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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로’ 속에 있는, 김희갑과 양인자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4 2026 11:54 AM
음악적으로 ‘합’이 잘 맞는 부부가 서로 도와주며 예술적 동지로서 함께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그런 면에서 음악계의 전설적인 콤비인 김희갑과 양인자 부부는 따스한 감동과 고귀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들 김덕기 지휘자와의 인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독일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그는 귀국 직후부터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나는 <MBC 가을맞이 가곡의 밤>의 연출을 했고, 김덕기는 지휘자로 함께 공연을 만들었다. “가곡은 오케스트라가 성악가의 목소리를 덮지 않아야 해요.”라며 섬세하게 지휘하던 그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가 거장 김희갑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다.
김희갑과 양인자는 국민 작곡가와 국민 작사가로 불리며 400여 곡이 넘는 작품을 함께 했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음악과 극본을 함께 맡았고,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김국환의 ‘타타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미로’는 두 사람에게 특별한 곡이다. 대중들은 ‘사랑의 미로’가 최진희의 곡으로 알고 있지만, 본래 이 곡은 1976년에 가수 태원이 발표한 ‘속죄’라는 노래였다. 당시 이 곡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어, 김희갑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 초, 김희갑은 무명 밴드의 보컬이었던 최진희를 우연히 어느 나이트클럽에서 보게 된다. 성량이 풍부하고 감미로운 음색에 반한 그는 ‘최진희에게 딱 맞는 노래가 있는데…’하며 묻혔던 ‘속죄’ 곡에 새 가사를 양인자에게 부탁한다.
당시 그녀는 방송 드라마 작가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고 있었지만, 이면에는 짙은 고독의 그림자를 안고 살았다. 사별의 아픔을 견디며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로서, 스스로 길을 찾아 헤매던 시절이다. 문득문득 느끼는 혼자만의 슬픔, 막막한 기다림을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 마는 미로’라는 공간으로 빗대어 이런 노랫말을 썼다.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
사랑의 미로 속에서 울고 웃다 지쳐버린/
끝없는 기다림 속에 출렁이는 멍든 가슴/
언제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어두운 밤을 밝혀주오.
"그토록 다짐을 하건만 사랑은 알 수 없어요"로 시작하는 애절한 가사는 ‘사랑은 황홀하지만, 뒤에 숨겨진 불안은 어쩔 수 없이 다가온다’는 한 편의 시를 써서 김희갑에게 보낸다.
김희갑은 대중 음악사의 산 역사이다. 그가 작곡한 3,000여 곡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대중가요의 품격을 수호한 사람임을 증명한다.판씨네마, 서울 한국일보
당시 이혼 뒤, 혼자 지냈던 김희갑은 이 시를 보고 "뭐 이런 가사가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느꼈다고 한다. '미로'나 '무지개' 같은 문학적인 은유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인자가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제 인생을 얘기한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 깊은 정서에 빠져 들었다.
작가의 예감은 적중했다. 100만 장에 가까운 음반을 판매하고 KBS <가요 톱 10>에서 5주 연속 1위, 1985년 <MBC 10대 가수>에서 최고 인기 가요상을 받아, 최진희는 이 한 곡으로 단숨에 톱스타가 된다.
그 뒤, 두 사람은 창작을 위해 2년 정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둘의 만남을 추적하던 <주간 중앙>의 서병후 기자가 ‘열애설’을 언론에 터뜨리는 바람에 ‘이러다 스캔들에 휩쓸리지 싶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음악 인생에서 부부의 만남은 서로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제 음악 인생은 80년대에 이미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양인자는 “남편과의 만남은 신데렐라가 유리 구두를 신은 느낌 그것이었습니다.”라고 존경을 표한다.
김희갑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은 양인자와의 만남이었다. 노랫말이 서사로, 멜로디가 역사로 확장되었다. 부부의 삶을 다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의 한 장면이다. eidf.co.kr
지난해 11월,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이 개봉됐다. 이 다큐는 김희갑과 양인자 부부의 삶을 비춘 영화다.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희갑은 1.4 후퇴 때 아버지를 따라 남한으로 내려와 대구에 정착한다. 미국 부대에서 접시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가며 고등학교 시절 미 8군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 소년은 훗날 미 8군 무대 ‘에이 원’ 밴드의 마스터로 성장한다. 그 무렵 신중현, 이봉조, 길옥윤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을 이끈 연주자였다. 영화는 이 젊은 기타리스트가 어떻게 국민 작곡가로 성장하는지를 보여 준다.
양인자와의 만남은 김희갑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었다. 노랫말이 서사로, 멜로디가 역사로 확장되었다. 다큐는 부부의 러브스토리를 그들이 만든 35곡의 공연 장면으로 풀어 간다. “복잡하게 기억하는 것보다 잊을 건 잊는 게 낫다”는 김희갑의 인생철학은 영화 속 명대사다.
김희갑이 뇌경색 이후 기억과 판단이 희미해지는 모습도 나온다. 아내는 그의 뇌 사진을 보고 “그 안에 은하수가 있었어요”라고 비유하는 장면은 관객을 안타깝게 만든다.
다큐의 중심에 ‘품격’ 있는 증언이 있다. 조용필, 양희은, 최진희, 장사익 등은 그가 이 시대 대중 음악사의 산 역사이며 거대한 산맥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들이 입 모아 말하듯, 김희갑의 3000여 곡이라는 명성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가 ‘대중음악의 품격을 수호한 사람’이었는 것을 증명한다.
음악 다큐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좋은 노래 란, 무엇으로 기억되는 가?” 영화 속 인터뷰어의 말이 여운에 남는다. “음악이란, 한 노래를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이다” 김희갑과 양인자 부부는 여전히 ‘사랑의 미로’ 속을 함께 걷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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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 tomhslee**@gmail.com )
May, 15, 04:12 PM Reply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
이현수 ( tomhslee**@gmail.com )
May, 15, 04:24 PM Reply작성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