가지 않았으며 끝까지 충절을 지켰다.'

관광객이 21일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있는 엄흥도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대구=김재현 기자
21일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엄흥도(1404~1474) 묘소의 묘비에 적혀 있는 글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의 영향으로 이곳에는 오전부터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도로에서 묘소까지는 걸어서 3분 남짓 거리로, 탐방로도 잘 정비돼 있는 편이다. 묘비는 엄홍도의 삶을 두고 '난세 속에서도 군자의 도를 지키고, 충성과 의리를 죽음으로 완성해 후세에 전해진다'고 부연했다.
단종(1441~1457)의 시신을 수습한 충신 엄흥도의 ‘진묘'(眞墓)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강원 영월군에도 그의 묘가 있지만, 학계와 일부 후손은 이를 '가묘'로 보고 군위군에 있는 묘소를 진짜 묘로 본다. 역사의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정확한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24일 영월 엄씨 군위 문중 등에 따르면, 영월 호장(戶長·향리)이었던 엄흥도는 단종의 장례를 치른 뒤 몸을 숨기며 살다가 생을 마쳤다. 사후에 충절이 알려지며 여러 차례 관직을 받았고, 1876년에는 '충의공'(忠義公) 시호를 받았다. 영월 지역 후손은 청령포 인근에 묘를 조성해 제사를 이어 오고 있다.
반면 군위 문중은 영월 묘는 상징적 의미의 가묘일 뿐, 실제 묘는 군위 화본리에 있다고 주장한다. 20대 종손 엄근수(61)씨는 "엄흥도는 단종 시신을 수습한 뒤 둘째 아들 엄광순(1436~?)과 함께 군위로 내려와 숨어 살았고, 사후에도 이곳에 묻혔다"며 "우리는 선대부터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족보를 지켜왔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군위에 있는 것을 진묘로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2009년 김광순 경북대 명예교수가 발표한 '충의공 엄흥도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 등 연구에 따르면, 당시 정치 상황상 단종을 도운 인물이 영월에 계속 머무르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조(1417~1468)가 단종 지지 세력을 강하게 탄압했던 데다, 고발과 무고가 잦았던 시대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엄흥도 편지(1464)와 영월엄씨족보(1748), 충의공실기(1936) 등 문헌에서도 그와 후손이 지금의 군위 화본리 일대에 은거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또 단종 시신 수습에 관여한 군위현감 정사종(?~?)과의 연관성, 숙종(1661~1720) 때 후손이 묘 위치를 '의흥'(義興)으로 언급한 기록, 영조(1694~1776)가 후손에게 군역 면제 문서를 내린 점 등도 근거로 제시된다. 특히 아들 엄광순의 묘가 같은 지역에 있다는 점도 중요한 단서로 꼽힌다.
묘소 인근에는 엄흥도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집터도 있다. 지금은 밭으로 변했지만, 주변에서 옛 도자기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랫동안 지역사를 연구한 박용덕 군위군 향토사위원은 "영월 문중에서도 군위 묘를 진묘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곳은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장소"라고 말했다.

관광객이 21일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있는 엄흥도 묘소를 둘러보고 있다. 대구=김재현 기자
최근 영화 흥행으로 관심이 커지면서 논쟁은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영화에서는 엄흥도의 묘가 영월에 있는 것으로 묘사돼, 관객 사이에서 혼선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위 주민들은 "많은 관객이 영월에 있는 것을 진묘로 오해하고 있다"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위군은 방문객 증가에 맞춰 안내판과 진입로 정비에 나서는 한편, 국가유산청에 조사를 의뢰하고 관광 자원화도 검토 중이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역사적 인물이 머문 지역이라는 점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며 "국민에게 교훈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군위 문중도 국가 차원의 공식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문중은 20일 군위군에서 ‘충의공 엄흥도 군위군 진묘 성역화 제안 고함’ 행사를 열고, 후손과 주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묘 인정과 성역화를 촉구했다. 문중 측은 "500년 동안 이어진 논란을 풀고 역사의 진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후손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구=글·사진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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