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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5척 속 청자·곡물·석탄

고려·조선의 사회상·물류체계 ‘타임캡슐’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May 31 2026 09:51 AM

‘보물선의 바다’ 태안 마도 안흥량


오늘날 ‘보물선의 바다’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면, 과거에는 ‘배들의 무덤’이라는 뜻과 같다. 지중해 혹은 카리브해를 떠올리겠지만, 그런 곳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 충청남도 태안반도 끝에 있는 마도 일대 바다이다. 마도 일대에는 한두 척이 아니고 여러 척의 난파선이 발견됐다. 게다가 난파선들에는 귀중한 물건들이 실려 있었고, 일부 뛰어난 청자들은 보물로 지정됐다. 이곳 난파선 발굴을 통해 찾아낸 세세하게 적힌 화물 물표들은 왕도와 지방의 사회경제적 관계의 속살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한국 수중고고학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던 갯벌 유적인 셈이다.

 


마도, 신진도 그리고 안흥진성
 

c9e207bb-4a94-4592-b819-cb8b2b835652.png신진도와 마도(오른편) 북쪽 상공에서 보이는 바다 일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태안반도 해안에는 아름다운 명승이 많다. 홀로세(Holocene)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에 깎여나간 절벽 같은 해식지형과 함께 멋진 해송이 길게 늘어진 백사장과 끝없이 펀펀한 갯벌들이 펼쳐진다. 서산 서쪽의 태안을 지나서 남서쪽으로 내려오면 길게 뻗은 반도 지형의 끝에 안흥진이 나타나고, 그 앞 좁은 해협 위의 다리를 건너면 2019년 개관한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있는 신진도에 닿게 된다.

이 전시관에는 복원된 마도선과 함께 선적된 청자와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그야말로 ‘민트’ 상태의 청자 등 도자기를 보는 맛이 특별한 곳이다. 조선시대 가장 큰 거점 물류창고였던 안흥창(安興倉)이 있던 안흥진성은 이 일대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이다. 지금은 주변에 군사시설이 있어서 다니기가 불편하지만 성 안의 절에서 보는 평화스러운 해안 풍경은 남종산수(南宗山水)의 명품을 보는 듯하다.

예부터 섬의 모양이 달리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말섬’이라고 불렸던 마도(馬島)는 둘레가 300여m밖에 안 되는데, 신진도 서편에서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방파제처럼 낮게 놓인 다리 위에서 보는 물살은 강의 여울목같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 멀리서 보는 평화스러움과는 전혀 다른 거친 바다임을 느끼게 만든다. ‘오, 이렇게 센 물살은 태풍이나 기상이 악화되면 떠 있던 배도 쉽게 휩쓸려 가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꾸미 어망에 걸려 들어온 고려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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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1호선 출수 청자양각연판문잔과 뚜껑.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마도 난파선 발굴은 2007년 주꾸미 어망에 고려청자가 딸려 나오면서 시작됐다. ‘주꾸미 대신 고려청자 대접이 걸려 나왔다’는 신고로 고려청자 수송선이던 태안선이 최초로 신진도 남쪽의 대섬 인근에서 발견됐다. 엄청난 수량의 청자를 포함한 약 2만5,000점의 유물이 출수됐다. 1131년 전남 강진에서 개성으로 가던 중 침몰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청자 향로의 사자조각뚜껑은 최근 아카데미상을 받은 만화영화 케데헌에 등장하는 호랑이처럼 한국 감성의 해학적 얼굴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비슷한 신고들이 이어져 2009년부터 일대에 대한 본격적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마도에서 북쪽 100여m 떨어진 수로에서 3척의 고려 선박이 반경 100여m 내에서 매년 한 척씩 연이어 발굴되었다. 조선 초기 선박인 ‘마도 4호’선은 이보다도 약간 북쪽에서 2014년 발견되었다. 청자가 가득 실린 태안선과는 달리 마도 인근에서 발견된 4척의 배는 모두 곡식을 실은 조운선이었다.

