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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페니, Peny!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Mar 30 2026 10:14 AM


그녀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들어왔다. 뉴스를 통해서다. 하이파크 근처 어디에 그녀가 나타났다거나, 또 어느 주택가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일 년에 한두 번? 그녀의 소문은 심심찮게 떠돌았고, 그때마다 늘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럴 때마다 살짝 궁금증을 갖기는 했지만 그냥저냥 잊어버리곤 했다.

지난달 어느 날, 예년에 드문 폭설이 내린 후였다. 우리집은 물론 이웃의 앞뒤 뜰에 엄청 많은 눈이 쌓였고, 토론토 시내의 길과 주택가의 지붕에 눈에 덮여 명화(名畫)속의 장면 같았다.

그날 오후, 나는 양편에 눈이 쌓여 조붓해진 도심의 길들을 지나 피지오테라비(Physiotherapy)를 마치고 돌아왔다. 2층에 있는 나의 방에서 굼뜬 동작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늘 하던 대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하여 펼쳐진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나에게 소소하지만 즐거운 습관이다. 그날도 그랬다.

무심히 내려다본 집 앞의 뜰과 이어진 길, 나뭇가지들 사이로 어룽어룽, 뭔가의 움직이는 동작이 감지되었다. 왼쪽방향이었다. 언제나처럼 누군가 걷고 있으려니, 생각하며 잠시 바라보았다. 나무사이를 벗어나 나의 시야 중심으로 드러낸 모습은 네발 달린 짐승이었다. 개였다. 그것 역시 자주 있는 일, 새로운 광경은 아니었다. 허스키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그 개는 걸음을 재촉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와 동반하지도 않고, 혼자, 느긋했다. 지나온 뒤쪽(왼쪽)과 가고 있는 앞쪽(오른쪽)을 번갈아가며 보며, 길 양편으로 걷다가 길 중앙으로 가기도 하면서 유유했다. 곧바로 앞을 향해 가는 것도 아니고, 앞뒤 좌우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듯 살피며 느린 걸음으로 걷는 품이 느긋했고, 그 행동거지가 영락없이 함께 산책 나온 주인을 잃고 찾거나, 친구를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몸집은 회갈색이었고 중 톳 개 크기였는데, 다이어트 중인 것처럼 야위어 보이는 몸매였다. 꼬리가 뭉툭했다. 
내가 서있는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반사적으로 몸을 기울였다.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일은 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 없이 혼자? 좌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뒤따라오거나 동행한 사람이 없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john-bell-hagopmewc6m-unsplash.jpg

언스플래쉬

 

느린 행보로 우리집 앞, 시선의 중앙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어슬렁거리며 건너편 갓길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듯하던 바로 그 순간, 번개처럼 움직였다. 대각선 집 앞의 뜰에 쌓인 눈밭으로 뛰어드는가 싶더니 사라졌다. 그 집 뜰 가운데 몸통으로 서 있는 나무의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검은 선(線) 한줄기가 동시에 포착되었다가 사라졌다. 이내 조용해졌다.
개의 행방을 찾으려고 허리를 약간 굽혀가며 창가로 다가서서 시선을 모았다. 십초도 채 안될 만큼의 짧은 정적이 지나갔다. 그 나무의 검은 밑둥주면에서 잠시 눈보라가 이는 듯 했다. 초점을 모은 나의 시선 안에 밑둥의 뒤편에서 검은 걸레 조각을 입에 물고 있는 그 짐승의 모습이 나타났다. 청설모였다. 나의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잠깐 주변을 살피는 듯하더니, 밑둥 아래 눈밭에서 자리 잡고 앉아 걸레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목숨을 발기기 시작했다. 굶주린 배를 채우는 피의 파티였다.
한 목숨이 사라지는 데는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왼쪽에서 키 큰 남자가 어린 개를 끌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애견과 함께 산책하는 낯이 익은 광경이었다. 유유자적하게 다가오던 그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어룽어룽 비치는 그림자 영역으로 들어갔다. 나무 아래에 오줌도 누이고 똥도 누이면서 느긋했다. 순간 나는 그 애완견이 위태롭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통유리인 유리창이라 열 수도 없었다. 옆의 조붓한 방충망 창이 있지만 그 문을 열고 큰소리로 말하면 지금 피의 파티에 열중하고 있는 짐승도 알아들을 것 같았다.
통유리 문을 두드렸다. 전혀 올려다볼 기색이 없었다. 통통통통... 여기요, 여기요~, 소리를 죽여 가며 몇 차례 두드리자 낌새를 느낀 그 남자가 올려다보았다. 나는 손가락 언어와 시늉을 적극적으로 보냈다. 그 남자가 나의 손가락 지시를 따라 파티현장을 바라보더니, 얼른 개의 목줄을 당겨 품에 안고 우리집으로 피신해 들어왔다.

그 남자는 그 짐승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개가 아니라 카이오티(코요테, coyote)라고 했다. 뭉툭하게 잘린 꼬리가 특색이고 가끔 우리 마을에 나타나서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페니, Peny,라고 부른다고 했다.
봄이나 가을철에 가끔 주택가로 내려오는데, 특히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이 되면 더 자주 눈에 띈다고 했다. 
나는 그날 그렇게 그녀를 처음 만났다.♞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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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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