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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수국 한송이’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02 2026 03:28 PM
옛 다이어리를 정리하다가 총각 시절에 법정스님을 뵈었던 기억이 떠 올랐다. 1983년 초여름, ‘알 수 없는 바람’에 이끌려 혼자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로 여행을 갔었다.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시외버스가 송광사 주차장에 멈춘다. 열린 버스 문 사이로 짙은 흙 내음과 풀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주차장에서 송광사까지는 소나무 숲 속을 20여 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황토와 굵은 모래가 뒤섞인 길을 걷는 동안 서걱거리는 소리가 정겨웠지만, 한편으론 돌아가야 할 막차 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주차장 근처에 민박집이 몇 군데 있었지만, 혼자 그곳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일행 중,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을 붙였다. “으데서 오셨어예?”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라고 했더니 “혼자 왔는갑네요?” 하며 다정하게 묻는다. “예. 순천에 사는 친구도 볼 겸 해서 왔죠.”라고 답했다. “아, 법정스님 뵈을라고 오셨는갑네요?” 한다.
“아니요. 저는 송광사… 하다가, 어~ 법정스님이 이곳에 계세요?”하고 되물었다. 당시 나는 법정스님이 그곳에 계시는 줄 몰랐다. “예. 저희는 불일암에 계시는 법정스님을 뵙을라고 대구에서 왔으예”하며 친구를 가리킨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법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이왕 온 거 우리캉 같이 법정스님을 만나고 가시지예” 한다.
당시 법정스님은 인기 스타 작가였다. 나도 ‘무소유’라는 산문집을 가지고 있었다.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계획에도 없던 길을 따라나섰다. 송광사의 웅장한 사찰 기운을 뒤로하고 오른쪽 산등성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한 사람만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은 길이다.
초여름의 햇살은 참나무 잎사귀 사이로 잘게 부서져 어깨 위로 쏟아지고, 산새들은 외부인의 침입을 예상한 듯 숲의 정적을 깨고 날카롭게 울어댄다. 마치, “비상, 비상! 모두들 경계를 늦추지 마세요”하며 알리는 것 같았다.
불일암에 가까워질수록 길은 대나무 숲으로 덮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만 개의 대나무 잎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한숨 같기도 했다. 발아래, 풀잎 사이에서는 이제 막 눈을 뜬 풀벌레들이 “나, 여기 있어. 밟지 마!”하며 존재를 알린다.
산수국은 겉모양은 수수하지만 내면의 꽃이 따로 있다. 꽃차례의 가장자리에는 화려한 '가짜 꽃'이 피어 벌과 나비를 유혹하고, 안쪽에는 아주 작고 소박한 '진짜 꽃'이 숨어 있다.
‘무소유의 길’이라 불리는 곳을 30여분 정도 올라가니, 마침내 불일암 앞마당이 보인다. 그곳엔 태양을 머금은 푸른 수국이 몽우리 져 있고, 낮은 툇마루엔 벌써 법정스님을 뵈러 온 10여 명의 방문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더기 옷을 입고 있는 행자스님이 우리를 맞았다. “조금 전 법정스님 불공(佛供)을 시작 하였으니, 근처 텃밭을 둘러보시고 있다가 오세요” 하며 방문자 신청을 해 달라고 한다. 방문객들이 많다 보니, 간단한 인적 사항을 미리 적어야 면담이 가능했다.
암자 앞마당에는 법정이 직접 먹거리를 키우는 작은 채소밭이 있었다. 여기는 외딴곳이지만, ‘고독하지 않은 외로움’을 즐기는 곳이지 싶었다.
새벽이면 자욱한 산안개가 암자를 감싸 안고, 상추와 무, 토마토와 딸기 등에 이슬이 맺힐 것이다. 채소밭을 거닐면 자연이 건네는 무언의 대화가 펼쳐질 것 같았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와 저 아래 산사에서 들려오는 풍경 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 음악처럼 들렸다.
불두화(佛頭花)는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꽃이다.
그곳 시간은 일상의 시계와 다르게 흐를 것 같았다. 저녁노을이 조계산 능선을 붉게 물들일 때면, 법정스님이 찻잔에 비친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글을 쓸 것이다. ‘세상에 내 것은 없으며, 이 아름다움 풍경조차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법정은 불일암의 삶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무와 꽃, 그리고 이름 없는 풀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기쁨이었다."
스님은 화려한 장미나 작약보다, 산과 들에 스스로 피어나는 소박한 불두화와 산수국을 좋아했다.
불두화(佛頭花)는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꽃이다. 처음에는 초록빛을 띠다가 활짝 피면 하얗게 변하는 이 꽃은 산사의 정취와 가장 잘 어울린다. 산수국은 겉모양은 수수하지만 내면의 꽃이 따로 있다.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때가 되면 피어나는 그 섭리를 스님은 '무소유'의 삶에 비유하셨다.
법정에게 수국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스님의 마지막 부탁이다. "번거로운 절차 없이 화장하여 평소 아끼던 나무 아래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은 불일암 수국 나무 아래 안치되었다. 스님은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꽃의 거름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아름다운 앞마당 정취도 잠시, 벌써 산 그늘이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다시 조급 해진다. 순천으로 돌아가는 막차를 놓치면 어쩌지 하는 절박함이 밀려왔다.
마침, 법정스님이 불공을 마치고 나왔다. 스님이 방문자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차례가 되자,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제가, 지금 막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이렇게 얼굴만 뵈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했더니 “아이고, 여기서 주무시고 가셔도 되는데…”하며 아쉬워하셨다.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하고 불일암을 서둘러 내려왔다.
‘비움의 평온함’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더 빨라진 발걸음으로 내려왔다. 다시 덜컹거리는 버스 속, 가슴 한 구석엔 ‘좀 더 시간을 갖고 법정스님을 만났어 야 하는데’하는 아쉬움과 막차를 탄 안도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내 안에는 이미 푸른 산수국 한 송이가 피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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