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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의 공간을 상상 연극의 존재 이유죠”
‘연극계 노벨상’ 입센상 시어터 메이커 구자하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1 2026 01:07 PM
"양극화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 사이의 공간(the space in-between)'을 상상하는 연극적 실천을 높이 평가한다."
벨기에 겐트에 거주 중인 시어터 메이커 구자하는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연간 5~6개월 정도는 벨기에 밖에서 지내고 있다. ⓒBea Borgers
분열의 시대에 연극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노르웨이 정부가 제정한 세계적 권위의 연극상인 국제 입센상은 한국 창작자 구자하(42)에게서 그 가능성을 봤다. 국제 입센상 위원회는 지난달 상금 250만 노르웨이 크로네(약 3억9,000만 원)와 함께 2년에 한 번 주는 이 상의 수상자로 구자하를 선정하며 이같이 밝혔다. 현대 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피터 브룩, 페터 한트케, 욘 포세 등이 거쳐간 상으로, 구자하는 아시아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다.
벨기에 겐트를 기반으로 연극·음악·영상·기술을 결합한 작품을 만드는 '시어터 메이커(Theatre Maker)' 구자하를 지난달 말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최근작 '하리보 김치'로 말하고 싶었던 주제가 정확히 '사이의 공간'이어서 심사평에 놀랐다"고 말했다.
구자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201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예술대(AHK) 동시대 연극 연출 석사 과정(DAS Theatre)에 진학하면서부터 쭉 유럽에서 거주 중이다. 그는 "벨기에에서 로컬 예술가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한국인 예술가로도 불린다"고 했다. 정작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유럽에서 만든 작품이라는 이유로 ‘해외 초청작’으로 소개되곤 한다. 그는 "15년 타향살이를 하다 보니 '나중에 나는 어디서 죽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며 경계인으로서의 혼란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리보 김치'. ©Bea Borgers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 '하리보 김치'(2024년 오스트리아 초연)다. 이질적인 유럽의 젤리 브랜드(하리보)와 한국 전통 음식(김치)을 결합했다. 구자하는 일종의 회복 탄력성을 의미하는 '젤리니스'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는 "연약해 보이지만 아무리 눌러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젤리니스야말로 이방인으로 사는 이들에게 강력한 힘"이라며 "비주류 혹은 소수자의 삶을 더 눈여겨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이의 공간'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이지만 분노하거나 외치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심사평 역시 구자하의 작품 철학을 정확히 읽어낸 표현이다. 그는 "메시지가 강하면 관객이 더 많은 감동과 충격을 받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관객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며 "예술적 경험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생각할 기회를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왔다"고 강조했다.
구자하의 작품은 무엇보다 형식적으로 독특하다. 대표작 '쿠쿠'(2017년 오스트리아 초연)는 한국 사회의 지난 20년을 전기밥솥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입센상 시상식이 열리는 9월, 오슬로 국립극장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비인간 공연자'는 한예종 재학 시절부터 그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그는 "연극이 인간 중심의 예술이라고 학교에서 배웠지만 그것도 창작자가 정해 놓은 한계"라며 "역사적으로 연극이 가장 위축돼 있는 이 시기에 연극이 어떻게 힘을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형식적인 실험과 도전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구자하의 대표작 '쿠쿠'는 전기밥솥 브랜드 이름인 동시에 영어에서 ‘미친 상태’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의 제목이다. © Radovan Dranga
차기작은 2027년 초연 예정인 ‘본투비 K투비 팝’. 여러 이야기를 담을 예정으로 국가 문화 정책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다. "K팝 산업을 국가 브랜드화하는 오류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방탄소년단(BTS)이 가진 강력한 힘이 정부가 국가 브랜드로 만들려는 순간 훼손된다"며 "오히려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예술에 집중할 때 대중문화와 상생하며 더 큰 결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입센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지 보름이 넘었지만 아직도 축하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고, 지금은 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상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하지만 수상 이후 공개되는 작업은 다른 시선과 평가를 받겠죠. 한국적 소재를 다루지만 전 세계 관객을 위한 작품으로 만들어 연극을 통한 국제적 연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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