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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샤와(Oshawa)에 펼쳐질, ‘호텔 캘리포니아’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pr 30 2026 10:23 AM
지난해 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갔었다.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어, 여기에 호텔 캘리포니아가 있네?” 무심코 던진 내 말에 옆에서 운전하던 딸아이가 “아빠, 여기가 캘리포니아니까 당연히 있지. 그리고 ‘호텔 캘리포니아’는 여러 곳에 많아.”라고 한다.
“그래? 난 LA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멋쩍은 말을 하고는, 빛바랜 청춘 시절 ‘호텔 캘리포니아’에 대한 추억이 아련히 생각났다.
1977년, 해군을 막 제대하고 복학했던 때다. 같은 과(科) 친구가 신촌 사거리 음악다방에서 디제이(DJ)를 한다고 해서 복학생 몇 명과 갔었다. DJ 박스 안에 있는 친구에게 눈인사를 하고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신청곡 쪽지를 받아 들고 레코드판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아이고, 폼 잡네!’ 했지만, 준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그가 은근히 부러웠다.
친구는 음반 하나를 턴테이블에 올리며, 자랑하듯 LP 재킷을 유리창 쪽으로 비스듬히 세워 두었다. 그러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입모양으로 “이 디자인 끝내주지!” 한다.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재킷이었다. 야자수 사이로 분홍색 궁전 같은 럭셔리한 호텔이 노을에 젖어 있다. 앨범 제목인 'Hotel California'는 네온사인 느낌이 나는 독특한 서체로 적혀 있어, 밤의 나이트클럽 간판을 연상시켰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전주가 시작되자, 기타 줄을 하나씩 튕기는 연주가 몽환적인 분위기로 빠져들게 했다. 마치 안개 낀 사막 도로 위에 있는 것처럼, 스페인풍의 클래식한 느낌과 록이 절묘하게 뒤섞인 소리였다.
곡 전체가 슬프면서도 우아한 단조 멜로디로 구성되어 우리 정서인 '한(恨)'이나 처연한 슬픔과 맞닿아 있었다.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로 이어지는 후렴구는 한 번만 들어도 잊히지 않을 만큼 중독성이 강했다. 후반부의 두 기타리스트가 번갈아 소리를 주고받는 연주는 음악적 포만과 안정감을 주며 화려하게 곡을 맺는다. 1976년 LA에서 탄생한 이 음반은 전 세계에서 4,20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1976년에 탄생한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 음반은 전 세계에서 4,200만 장이나 팔렸다. Adobe Stock
DJ 친구 덕분에 라디오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당시의 히트곡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고국의 젊은이들은 사회적 억압 속에서 서구의 록 음악을 통해 자유를 갈구했다. 비록 가사에 담긴 사회 비판적인 속뜻은 다 헤아리지는 못했어도, 그 몽환적인 멜로디와 이국적인 정취는 고단했던 청년들의 감수성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1970년대 후반, 이런 록 음악(Rock music)을 생생한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곳은 나이트클럽뿐이었다. 명동 '사보이 호텔' (Goody Goody), 소공동 '조선호텔' (Xanadu), 한남동 '하얏트 호텔' (JJ Mahoney's) 같은 호텔 클럽이 있었지만, 워낙 문턱이 높아서 나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무교동의 '코파카바나'와 '월드컵', 영동(강남) '엠파이어' 등이 있었지만, 청년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대학생들에게는 신촌 로터리의 ‘우산속’과 '에뜨랑제'가 해방구이자 성지였다. 무교동 ‘월드컵’과 ‘코파카바나’가 조금 더 전문적인 그룹사운드와 성인 중심이었다면, 신촌의 나이트클럽은 훨씬 더 젊고 자유로운 열기가 있는 곳이었다.
당시의 최신 팝송과 디스코 음악을 아주 빠르게 들려주었고, ‘좀 논다’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소위 ‘물 관리’가 잘 된 곳으로 알려졌었다.
무교동 나이트클럽이 ‘실력파 밴드의 향연’이었다면, 신촌은 조금 더 풋풋하고 뜨거운 젊은 밴드들이 활동하던 곳이었다. '활주로(배철수)', '블랙테트라(구창모)' 같은 그룹사운드나 아마추어 밴드들이 출연했었다.
신촌을 누비던 젊은이들의 로망은 ‘무교동’에 가보는 것이었다. 당시 무교동 ‘월드컵’에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1970년대 중반 대마초 파동 이후 활동 금지에 묶여 있던 조용필이 1979년 규제에서 풀리면서,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 올스타 팀을 꾸렸다.
보컬 겸 기타에 조용필, 리드 기타 곽경욱, 베이스 김택용, 키보드 김정수, 드럼 이건태. 이들은 단순한 세션이 아니라, 각자가 독주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파였다. ‘오늘 조용필이 월드컵에 나온다’는 소문만 돌아도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입구에서 손님들을 가려 받아야 할 지경이었다.
보통 나이트클럽은 춤을 추러 가는 곳이었지만, 조용필이 무대에 오르면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 무대 앞으로 다닥다닥 붙어 연주를 감상했다. 마치 지금의 스탠딩 공연장 같았다. 음향 시설이 열악했음에도 조용필의 목소리는 악기를 뚫고 클럽 끝까지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조용필이 1979년 활동 금지 규제에서 풀리면서,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다. 연합뉴스
'고고(Go-Go)' 열풍이 가라앉고 '디스코(Disco)'가 막 상륙하던 과도기적 시절, 신나는 댄스 곡 뒤에는 반드시 ‘블루스 타임’이 있었다. 그때 조용필과 곽경욱(리드 기타)이 <호텔 캘리포니아>의 그 긴 기타 연주를 다정하게 어깨 동무하듯 서로 주고받던 모습은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곽경욱이 까랑까랑하고 날카로운 화려한 테크닉으로 허공을 가르면, 조용필은 그 선율 위에 정열적인 감성의 리듬을 덧입혔다. 스무 손가락이 빚어내는 완벽한 화음을 앞세워 두 사람이 무대 앞으로 걸어 나올 때의 모습은 ‘월드컵’의 전설적인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이 불멸의 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북미의 수많은 록 밴드들에 의해 다시 피어나고 있다. 다가오는 5월 10일(일요일), 이곳 토론토에서도 이글스(The Eagles)의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헌정(Tribute) 밴드 'Hotel California'의 공연이 열린다. 1986년에 결성된 이들은 이글스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원곡의 정교한 보컬 화음과 기타 연주를 고스란히 살려낸다고 알려져 있다.
장소는 오샤와(Oshawa)의 <리젠트 극장(Regent Theatre)>이다. 무교동의 어두운 나이트클럽에서 들었던 그 선율이 캐나다에서는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그 멜로디들이 벌써부터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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