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알로 보고 살거래이(부제:사모곡)
금병한(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28 2026 11:03 AM
수필이 있는 뜨락(39)
꽃보다 더 꽃다운 나이 열일곱에 어머니는 시동생 하나 시누이 넷인 가난한 농촌의 장남에게 시집오셨다. 시집온 지 한 달 만에 아버지를 육 이오 전쟁터로 보내시고 삼 년 동안 긴긴밤을 눈물로 지새웠다. 아들만 다섯 낳아 군에 보낸 후, 보름날 장독대 위에 정한수 떠 놓고 무탈하게 돌아오길 빌고 빈 시간이 또 반 청춘이었다. 아들 못 낳는다는 구박은 안 받았지만, 아기자기한 딸 키우는 재미는 없었다. 설거지며 집 안 청소에서 어머니를 도와주는 아들 하나 없었다. 어머니는 늘 나에게 '네가 딸로 태어났으면 나를 좀 도와주고 좋았을 텐데'라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나 이후에는, 아들 낳기를 간절히 바라며 딸을 열까지 놓곤 했던 다른 집들과는 달리, 딸 하나 낳기 위해서 아들을 둘이나 더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남들이 부러워하던 아들을 다섯이나 놓고도 어머니는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셨다. 머슴도 있고 식모도 있는 부잣집이었다면 아마 얘기가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는 대부분 세 끼 끼니 때우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꽁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면 아마 형편이 좋은 편에 속했으리라. 식은밥에 콩나물이랑 신김치 넣고 물 많이 부어 끓인 멀건 갱죽은 정말 싫증이 나도록 먹었다. 무더운 여름날 땀 뻘뻘 흘리며 뜨거운 갱죽 한 사발 후루룩 마시고 마당 평상에 누워 부채로 모기 쫓으며 밤잠을 설치고는 했었다. 우리가 살던 초가집은 몇 해 동안 지붕을 잇지 못해서 지붕에는 썩은 짚 속에 생기는 노린재라는 벌레가 득실거렸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했던지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방 안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 내 꿈은, 언덕 위에 하얀 집 짓고 지붕에 장미 넝쿨 올리고 사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는 그나마 형편이 나았으리라, 비록 말단 공무원으로 쥐꼬리만 했겠지만, 꼬박꼬박 월급은 나왔을 테니까.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마흔아홉의 아직은 한창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나이에 독립하지 못한 자식들 남겨 놓고 간암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그 이후 어머니는 홀로 시부모 모시고 일 년에 열두 번 얼굴도 모르는 조상 제사 모시면서 다섯 자식을 키워 내셨으니, 어머니가 하신 그 고생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더구나 할머니로 인한 몸과 마음고생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십 년 넘는 세월을 두문불출하셨는데 그 뒷바라지를 환갑이 넘은 어머니가 혼자 다 하셨으니....더구나 할머니는 음식이 조금만 입에 맞지 않아도 밥상을 엎어 버릴 정도로 성격이 대단하셨다. 엎어진 밥상을 다시 차리면서 부엌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앞치마로 눈시울 닦아 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해 드리지 못했다. 아니 못한 것이 아니라, 그때는 철이 없어 뭘 몰랐다. 그나마 할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비교적 건강하셨고 고생하는 며느리를 마음으로나마 고와해 주셨다. 할머니가 생명이 위독한 고비를 당할 때나 가끔 얼굴을 내미는 시누이들도 어머니에게 고생한다는 말로 마음을 표현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소학교 문 앞에도 못 가보신 우리 어머니, 독학으로 언문 깨우치셨다. 손가락 끝에 겨우 잡힐 듯 말 듯한 몽땅 연필에 침 묻혀, 손때 묻은 공책 위에 당신 이름 석 자 써 놓으시고, 새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셨다. 공자가 누군지 소크라테스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이, 우리에게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야들아, 알로 보고 살거래이, 우에마 보마 한도 끝도 없데이" 라고. 내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그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위만 보면 나는 항상 아래에 있게 되고, 아래에 있는 나는 열등감과 패배 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세상의 모든 불만족은 나 보다 더 가진 자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 행복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거기에 더하여 아래를 살펴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도 생기게 된다. 남의 어려운 사정을 보고 내 일처럼 마음 아파하는 측은지심, 그것은 자비로움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당신 자신도 하루하루 꾸려가기 어려운 생활 속에서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보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나누어 주려고 하는 분이셨다. 그러한 심성이 길고도 험난한 삶의 여정을 인내하며 헤쳐갈 수 있도록 해 주었으리라. 책이 아닌 굴곡진 삶 속에서 얻어진 진정한 깨달음이 어둠을 밝히는 마음의 등불이 되었으리라.
어수선한 꿈자리에 가위눌려 깨어나니 새벽 세 시. 먹물 같은 하늘, 흰 구름 드문드문, 창백한 그믐달 그려 넣은 수묵화 한 점 창가에 걸려있다. 어슴푸레한 달빛 등에 지고 휘적휘적 손 저으며 나를 부르시는 어머니, 가시는 길 찾지 못해 헤매고 계시는가? 알 수 없는 괴이한 꿈이다. 자식들 얼굴 알아보지 못하고 십수 년째 요양원 침대에 손발 묶인 채 누워 계신 구십오 세 가엾은 내 어머니!
잠 못 이루는 새벽, 창에 걸린 수묵화 속의 초췌한 조각달은 사위어 가고, 멀리 타향의 셋째 아들 베갯머리는 소리 없이 젖어 든다.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