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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를 둘러싼 비관론
신호식의 재테크 맛집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04 2026 11:30 AM
최근 언론을 보면 미국 경제가 곧 침체에 빠질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이에 따른 휘발유 가격 상승이 소비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유가 급등은 여러 차례 경기 침체의 도화선으로 지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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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우려에는 일리가 있다. 현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8% 상승하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목표치인 2%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는 연준이 당분간 금리 인하에 나서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가 충격은 대체로 일시적인 성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와 기업은 일정 기간 저축을 활용해 에너지 비용 증가를 흡수하며, 이에 따라 경제 전체가 받는 충격 역시 예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 실제로 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실질 경제지표들을 살펴보면, 중동 사태 이전과 비교해 거시경제의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팬데믹 기간 동안 시행된 막대한 재정 부양책이 종료된 이후에도,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경제 성장 둔화가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유가 충격보다는 통화량 증가세 둔화와 경기 부양책 축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주요 경제 지표들은 경기 침체보다 완만한 성장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미국 경제가 무결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미국 증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기록하고 있어 향후 조정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한, 인공지능(AI) 혁명과 기술 혁신이 진행 중이라고 해서 1980~1990년대와 같은 초고속 성장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과거보다 비대해진 정부의 역할이 꼽힌다.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의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약 2%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간 경험했던 성장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AI를 비롯한 혁신 기술이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있음에도 경제 전체의 성장세가 제한적인 이유는, 시장이 아닌 정부가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미국 경제는 마치 ‘쟁기 말(Plow Horse) 경제’에 비유할 수 있다. AI와 첨단 기술이라는 강력한 경주마가 엄청난 잠재력을 뿜어내고 있지만, 비대해진 정부라는 무거운 기수를 등에 태운 채 밭을 갈듯 묵직하게 나아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우려처럼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1분기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율 2%를 기록했으며, 2분기 성장률 역시 3% 안팎의 견조한 흐름이 예상된다. 고용시장 또한 여전히 탄탄하다. 최근 4주 이동평균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0만 건 안팎에 머물며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제조업 생산까지 전년 대비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어, 현재의 경제 상황은 침체 국면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현재 주식시장은 고유가, 인플레이션 재가속, 국채금리 상승, 지정학적 리스크 등 만만치 않은 악재들을 소화하며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위험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고조되는 위험보다 AI 혁명이 견인하는 기업의 실적 성장에 더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말 이후 S&P 500 기업들의 이익 전망 개선은 IT,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소비재 섹터에 집중되었으며, 이들 분야가 전체 이익 증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 현재 증시 상승은 단순한 기대감이 아니라 실제 실적 개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승장을 위협할 수 있는 진짜 리스크는 무엇일까?
첫 번째 위험은 인플레이션이다. 만약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된다면, 중앙은행은 다시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환경은 주식시장에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특히 공급 부족이 원인인 인플레이션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두 번째 위험은 에너지 충격이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운항 재개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것이 곧바로 에너지 시장의 정상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원유 운송, 보험, 정유시설 가동, 재고 재축적 과정 등을 고려하면 공급망 정상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고유가가 장기간 유지된다면 소비와 기업 이익 모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위험은 AI 투자 사이클 자체에 대한 신뢰 훼손이다. AI는 막대한 전력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 건설과 반도체 생산 모두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다. 따라서 에너지 비용 상승이 지속되면 AI 인프라 구축 비용 역시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만약 AI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인프라 비용이 예상보다 급증한다면, 시장의 핵심 성장 스토리는 타격을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요소는 대규모 AI 기업들의 상장 가능성이다. SpaceX, OpenAI, Anthropic 같은 기업들이 향후 신규 상장(IPO)에 나선다면 시장은 엄청난 규모의 신규 주식을 흡수해야 한다. IPO 자체가 시장의 고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의 자금을 분산시키며 시장의 위험 선호도를 시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증시를 무너뜨릴 요인은 단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이 금리 인상 우려를 키우며, 금리 상승이 금융 여건을 악화시켜 기업 이익을 둔화시키는 일련의 연쇄 반응이 일어날 때 시장은 비로소 큰 압박을 받게 된다.
현재로서는 미국 경제도, 증시도 여전히 버틸 힘이 있다. 다만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 AI는 현재 시장을 움직이는 강력한 엔진이지만, 유가와 인플레이션은 그 엔진이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시험대가 되고 있다. 시장의 상승세가 지속되려면 AI의 성장 스토리가 유지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통제 가능한 범위에 머물러야 한다.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의 헤드라인이 아니라 에너지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에서 금리로, 금리에서 기업 실적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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