여러 종류의 곡물들이 가장 주요한 화물이었지만, 함께 실렸던 다양한 종류의 화물들에 달린 목찰들이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줬다. 고려와 조선의 조운과 물자보급체계를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도 되었다. 배의 구조, 화물의 적재 시기와 방식 등에 대한 정보와 함께 각종 화물의 원산지, 발송처와 수취처가 적혀 있는 목간과 목찰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화물 인보이스’와 같은 역할을 했고, 당시의 물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도자기와 식재료들은 당시 생활문화 뿐 아니라 사회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됐다. 흔히 ‘서해바다 속의 경주’, ‘타임캡슐’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난파선에서 보는 고려와 조선의 조운체계
 

b34d9970-9263-4e5e-9626-50298ac0f25d.jpg마도1호선 복원 전시 전경. 배기동 관장 제공

 

마도 북쪽의 바다에서 현재까지 4척의 배가 발굴되었는데, 1208년 침몰된 마도1호선, 1213년 전후한 시기의 2호선, 그리고 1260년에서 1268년 사이에 강도(江都; 강화도)로 향하던 중 난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3호선은 고려 선박이다. 4호선은 15세기 조선 초기 선박이다. 이 배들은 왕조가 다르기는 해도 모두 지방에서 공물들을 왕도, 즉 개경이나 강도 또는 한양까지 운반하던 공납 조운선들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선박과 물류 시스템의 변화를 알려주는 자료들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 연안 지역에 13개소의 조창(漕倉·세금으로 받은 곡식 등을 저장하는 창고)을 설치하고 공물들을 이곳에 모아서 개경이나 강도로 운송하도록 하였다.

조선의 조운체계는 고려대의 폐단과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철저한 중앙집권적 관선체제로 재편됐다. 그리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명시될 정도로 체제가 정비됐다. 고려시대보다 배가 더 커져 길이가 대체로 15m 내외 50톤 정도의 규모로 최대 1,000석의 쌀을 실을 수 있는 규모로 커졌고 운용 규정도 엄격해졌다.

세종 초반인 15세기 초에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곡식과 많은 양의 분청사기들을 싣고 한양의 광흥창으로 행하던 마도 4호선도 그랬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13m 길이의 선박이었다. 난파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배에 쌍돛대를 설치하여 측풍에 강하도록 만들었고, 고려배보다도 두꺼운 소나무 판자로 만들어서 충격에 더 잘 견디도록 대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조운선마다 적재량과 승선 인원까지 규제하였던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 조운과 관련된 국가체제가 훨씬 정교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화물에 웬 석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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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섬 출수 청자사자향로뚜껑.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안흥량 일대에서 발견된 5척의 배에는 각각의 항해 목적과 역사를 보여주는 독특한 화물과 적재물 흔적이 발견되었다.

고려시대 마도 1호선에서는 흥미로운 화물의 흔적이 발견됐다. 자연 상태에서 채굴된 원석 형태의 석탄 덩어리들이었다. 주먹만 한 크기(약 5~10㎝)에서부터 조금 더 큰 덩어리까지 다양하게 발견됐다. 발굴 초기에는 고열을 내기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 흔한 무연탄(Anthracite) 계열로 추정됐는데, 분석결과 포항 장기지역에 분포하는 것과 유사한 아역청탄(반유연탄)으로 확인되면서 그 용도가 아직은 수수께끼이다. 궁전 난방용이나 도요지의 보강연료 등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설이 제기됐지만, 개경 만월대 고려궁지에도 공방들이 있고 금속활자도 발견된 것으로 미뤄보면 금속공예품(청동기, 은입사 기물 등)을 제작하거나 무기를 만드는 대장간(야철지)에서 사용됐을 수도 있다.

마도4호선에 대해서는 선체 여러 지점에서 석탄이 흩어져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가동 중인 태안화력으로 가는 요즘 배에서 유실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석탄이 화물 깊숙한 곳에 쌓여 있었다는 점과 충남 보령의 무연탄 성분과 비슷하여 태안화력에서 사용하는 수입 무연탄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세종실록에 나와 있듯이 조선시대 초기에 이미 무연탄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실물 증거로 남게 됐다.

