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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이 일 빼앗아”
노동분쟁·취업난... 사회 갈등 시험대 오른 AI·로봇 굴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07 2026 11:49 AM
일자리 불안으로 번진 中 AI·로봇 산업
중국 항저우의 한 기술회사에서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AI) 제품의 품질관리 책임자로 일하던 저우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뜻밖의 통보를 받았다. 회사는 저우에게 직무 강등과 40% 임금 삭감을 제안했고, 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해고했다. AI가 그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항저우 중급인민법원은 지난달 회사의 해고가 위법하다고 보고 저우에게 26만 위안(약 5,700만 원)의 보상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베이징시 하이덴구의 무인 로봇 편의점에서 갤봇의 로봇이 주문을 받고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이 판결은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이 마주한 딜레마를 드러냈다. AI 기술은 이미 사람의 일을 대체할 만큼 빨라졌지만, 대체된 사람을 어디로 보낼 것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느린 것이다.
항저우 사건에 앞서 지난해 베이징에서도 AI 자동화 도구 도입으로 데이터 수집 부서가 사라져 해고된 노동자가 노동중재에서 구제받은 사례가 있었다. 중재위는 기업이 AI를 도입해 경쟁력을 높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노동계약 해지의 법적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중국은 AI 확산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다. 정부는 AI와 로봇을 '고품질 생산력'의 핵심으로 내세우며 산업 전반의 스마트화와 자동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CNN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생성형 AI 이용자는 6억200만 명에 달했고, 생성형 AI 보급률은 42.8%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사무 영역에 AI를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공장과 물류, 서비스 현장에서는 로봇이 사람 손을 대신한 지 오래다.
문제는 AI와 로봇이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사람의 일이 줄어들거나 값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은 AI가 새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노동자들이 먼저 체감하는 것은 새로운 기회보다 기존 업무의 축소와 임금 압박이다. 항저우와 베이징의 노동 분쟁 사례는 AI 대체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우려가 아닌 이미 법정과 중재기구 앞에 놓인 현실임을 보여준다.
1분 만에 약 포장...베이징엔 '로봇 약국'이 있다
베이징시 하이뎬구의 약국에서 갤봇의 로봇 G1이 업무를 보고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베이징 하이뎬구의 한 스마트 약국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서비스 현장으로 들어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이 들어오자 휴머노이드 업체 갤봇의 로봇 'G1'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봇은 진열대에서 주문 상품을 집어 들고, 작은 포장대에서 포장 작업을 마친 뒤 배달기사 수거용 사물함으로 옮겼다. 주문 인식부터 포장, 출고 준비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분이었다.
이 약국은 최근 베이징 하이뎬구 시장감독관리국으로부터 '약품경영허가'를 받았다. 그동안 휴머노이드 로봇은 콘택트렌즈 같은 일부 의료기기 판매에는 투입될 수 있었지만, 처방약을 포함한 의약품 판매에는 제한이 있었다. 이번 허가로 환자는 집에서 의사 상담을 받고, 약사가 처방전을 검토한 뒤, 로봇이 약을 찾아 소분·포장해 배달기사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매장에는 처방약과 비처방약, 의료기기 등 5,000~6,000개 품목이 갖춰져 있었다. 갤봇 측은 로봇이 제품 식별, 분류, 포장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약품의 유효기간도 시스템으로 관리해 기한이 임박한 제품은 즉시 판매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전문의약품의 처방전 검토와 복약 지도는 여전히 약사가 맡아야 하지만, 약을 찾고 포장하고 출고하는 반복 업무는 빠르게 로봇의 몫이 되고 있다.
베이징에 위치한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 훈련센터 '리얼맨'은 인간 노동 대체 로봇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곳이다. 센터 안에서는 로봇이 물건을 집고, 들고, 옮기는 기본 동작부터 수건 접기, 토스트기에 식빵 넣기 같은 생활 장면을 반복해서 배운다. 사람의 손끝 움직임과 팔의 각도, 물건을 잡는 힘과 순서가 데이터로 변환된다. 동작 과정에서 속도, 온도, 촉각, 전류 등 71개 차원의 데이터가 수집된다. 물을 따르다 흘리거나, 컵 위치가 바뀌거나, 물건을 잘못 집는 장면처럼 실패한 동작까지 데이터가 되는 순간, 인간의 일상적 노동은 로봇이 세상을 배우는 원료가 된다.
