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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나눌 수 있을까?
김정수(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23 2026 10:54 AM
수필이 있는 뜨락(34)
두 달 동안 K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다. 평소 사흘이 멀다 하고 소식을 주고받던 사이인데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카톡을 보냈다.
지난해 세 차례 이사 끝에 원하던 타운하우스를 구매한 K는, 연말연시에는 집 정리로 바빠질 거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인사를 끝으로 그가 한가해지면 먼저 연락해 오리라 생각하며 무심히 지내오던 터였다. 워낙 열심히 사는 K는 시간이 항상 부족한 사람이다.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유형이랄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녔고 집안끼리도 가깝게 지내온 그는, 한국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서른 중반에 혈혈단신 캐나다 유학을 감행할 만큼 독립심 강한 여성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캐나다인을 만나 결혼하고 마흔에 딸을 낳아 에드먼턴에 정착하였지만, 딸이 열 살도 되기 전에 남편은 예기치 못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K는 최근 꿈에서 나를 보았다고 한다. 내 카톡을 받기 전, 먼저 연락해야지 마음먹었는데 경황이 없었다면서 일월에 두 번이나 수술받은 사실을 알려준다. 첫 번째는 예정된 수순으로 과거 수술에서 생긴 작은 혹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던 반면, 두 번째는 느닷없는 복통이 찾아와 응급실로 실려 가 예정에 없이 받은 긴급수술이었다고 한다. 과거 수술에서 제거하지 못한 스테이플 하나가 창자에 구멍을 내고 꼬이게 만들어 그야말로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받은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살포시 다녀오고 나니 그간 자신이 인생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이제야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거 같다며 힘든 데도 불구하고 "지금 내 배는 할복을 수차례 시도한 사무라이 배 같다"는 유머도 잊지 않는다.
십여 년 전 K가 갑작스럽게 남편을 떠나보냈을 때 나 역시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잘 대처했고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슬기롭게 이겨 나갔다. 내가 이민 와서 그를 대면한 건 세 차례에 불과하다. 같은 땅덩어리에 살면서도 왕래하기란 마음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록키 여행을 갔을 때 에드먼턴에 사는 그의 가족을 처음 만났고, 이후 내 아들의 결혼식에 K 혼자 토론토에 와서 축하해주었으며, 마지막으로 딸과 토론토에 놀러 와서 만난 게 전부이다. 그런데도 그와 나는 카톡 덕분에 쉴 새 없이 많은 걸 의논하고 늘 곁에 머무는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삶에 대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그는 삶에 다소 부정적인 나를 바꿔보겠노라 자신의 논리를 펼치곤 했으며, 서로 다름에도 대화의 꽃은 시들 줄 몰랐다.
K가 미리 유언장을 준비할 즈음, 자신에게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딸을 맡아줄 후견인으로 내 이름을 올려도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동의했다. 이제 그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그 시절 그러한 걱정은 추억의 한 자락으로 흘러갔다. 작년에는 딸이 훗날 결혼하게 되면 내 남편이 딸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한국에 제부가 있지만 딸이 원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남편 또한 흔쾌히 그리 하겠다고 대답해주었다. 토론토 우리 집에서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아이가 남편에게서 아빠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K에게 두 달 사이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미안해했다. 몰랐는데 뭐가 미안하냐고 했지만, 그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 있었을 때 너무 오래 연락조차 해볼 생각을 못했으니, 친구라 부를 자격이 없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실은 그보다 드러낼 수 없었지만, 행여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지라도 만사 제치고 그에게 달려갈 수 있었을지 망설인 게 더 미안했다.
K가 큰일을 겪으면서도 내게 왜 알리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딸이 옆에 있기에 내 도움이 필요 없었을 수도 있겠고 이미 일어난 일인데 공연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아니면 그의 말처럼 경황이 없었는지도... 기쁨은 나눌수록 배가 되고 슬픔과 괴로움은 나눌수록 절반이 된다고 하는데 실제는 그런 것 같지 않다. 나 또한 기쁜 일이 있을 때 친구에게 함부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다. 혹시 내 기쁨이 자랑처럼 여겨져 그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을지 우려해서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은 나 홀로 삭여야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괜히 걱정이나 부담을 안기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도 기쁨과 괴로움을 다 내놓고 나누기가 어렵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기도 하지만 각자 안에 꿈틀대는 본래적 자아가 홀로서기를 원하는 성향이 강해서인지도 모르겠다.
K가 몸 상태가 좋아지면 통화하자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의 감정을 얼마나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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