 

774ad62a-60c2-4ec3-8558-9436325efb54.jpg마도1호선 하물 적재 모습. 복원. 배기동 관장 제공

 

마도 2호선에 실린 화물들에는 당시 개경의 여러 권력자들에게 보내는 ‘공물’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최고의 권력자, 우영공(右令公)으로 표기된 최충헌과 그의 아들 최이 집으로 가는 물건들도 있었다. 최상급 청자들이 실려 있었는데 이 중에 매병 두 점은 이후 보물로 지정되었다. 청자 중에서 매병은 대체로 크고 어깨 부위가 넓고 아랫도리 부분이 좁게 만들어져 전체적으로 S곡선을 뽐내는 멋진 형태였다.

박물관 전시장에서 마주하면 무엇에 사용한 것인데 ‘저렇듯 멋지고 아름답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도자기이다. 그런데 보물로 지정된 청자 상감국화모란문매병의 목에 걸린 죽찰에는 ‘준(樽)에 꿀을 담아서 개경의 중방 도장교 오문부 댁으로…’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또 다른 보물인 청자 음각연화절지문매병은 참기름 용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고의 도자 미술품으로 감상의 대상이었던 최고급 청자들이 음식 용기였다는 사실에 뜻밖이라는 생각도 들겠지만, 보석 같은 청자들이 화려하게 빛나는 개경의 고려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생활 공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마도3호선, 강도로 가는 화물이 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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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1호선 출수 석탄괴. 국립해양유산연구소

 

고려의 강도시대, 즉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 시기에는 해상 물류가 고려왕조의 목숨줄이었다. 마도3호선은 강도정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항해하다가 1260년 즈음에 침몰했다. 배에는 국가에 바치는 세금으로서 곡물 이외에도 녹용이나 전복을 비롯하여 홍어, 사슴고기 말린 것, 절인 상어, 가오리 등의 고급 식자재들이 실려 있었다. 화물들은 강도의 무신 실력자들과 군인들에게 배달될 예정이었다. 죽찰에 김영공(金令公)으로 명시된 이는 당시 무인정권의 최고 실력가 김준으로 추정되는데, 그에게 전달됐을 화물은 전복 젓갈과 사슴고기 등이었다. 물목에 보다시피 보양재가 많이 있는데, 역사 기록에 제주도의 감귤도 강도에서 맛볼 수 있었다고 하니 나라의 어려움 속에서도 강도 귀족들의 맛 사치를 보여준다.

 


안흥량, 배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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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북쪽에서 신진도로 연결되는 수로에 연이어 난파된 배들을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현재까지 발견된 배가 5척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원년부터 세조 원년까지 60년 동안에만 200척에 달하는 배가 침몰하고 수천 명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지나는 배 열 척 중에 반은 침몰하는 곳이라고 적혔을 정도다.

실제로 이곳 안흥량이라고 부르는 뱃길은 난행량(難行梁·가기 어려운 해협)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진도의 명량(鳴梁·물살이 강해 울음소리가 나는 해협)과 함께 가장 위험한 수로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위험을 알고도 이곳을 지나게 되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안흥진에 있는 안흥창은 고려시대부터 있던 강(江倉)이나 해안지역(海倉)에 있었던 13개의 조창, 즉 거둬들인 지역의 조세를 보관하던 국가 창고의 하나이다. 마도 선박의 출발지에서 알 수 있듯이 서남해안에서 연안항로로 북상하던 조운선들은 이곳에서도 왕도로 가는 화물을 실어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태안반도의 끝이어서 항로상으로도 배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하고, 섬으로 둘러싸여 배의 정박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안흥량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인근 태국사의 황금닭 전설에서 보듯이 배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 하늘에 정성 어린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배가 침몰하였다. 과거의 불행한 침몰 사건이 오늘날에는 당시 사회문화상을 짐작하게 하는 타임캡슐로 남겨진 것이다. 아마도 더 많은 보물선들이 이 일대 갯벌 속에서 잠자고 있으며, 일부가 추가로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수중고고학의 성과에 대한 기대는 조상님에 대한 실례가 될까?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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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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