이 데이터의 최종 목적은 로봇이 사람의 지시 없이 생활·산업 현장의 일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같은 로봇이라도 집안일 모델을 넣으면 가사 정리를 하고, 공장 분류 모델을 넣으면 물류 분류를 할 수 있다. 런훙위 리얼맨 해외솔루션 전문가는 "사람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며 "위험하거나 건강에 좋지 않은 환경의 일을 로봇에 맡기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먼지가 많은 호텔 세탁실에서 수건과 침대 시트를 접는 작업을 원격조작 로봇이 맡는 사례를 들며,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에서 이런 방식이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트칼라도 생산직도 위험하다
베이징시 휴머노이드 로봇 데이터 훈련센터 '리얼맨'에서 로봇이 수건을 개는 동작을 학습하고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중국이 자동화에 속도를 내는 데에는 구조적 배경도 있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고, 임금 수준이 오르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사람을 더 적게 쓰는 방식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산업용 로봇 시장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용 로봇 운용 대수는 2024년 200만 대를 넘어섰고, 같은 해 전 세계 신규 산업용 로봇 설치의 54%가 중국에서 이뤄졌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용접, 조립, 검사, 운반 등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는 일이 흔해졌다.
AI는 여기에 '두뇌'를 더한다. 과거 로봇이 정해진 동작을 반복했다면, 이제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상황을 판단하며 사무실과 서비스 현장, 플랫폼 노동까지 파고든다. 사무실에서는 AI가 문서와 코드를 쓰고, 약국과 물류 현장에서는 로봇이 물건을 집어 포장하며, 플랫폼에서는 알고리즘이 배차와 평가를 통제한다. 자동화가 더 이상 제조업 생산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노동의 여러 층위를 동시에 압박하는 셈이다.
충격은 초급 사무직과 반복 업무에서 먼저 나타난다. 문서 작성, 번역, 자료 조사 등은 이미 AI 도구로 대체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간단한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오류를 고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개발자의 일은 '코드를 쓰는 일'에서 'AI가 쓴 코드를 고치는 일'로 밀려나고 있다. 과거 신입이 경험을 쌓던 기초 업무가 줄어들수록 청년층은 노동시장에 진입할 첫 계단부터 잃게 된다.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불안은 홍콩에서도 확인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8개 공립대가 공유하는 채용 정보 플랫폼 내 지난해 채용 공고는 3만798건으로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33개 업종 중 23개 업종에서 채용 공고가 6년 만에 가장 적었다. 특히 정보기술·프로그래밍, 고객서비스, 행정·사무직처럼 AI 활용도가 높은 분야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중국 본토의 청년층이 체감하는 압박은 더 크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중국 대학 졸업 예정자는 1,270만 명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48만 명 늘어난 규모다. 이미 청년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예전보다 적은 인원을 뽑고, 뽑더라도 AI 활용 능력을 기본 조건처럼 요구한다.
휴머노이드와 서비스 로봇은 현장 노동을 겨냥한다.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음식 배달, 창고 물류, 매장 안내, 청소, 순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로봇을 시험하고 있다. 당장 모든 일을 로봇이 대체하기는 어렵지만,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부터 사람의 필요를 줄여갈 수 있다. 저숙련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는 셈이다.
달라진 중국 당국의 'AI 실업' 인식
베이징 하이뎬구의 무인 로봇 약국에서 로봇이 주문을 받고 포장한 물품을 배달 기사가 수취하고 있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중국 당국도 이런 위험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초기 중국 정부는 AI가 새 산업과 일자리를 만든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가 고용에 미칠 충격을 관리해야 한다는 표현이 늘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중국공산당이 AI 확산을 늦추기보다 노동시장 충격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는 AI 경쟁과 고용 안정을 서로 충돌하는 목표로 보기보다, 기술 확산이 사회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동시에 관리해야 할 과제로 본다는 것이다.
정책권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매트 시한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최근 뉴스레터에서 중국 AI 정책 커뮤니티의 관심사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중국 AI 정책 관계자들을 상대로 진행한 소규모 조사에서 2024년만 해도 AI의 일자리 영향은 주요 위험 목록에서 하위권이었지만, 올해는 허위정보와 함께 최상위권 우려로 올라섰다. 자율주행 택시 거점인 우한시에서 바이두의 로보택시가 확산하면서 "기술이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온라인 여론이 커진 것도 정책권의 인식을 바꾼 계기 중 하나로 지목됐다.
정책 문서의 표현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국가 차원 AI 산업 전략인 'AI+' 행동계획은 AI 응용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AI 응용의 고용 위험 평가를 강화하고 고용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문구도 포함했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도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문건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부 정책 논의에서는 세제 혜택, 임금 보조, 재교육 프로그램, 일부 일자리의 기술 대체 제한 같은 방안도 거론된다.
중국 AI·로봇 굴기의 성패는 결국 더 빠른 로봇과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기술력만이 아닐 수 있다. 그 기술이 바꿔놓을 노동의 자리, 분배의 방식, 사회적 안전망까지 함께 설계할 수 있느냐가 진짜 시험대다.
베이징=이혜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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