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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도로 살아도 되는 때
김영수(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16 2026 10:22 AM
수필이 있는 뜨락(33)
조용하던 오후가 들썩거렸다. 남편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떡볶이를 만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대단한 요리도 아닌데 부엌만 어지럽히겠다는 생각이 앞섰고 양배추 생각도 났다. 같이 넣으면 좀 덜 맵겠지. 엊그제 먹던 양배추가 남았던 것 같아 냉장고 문을 열고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정말 말 그대로—몸이 반으로 꺾인 듯한 통증이 밀려와 꼼짝할 수가 없었다. 숨이 턱 막히고 정신이 아득할 만큼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기어가다시피 거실 소파까지 가서 몸을 눕혔다.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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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대로 집에 있던 약을 찾아 바르고 누워 있었지만, 통증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하필이면 주말이어서 병원에 가려면 이틀은 더 기다려야 했다. 막막했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바르며 꼼짝하지 않고 이틀을 견디자 조금 나아진 듯했다. 가정의에게 가니 근육이 놀란 거라고 했다. 힘을 준 것도 아니고, 그저 양배추 하나 집으려던 것뿐인데 그게 근육을 놀라게 했다니. 대체 내 근육은 얼마나 가만가만 움직여야 괜찮다는 건지. 예전처럼 움직였다 해도, 나이 든 근육에는 그마저 무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무리한다는 말은, 어떤 일을 ‘더’ 심하게 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몸 상태를 잊고 ‘똑같이’ 했을 때도 해당한다고. 그 말에 나는 괜히 서운하고 야속했다.
세상일은 내가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노화한 몸에, 한창 팔팔하던 시절의 젊은 기억이 불쑥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과거의 귀엣말을 들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몸은 이미 예전 같지 않은데, 마음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앞서 나가면 이번처럼 문제가 생긴다. 종일 잡초를 캐고 나서 이틀을 앓은 적도 있다.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현재의 몸 상태를 잊고 옛 기억에 따라 움직이면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내 경우는 ‘퀵quick’에 익숙했던 과거의 속도와 ‘슬로우slow’로 바뀐 현재 속도가 충돌하면서, 허리 근육이 그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생긴 일이었다. 마음은 앞서 달리는데, 노화한 몸이 뒤처지는 순간—그때 비극의 싹이 튼다. 잠복해 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나타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치열한 시간을 살며 몸에 깊이 새겨진 과거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동물적인 고통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머무는 과거의 몸과 변화한 몸의 현재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다룰지는 나 개인의 선택이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걸으며 무게와 깊이를 새겨온 삶이다. 삶의 속도를 내가 조절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내 손을 벗어난 더 큰 리듬을 탄다. 태어나는 것도 순간이고 숨을 거두는 것도 순간이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서 여유를 누리려면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Slow slow quick quick 은 단순한 춤의 리듬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균형의 리듬이다. 현대인의 생활은 빠른 성취와 느리게 즐기는 여유를 동시에 원한다. 삶의 속도와 리듬은 자기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 내 몸이라고 해도, 내 안에 공존하는 젊은 나와, 현재의 나 사이가 조화롭지 못하면 적신호가 켜지고 경고음이 울린다.
한 노인이 워커에 의지해 걸어가다가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을 한다. 내가 지금은 이래도, 전에는 저들처럼 걷고 뛰던 때가 있었지. 아무것도 아닌 광경에도 걸음을 멈추고, 망연한 눈길로 자신의 과거를 더듬는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걷는 것마저 포기해야 하는 노인의 눈빛이 깊고 무겁다. 한때 활기차게 걷던 사람도 황혼 무렵이 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속도를 늦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빠르게 지나가는 삶에서는 놓쳤던 순간들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노년은 자기 속도로 완주한 거북이의 말을 새겨들을 때다. 느린 것과 게으른 것은, 다르다. 당당하고 깊은 삶은 빠른 속도가 아니라 느린 속도에서 무르익는다. 빠르지 않아도, 크거나 많지 않아도 괜찮은 시기에 이른 것이다. 늙는다고 서운해할 일만은 아니다.
그날 냉장고 앞에서 느꼈던 통증 하나가, 나이듦의 현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행복하다. 몸과 마음의 균형 잡힌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백 세 시대의 길어진 노년기 내내 그 두 가지를 다 갖추고 살기란 쉽지 않다. 고대 철학자들이 말하던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 ‘아타락시아 ataraxia’적인 삶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적어도 자기 몸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년기의 삶은 양보다 질에 있고 속도보다 깊이에 있다. 그 말을 긍정하니 나만의 ‘슬로우’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비로소 가볍다. 이제는 남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로 살아도 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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