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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기획기사

“구리선보다 빠르게 멀리”

이젠 ‘광통신’ 싸움이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17 2026 01:31 PM

AI 시대 ‘광통신’열풍


"경기장(stadium)만큼 커진 데이터센터에는 긴 거리를 뛸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지난해 3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연례 행사 'GTC2025'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천 개가 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품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서 빛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광통신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면서다. 올해 GTC에서 광케이블을 별도의 외부 모듈 없이 서버에 꽂을 수 있는 AI 가속기 '베라루빈'의 실물이 공개되자, 엔비디아와 무관한 국내 광통신 기업의 주가까지 치솟으며 시장은 열광했다.

 

3ff67bee-03fb-4e17-837f-15bc443b92d0.jpg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GTC2026'에 참석해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베라루빈' 구조를 보여주며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같은 '광통신' 열풍은 통신선이 AI를 느리게 하는 또 하나의 병목이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AI의 학습과 작동을 위해선 수많은 칩이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한다. 반도체 회로의 집적도가 높아지듯, AI를 위해 필요한 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반도체의 밀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내 선반(랙) 1개에는 GPU 72개와 CPU 36개가 연결됐으나, 올해 출시될 베라루빈에는 최대 144개의 GPU와 88개의 CPU가 탑재된다.

GPU 수십 개를 품은 랙과 랙 사이 통신은 이미 빛의 영역이다. 광통신을 활용하면 구리선보다 30% 수준의 전력을 써서 2배 이상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신호 감소가 덜해 수십 m 떨어진 랙끼리도 통신이 된다.

문제는 전기 신호 변조에 쓰이는 전력이다. 칩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병렬 상태인데, 칩에서 광케이블의 송·수신기까지 가는 길은 구리선이다. 이 길을 지나려면 전기 신호를 직렬화해야 한다. 구리선을 지나온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꾸려면, 신호를 다시 풀고 재직렬화하는 작업을 더 거쳐야 한다. 그래서 여태까지는 GPU 랙을 연결하는 광케이블에는 신호를 바꿔주는 모듈이 양끝에 달려있었다.

엔비디아나 브로드컴 등 미국 빅테크들은 광케이블에 달린 모듈을 반도체 기판 위로 곧바로 올려 심는 공동 패키지 광학(CPO) 기술을 발전시켰다. 칩에서 나온 데이터가 기판 위 구리선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광케이블에 연결되도록 '교통 정리'를 한 셈이다. 엔비디아는 TSMC와 손잡고 CPO를 적용한 데이터센터 내부 네트워크 플랫폼 '스펙트럼X'를 베라루빈에 도입했다.

 

1dda70aa-8ec8-4ff7-9b05-01dd0943e63e.png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2025년 3월 GTC2025에서 랙 간 연결용 광케이블(노란 선)을 들어보이고 있다. 케이블 양쪽 끝에는 전기신호를 광신호로 바꾸는 모듈이 달려 있다. 유튜브 캡처

 

CPO가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성을 크게 올린다는 게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CPO를 적용하지 않은 광케이블 연결 방식에 소요되는 전력은 GPU 1개당 180와트(W)다. GPU 100만 개의 초대형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이 1기가와트(GW)로 추산되는데, 총전력의 18%가 광통신을 위한 전기신호 변환에 사용되는 셈이다. 엔비디아는 CPO를 적용한 부품(스위치)의 전력 효율성은 기존보다 5배나 높다고 밝혔다. 젠슨 황은 "전력을 60메가와트(MW)만 아껴도 '루빈 울트라'를 10개는 더 설치할 수 있다"고 했다. 내년 출시될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에는 GPU 576개가 탑재된다.

AI 데이터센터에서 랙과 랙 사이를 CPO 적용 광통신으로 연결하는 기술은 표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갖고 있는 메타와 오라클은 엔비디아의 스펙트럼X를 도입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달 30일 1분기 실적발표에서 파운드리 사업부가 대형 광통신 모듈 업체의 CPO 과제 수주에 성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기판을 생산하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CPO 기술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ebf7c38c-ec10-4c9f-a292-a963384e6269.jpg엔비디아가 TSMC와 손을 잡고 개발한 AI 가속기용 네트워크 플랫폼 '스펙트럼X' 의 핵심 부품. 공동 패키지 광학(CPO) 기술이 적용됐다. 엔비디아 제공

 

다만 아직은 GPU나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시장 질서를 뒤흔드는 인프라 변화를 전망하기엔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엑스에 따르면, CPO 시장 규모는 지난해 9,500만 달러(약 1,400억 원)에서 2035년 12억 달러(약 1조7,000억 원)로 증가할 전망이다. 500억 달러가 넘는 HBM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크지 않다.

 

14659e7c-0854-406a-bb92-6117aaeced42.pngGTC2025에서 등장한 CPO 기반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플랫폼 '스펙트럼X'의 구조도. 중앙에 광학 모듈이 함께 기판에 실린 스위치 반도체가 놓이고, 광케이블을 직접 연결하는 구조다. 유튜브 캡처

 

랙 내부 연결을 넘어 반도체 내부 신호 전달에 광통신이 활용된다면 그때가 진짜 '광통신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 엔비디아 AI 가속기 랙 내에서 GPU를 연결하는 구리선 길이는 3.2㎞에 달하는데, 젠슨 황은 올해 GTC에서 이를 광통신으로 당장 바꿀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박상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랙 내에서) 칩과 칩이 광통신으로 연결되는 게 핵심 변화인데, 다른 종류의 광원이 필요하다"라며 "우리 연구진이 이 기술을 논문으로 처음 입증했는데, 아직 이를 상용화할 회사가 국내외에 없다"고 설명했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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