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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보다 5000년 앞선 한반도 볍씨
동아시아 쌀 문명 시작에 화두 던지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8 2026 12:03 PM
中 허무두 신석기 유적
동아시아 문명을 가능케 한 자원은 뭘까. 집단·정주생활을 시작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거리 자원이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쌀은 동아시아 문명의 에너지원이다. 지금은 빵에 밀려서 쌀 소비가 줄고 재고가 늘어나 정부가 고민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3,000년 동안은 우리 조상들도 가장 효율적이고 귀하게 다뤄졌던 곡식이다. 3,000여 년 전의 집 자리에서도 그 흔적이 나왔으니 고인돌을 만들던 그 청동기시대에는 분명히 농업 생산력이 탁월한 쌀이 가장 중요한 먹거리 재료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중국 고대 문명에도 궁극적 자원이었던 이 쌀을 한반도 초기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고인돌 건조와 관련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로 복원된 허무두 마을 풍경.
동아시아 지역에서 쌀농사로 가장 유명한 고대 유적이 바로 ‘최고(最古)의 수변문명(The oldest Aquatic Civilization)’이라고 불리는 ‘허무두’다. 쌀의 경작과 생산과 쌀 소비를 둘러싼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쌀과 관련된 모든 생활의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타임캡슐이다. 황허와 함께 중국의 두 개의 문명 축의 하나로 꼽히는 문명인데, 4,000년 동안 소위 중국 문명의 힘을 제공한 최고의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쯔강 하구 삼각주 거주민들이 ‘어로’ 문화에서 농경 문화로 발전해 간 과정을 밝혀 주는 유적이기도 하다. 한반도와는 황해 맞은편에 있는 유적이지만, 한반도 쌀농사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중국에서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난 항저우, 가장 지적인 도시 사오싱을 관통한 뒤 황해 최대 항구 닝보가 위치한 닝샤오 해안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야오장강이다. 허무두 유적은 그 강이 만든 작은 계곡, 위야오시에 있다. 사오싱과 닝보 사이의 나지막한 두 산맥이 만든 작은 계곡의 해안 습지에 있다. 사실 중국 문화의 여러 주역이 이 지역에서 나왔다. 중국의 시성 소동파, 혁신적 철학자 왕양명, 현대 지성인 루쉰, 욕심이 없어 오불(五不)총리로서 서양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 저우언라이 등이다. 그만큼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이 좋았다는 말일 것이다.
특히 사오싱은 닝보항을 통해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가는 문화교류의 근거지였다. 따라서 닝보에는 고려사관이 설치되기 이전에도 신라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 천봉탑에서 통일신라 시대 금동불이 발견되는 등 한반도와의 교류 흔적이 다수 보이는 것도 그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수중 마을, 허무두 유적
양자강 하류 델타지역과 허무두 유적
위야오시 허무두 유적에 사람들이 살았던 7,000년 전에는 항저우나 사오싱과 같은 오늘날의 현대 산업도시 풍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이 지역의 엄청난 삼각주에는 ‘홀로세(Holocene)’ 이후 상승한 해수면 때문에 크고 작은 호수와 해안사호가 즐비했을 것이다. 또 강의 민물이 광범위한 지역에 습지를 만들어 그야말로 ‘물의 세계(Water World)’였을 것이다. 지금도 상하이에서 이 지역을 가려면 얕은 바다 위를 달리는 수십㎞의 다리를 지나가게 된다.
이런 추정은 발굴 결과와도 일치한다. 아열대 기후로 무덥고 비가 많았기 때문에 물소, 코끼리, 악어, 물고기, 거북 등의 뼈가 일대에서 자주 발견된다. 즉 정글 같은 습지 환경이 펼쳐졌다는 얘기인데, 중국 고고학자들이 ‘간란’이라고 부르는 통나무집 구조도 이를 반영한다. 습지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높게 마루를 만든, 고상 가옥들이 호수 위의 마을을 이뤘을 것이다. 갈대가 바람에 일렁이는 습지에, 집과 집 사이를 배를 타고 오가는 풍경도 장관이었을 듯싶다. 마을의 집 건축에서 보이는 결구(結構) 구조(못 없이 나무를 연결하는 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공 건축기술이기도 하다.
야오장강이 범람하면서 물을 공급해 주고, 땅은 부드럽고 기름져서 물소 어깨뼈로 만든 괭이만 있어도 충분히 논 경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쌀농사에 최적의 환경 조건이었다. 그렇지만 자연은 심술도 있다. 간혹 해일이나 높은 파도로 바닷물이 범람, 땅에 염분이 쌓이게 되어 농사를 못 짓게 되자 허무두 사람들은 점점 내륙 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본격적 문명에 한 걸음 더욱 다가간, 발전된 모습의 소국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내륙의 양주 유적에서 나타난다.
타임캡슐 같은 유적
허무두 출토 탄화미
허무두 유적에서 발굴된 유물은 수량도 많지만 습지에서 대단히 보존이 잘 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이 가장 희망하는 습지 환경 속에서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굴 현장은 바로 그 시대 사람들이 일하다가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다.
