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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연극반 태리쌤의 진심...
지방·도시 ‘수평적 연대’의 실마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r 28 2026 07:10 PM
tvN ‘방과후 태리쌤’ 문경 ‘전교 18명’ 초교서 연극 수업 ‘농촌 힐링 예능’ 전형적 시선 벗어나 위계 지운 ‘다름’으로 서로를 일깨워
아이를 대하는 건 언제나 두렵다. 나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아이의 감정이 다치면 어쩌나, 내 변변치 못한 생각에 아이가 영향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 때문이다. 아이를 대하는 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은 또 있다. 바로 ‘지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도시인에게는 건물이 없는 빈 땅을 가리키며 소멸이나 쇠퇴를 말하는 고약한 습성이 있고, 나는 그 습성이 지역사회의 가장 큰 위협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울에 살고 있는 연예인들이 소멸 위기 지역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친다는 ‘방과후 태리쌤’의 기획은, 이런 내겐 몹시 위태로운 발상이자, 열어보기도 전에 한숨이 먼저 나오는 우려의 대상이었다.
tvN 예능 '방과후 태리쌤'. tvN 캡처
그러나 tvN의 새 예능 ‘방과후 태리쌤’은 기존 ‘농촌 힐링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견실한 태도와 새로운 접근으로 그런 의심을 천천히 씻어 내린다. 경북 문경으로 내려가 전교생이 18명뿐인 용흥초등학교 내 사택에 기거하며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게 된 김태리는 방송 내내 자주 눈물을 보인다. 그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에 울고, 작은 학교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아이들의 순수함에 울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에 울고, 아이들이 자기의 말에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며 운다. 화면 너머로 전해지는 극심한 압박감은 보는 이들마저 힘들게 하지만, 이내 눈물을 닦고 반성과 고뇌로 매일 밤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는 그의 다음 얼굴은, 아이들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책임감 있는 어른의 것이기에 덩달아 호흡을 고치게 된다.
카메라는 이러한 김태리를 집요하게 비추면서, 동시에 아주 먼 거리에서 이방인인 그를 지역의 일부로 담는다. 보조 선생님이자 김태리의 동료로 기꺼이 이곳 생활을 함께하기로 한 최현욱의 존재는,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김태리의 개인적 고투를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로 확장하며, 제작진이 보고회에서 밝힌 ‘지역’이란 키워드를 환기한다. 자신을 몰아세우면서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얻게 하고 싶은 김태리와, 아이들과 그저 친근한 관계로 섞이며 하나가 되고 싶은 최현욱은, 그러한 태도의 차이로 매일 언쟁을 벌인다. 제작진은 이 둘의 충돌 사이에 “싸우고 화해하지 않으면 놀 친구가 너무 적어진다”고 말하는 연극반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선생님과 학생, 어른과 아이, 도시와 농촌의 위계를 지워내고, 각자의 ‘다름’으로 서로를 일깨우는 공동체의 이상을 제시한다.

tvN 예능 '방과후 태리쌤'. tvN 캡처
흔히 방송에서 지방은 모든 문제가 사라진 판타지의 공간이거나, 도시적 해결책을 구상하게 만드는 실패의 공간이자 개척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방과후 태리쌤’은 소멸하는 지역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공백을 ‘연극’이라는 지극히 비개발적인 행위를 통해 도시와 농촌이 가진 각자의 결핍을 새로운 방식으로 채워나간다. ‘토토’ 역할을 원했지만 ‘허수아비’가 되어 실망한 효민을 달래며 김태리는 “캐릭터의 매력을 알게 되는 순간, 연극은 더 재밌어진다” 말한다. 이 말은 어떤 배역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며 자신의 자리를 긍정하고, 거기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길 바라는 어른의 성숙한 지지다. 실제로 소멸을 마주한 땅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답 또한 이 지점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튿날 김태리가 뒤늦게 발견한 효민의 편지 속에 적힌 “쌤 저 토토 하고 싶어요. 연습했어요”라는 문장은 조언 너머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바라보게 한다. 효민의 간절한 열망은 이 연극이, 혹은 이 지역이 마주한 소멸의 운명이 결코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이 소멸한다는 것은 그 지역의 내부 결함 때문이 아니라, 경쟁 지향적인 개발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결과다. 주어진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자는 정답을 말하면서도, 그 역할을 바꿀 기회조차 쉽게 얻을 수 없는 현실을 아는 두 배우는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눈물에서 함께 느리게 걷자고 말하지 못한 어른으로서의 회한과, 사라져가는 공간과 예우받지 못하는 이들을 대하는 새로운 감정의 윤리를 발견한다.
안나 칭은 저서 ‘세계 끝의 버섯’에서 벌목장의 폐허 위에 자라는 마츠타케 버섯을 관찰하며 “자본주의의 폐허에서도 삶은 지속된다”고 말한다. ‘방과후 태리쌤’에서 문경은 이런 버섯이 자라는 공간으로, 각기 다른 시간에 만들어진 창틀과 담벼락처럼 마을 주민들의 오랜 기억이 겹겹이 쌓인 삶의 터전이다. 이곳에서 그들이 만드는 연극 ‘오즈의 마법사’는 ‘시골’과 ‘순수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외면받는 것들을 붙잡고 그 가치와 힘을 되살리는 저항적인 시도다.

tvN '방과후 태리쌤' 포스터. tvN 제공
머물던 도시와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과, 새로운 문화를 익혀나가는 아이들은 문경 사과와 피자를 나눠 먹으며 서로를 함께 배우는 자로 인식하고, 방송은 그 관계를 통해 지역과 도시를 긴밀하게 조망하며 수평적 연대의 가능성을 복원한다. 관광지가 아닌 문경은 각기 다른 시간에 만들어진 창틀과 담벼락처럼 식물, 동물, 인간들이 함께 만든 삶의 터전이다. 작은 연극반이 올릴 연극을 응원하며 이 터전에서 ‘소멸의 징후’만 찾는 시선을 거두고, 개발과 성장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탐구하자. 각자의 배역에 몰두하기만 해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연극을 그려갈 수 있도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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