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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과 상연’의 존엄사
그러나 존엄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07 2026 11:45 AM
영화·드라마 속 다양한 존엄사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도 다뤄 존엄은 자신으로 남으려는 마음
최근 강연에서 한 독자가 영화 '미 비포 유'를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주인공의 선택을 지지할 수 없었다고. 그런데 세월이 지나, 존엄사를 다룬 내 에세이를 읽고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필요하겠구나' 공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삽화=신동준 기자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영화 속 이야기보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주인공 윌이 끝내 자신의 '존엄'을 선택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엄마 역시 영화를 보고 말했다. "나도 피치 못할 순간이 오면 윌 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 2016년, 항암치료를 마치고 추적 검사를 받던 시기였다. 엄마는 2023년 8월 스위스의 조력사망 기관인 디그니타스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참 엄마다운 방식이었다.
'미 비포 유'가 개봉한 지 10년이 지났다. 조력존엄사 찬성 비율이 82%에 이른 지금, 우리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는 존엄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왔다. 어떤 작품은 죽음을 스스로 결심한 사람들의 시간을, 또 어떤 작품은 그 곁에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지난해 가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존엄사를 선택한 상연보다 남겨지는 은중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절교한 친구 상연으로부터 스위스 여행에 동행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은중. 드라마는 두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30년에 걸친 애증을 따라가다, 마흔셋의 상연이 취리히의 조력사망 기관에서 생을 마치는 과정에 이른다. 공교롭게도 은중과 상연은 엄마와 내가 첫날을 보낸 슈토르헨 호텔에 묵는다.
리마트강과 그로스뮌스터. 엄마에게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내 욕심일 뿐, 엄마는 창밖을 내다볼 기운조차 없었다. 조력사망을 시행하는 장소인 블루하우스도 현실과는 달랐지만 상연이 떠나던 순간과 그걸 바라보는 은중의 독백만큼은 나의 상황과 겹쳤다. "상연이가 밸브를 열었다. 아무런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이." 드라마를 보던 나는 잠시 멈추고 내가 쓴 문장을 떠올렸다. "엄마는 조금의 떨림이나 망설임도 없이 약을 마신다. 단숨에."
'룸 넥스트 도어'는 떠나는 사람의 시선에 머문다. 항암치료를 멈추고 떠날 시간을 정한 주인공 마사의 모습은 비극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영화는 마지막 날 노란 옷을 입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마사를 보여준다.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화사한 여정일 수도 있다는 걸 상징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엄마는 좋아하던 하얀 옷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떠났다.
이 작품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죽음은 한 사람이 자신의 마지막을 직접 응시하고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 반면 '플랜 75'는 바로 그 전제를 의심한다. 영화 속 일본 정부는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75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 지원 조력사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표면적으로는 자기결정권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가난과 고립, 노인 혐오가 어떻게 사람들을 죽음 쪽으로 내모는지 서늘하게 보여준다.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죽음을 앞둔 상연이 은중과 끌어안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서로 다른 지점을 파고들면서도, 이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그 선택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허구로 죽음을 상상하고 다큐멘터리로 죽음을 대면한다. '우아한 죽음' 같은 다큐멘터리는 존엄사를 앞둔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곳에는 상상이 아닌 실제의 고통과 두려움, 슬픔과 평온이 존재하며, 죽음은 결국 삶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엄마 역시 실제의 기록을 남겼다. 엄마와의 3일간 동행을 담은 '취리히 다이어리'가 공개된다면, 사람들은 그 시간 속에서 어떤 모습을 마음에 담을까.
끝으로 '잠수종과 나비'와 '씨 인사이드'를 소개하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두 영화의 주인공은 전혀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잠수종과 나비'의 장 도미니크 보비는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도 삶과 글쓰기를 붙든다. 반면 '씨 인사이드'의 라몬 삼페드로는 긴 시간에 걸쳐 죽을 권리를 요구한다. 같은 전신마비 상태에서도 누군가는 생을 견뎌냈고, 누군가는 스스로 떠나기를 원했다. 존엄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다. 각자가 끝내 자기 자신으로 남고자 하는 마음이다. 엄마의 선택도 그랬으리라.
남유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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