제4문화층에서 노출된 벼는 거의 50cm 두께로 쌓여 있었고 처음 노출될 때에는 금방 수확한 쌀처럼 황금빛일 정도로 생생했다. 엄청난 양의 탄화미는 논농사가 핵심 산업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쌀 말고도 부근에서 채집하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도토리, 배, 딸기, 밤 등의 여러 가지 야생 먹거리도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슴의 견갑골을 가지고 만든 괭이나 큰 나무 삽은 뚝을 만들고 논에 물을 대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돌을 갈거나, 흙을 구워서 만든 방추차는 이미 실을 만들고 직물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더구나 이들이 나무에 대해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옻칠로 만든 아주 세련된 그릇들의 존재로 알 수 있는데, 이 칠기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허무두의 쌍조, 고구려 삼족오의 원형인가
사슴의 견갑골로 만든 뿔 괭이
특히 허무두 유적에서 발견된 유명한 상아 조각은 중국의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귀한 것이다. 네모난 상아판에 두 마리의 새가 태양을 중심으로 날고 있는 모습이 음각되어 있다. 흔히 ‘쌍조(雙鳥) 태양’이라고 부른다. 쌀농사 사회에서 태양은 모든 생산의 원천이었고, 벼가 자라고 익어가는 계절을 알려주는 시계였다. 태양 양쪽에 새겨진 새는 우리나라의 솟대 위의 새처럼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이었을 것이다.
이는 한반도 고대국가 고구려에 영향을 주어 삼족오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쌍조 혹은 삼족오 전통이 수천 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쌍조 태양 상아조각 새 뼈로 만든 피리가 160개나 발견되었는데,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하는 사냥이나 농경작업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용도도 있겠지만, 신석기시대 의식 행사 과정에서 피리 합주도 생각나게 하는 유물들이다. 2008년에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 폐막 공연을 지휘한 중국 최고의 연출가인 덩란잉이 만든 ‘허무두 상상(Imagin Hemudu·暢想河母渡)’이라는 아름다운 공연이 2009년에 국제허무두문화축제에서 있었는데, 신석기시대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관념을 바꾸는 계기를 만들었다.
허무두, 양쯔강 쌀농사의 완성지
허무두 유적에서 발굴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칠된 그릇.
아시아의 야생 벼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의 남부 지역의 습지와 호소 등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모두 몬순지역으로 벼의 생장에 필요한 요소를 갖췄다. 강한 태양과 우기가 있고 난 후에 건조한 수확기가 연결되면서 야생 벼가 이미 널리 분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즉 양쯔강 유역은 야생 벼 분포의 북방한계선이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벼농사가 인도 아셈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 말 ‘쌀’이 인도 아셈의 벼를 칭하는 말인 ‘샤리’나 ‘사르’와 통한다고 추정, 우리 쌀이 인도 동북부 지방이 기원지라고도 생각했다. 태국 북부 반얀 계곡의 스피리트 동굴에서 발견된 벼를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로 보기도 했다. 동남아에서 고원 지대인 중국 운남지역으로 유입된 뒤, 서늘한 기후에 적응하게 되고 오늘날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자포니카’ 쌀로 진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태국 동굴에서 발견되었던 벼는 야생 벼이고 그 절대 연대를 측정한 결과 훨씬 후대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쌀의 역사는 다시 추정되고 있다.
이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와 논농사 흔적들은 중국에서 발견된다. 중국 호난성의 옥섬암 유적에서는 1만2,000년 전 야생벼가, 성두산 유적에서는 논의 흔적이, 9,000년 된 팽두산 유적에서는 토기에 벼가 가득 담겨져 발견된다. 양쯔강 유역에서 거의 1만 년 전부터 쌀이 재배됐다는 증거인데, 이 때문에 인도 지역의 가장 오래된 재배 벼가 중국 기원에서 넘어간 ‘자포니카’라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야생 벼의 북방한계선으로 추정됐던 양쯔강 신석기시대 주민들이 불리한 벼생장 환경을 극복하고 재배 벼 자포니카를 개발하였던 것이다. 결국 허무두 신석기마을은 양쯔강 벼농사의 완성판을 보여주는 유적인 셈이며, 쌀 문명의 시작이자 꽃이 바로 양쯔강 하구에서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쌀이 엄청난 규모의 인구에도 불구, 중국 문명을 지속가능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미 고대에 쌀을 황하 지역으로 운반하기 위해서 운하를 팠던 것을 보면 양쯔강 문명은 쌀의 저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수께끼의 한반도 청원 출토 소로리 볍씨
허무두 유적 신석기시대 생활 복원.
허무두 유적의 수상가옥. 유적 내 복원.
그렇다면 이 유적과 한반도 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벼 흔적은 고고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빙하기 말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야생 벼가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탄화미가 청원 소로리 토탄층에서 발견됐는데, 그 연대가 1만3,000~1만5,000년 전으로 확인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벼의 연대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학자들은 아직도 의심을 풀지 않고 있다. 허무두보다도 거의 5,000년 이상 앞서는 벼가 발견된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는데, 현재로서는 세계 고고학계의 숙제로 남아 있다.
황해를 거쳐 한반도로 유입된 정확한 경로가 어디이건 간에, 한반도 쌀 재배 문화는 중국 양쯔강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한반도에 더 오래된 것이 있다는 것이니,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고고학에서 ‘획기적인’ 발견은 상상을 초월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발견에 대해 답을 찾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그 과정에서 학문의 발전도 이뤄지겠지만, 일단 한반도 소로리 유적은 동아시아 쌀 문명 시작과 관련해 큰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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