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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김외숙의 문학카페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Jun 02 2026 10:47 AM
1월 중순 깊은 겨울에 가서, 눈에 보이는 것이 다 꽃 같던 4월 중순에 나이아가라 집에 왔다.
캐나다의 겨울을 피해 갔는데, 서울의 겨울이 오히려 살갗이 따갑도록 추웠었다. 추위가 만만찮았음에도 서울을 찾은 이유는 아들 식구, 형제, 친구들과 그 겨울을 지내고 싶어서였다.
서울 다녀오면, 늘 기억에 남는 무엇이 있다. 주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몇 마디의 대화라든가, 내가 본 우리나라의 새로운 어떤 부분 등인데, 지난 여행 후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주식’과 ‘성과급’, ‘무관심’이란 단어들이었다.
살림밖에 모르던 내가 아는 몇몇 여성들이 ‘주식’을 시작했다는 말, 이익을 많이 남긴 대기업에서 수억씩의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눠 줄 것이라고, 부부가 같은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은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 또 하나는 이미 꽤 심각하게 사람들의 의식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던 ‘무관심’이란 단어였다.

언스플래쉬
그중에서 ‘무관심’이란 단어가 자꾸만, ‘왜 그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지인들을 통해 듣고 느낀 ‘무관심’은 삶이 바빠 뭔가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신으로 인한 의도적인 것이었다. 불신하도록 한 그 어떤 일보다 의도적인 무관심, 그 자체가 내 눈엔 더 심각해 보였다.
‘그럴수록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일일이 그 신경 다 쓰다가는 내 명에 못 죽어!’
정신 건강을 위해 그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정치인들과 정치에 관련된 모든 것이었다.
어떠한 경우든, 뒤틀어진 관계의 회복을 어렵게 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 무관심일 것이다. 화내다가, 다투다가, 미워하다가, 냉소적이다가 그러다가, 마침내 관심을 끊어버리는 관계. 그것은 마지막 남은 다리 하나를 불태워버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 명이라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아무리 무관심을 고집해도 정치판은 여전히 엄동설한의 추위도 녹였고, 6월에 있을 지방 선거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매스컴은 게임이 되지 않은 것, 같던 선거 결과를 내다보며 한쪽의 무관심을 부채질했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며 푸른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시 쓰는 일밖에 모르던 내 문우 한 사람도 이참에 배지 달고 싶었던지 이름을 올렸다.
갈수록 회오리로 불던 그 푸른 바람에 편승해 한쪽이, 이미 다 떼어 놓은 당상인 듯 기고만장할 때도, 견제해야 할 다른 한쪽은 저들끼리 다투느라 정신 차리지 못하니, 사람들은 정말로 눈 딱 감고 귀 막고 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석 달 동안 그 냉담의 세상을 경험한 내가 지금,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고 있다.
주어진 아무런 힘의 직함 없이, 정의에 대한 확신, 진심 어린 겸손의 자세란 불씨 하나만 품고 씨알도 먹히지 않을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그 사람들의 심정이 되어 마침내, 낯설었을 땅의 냉담을 녹이고 무관심의 벽을 허물어 부산 앞바다의 파도보다 거대한, 사람의 더운 물결을 일으키는 현장을 매일 보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장면인가?
아니면, 명이나 부지하자며 무관심을 자처한 사람들 눈앞에 나타난 희망 고문 같은, 헛것인가?
내가 장담하는데, 이것은 찰나에 끝날 헛것도, 영화의 장면도 아니다.
‘으샤라 으샤!’란, 한때 무관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들의 함성과, ‘제가 더 잘하겠습니다.’ ‘제가 불편함을 덜어드리겠습니다.’라며 매일 머리 조아리며 그 완강하던 틀 속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무관심의 사유에 귀 기울이고, 손잡아 일으키려는 그분의 소리를 내가 귀로 눈으로 보고 듣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방치되듯,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무관심자들을 향한 관심이었고 그것은, 무관심조차도 지독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이해한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지극한 심정이었다.
아이들에겐 뛰어가 믿고 덥석 안길 아저씨이며, 노점 할머니께는 더운밥 한 그릇 먹이고 싶게 하는 사람, 닫았던 심정을 열어 나라 곳곳에서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에겐, 이제야 오래 기다린 사람 만난 기쁨을, 이 위기 국면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그 사람이, 더러 미심쩍어하며 모이던 사람들의 걸음을 확실한 축제의 물결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나랏일 할 사람 뽑을 때 진심으로, 감동으로,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안심으로, 축제인 듯 열광하며 동참한 적 있던가?
모르는 사람끼리 어우러져 목이 쉬도록 울며 웃으며 희망을 외쳐본 적 있던가?
아직도 냉담하신가?
아직도 무관심하신가?
조금만 마음 열고 귀 열어 부산에서 불고 있는 동남풍 함성을 들어보시라.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무관심에서 발아해 꽃 피울, 희망이란 씨앗이 아닐까?
아마도!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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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