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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빌런을 욕하는가
악명을 비즈니스 연료로 소비하는 ‘나는 솔로’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14 2026 01:45 PM
SBS Plus·ENA 연애 리얼리티 쇼 ‘나는 SOLO’
나는 솔로다. ‘나는 SOLO’에 나가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사실 나도 한 번은 나가 보고 싶다. 솔로 탈출을 바라기 때문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SOLO’에 오로지 짝을 찾으려고 나가는 사람은 없다. 없다고 생각한다. 없다고 추측한다. 가만 생각해보시라. 변호사와 의사가 거기 굳이 나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들의 최종 목적은 비즈니스일 것이다. ‘나는 SOLO’ 둘째 날에는 모두가 직업을 공개한다. 직업을 공개하는 순간 소셜미디어는 ‘31기 영호 병원’의 위치를 묻는 사람으로 넘친다. 예약은 금방 찰 것이다.

SBS Plus·ENA 연애 리얼리티 쇼 '나는 SOLO' 31기. SBS Plus·ENA 제공
31기 ‘나는 SOLO’를 보던 나는 ‘31기 경수 안경원’을 구글로 검색했다. 모두가 경수의 안경원을 찾고 있었다. 아마 대부분은 여성이었을 것이다. 안경원을 하는 경수는 가장 매력적인 출연자였다. 함께 보던 친구가 “저 남자는 연예인급 아냐? 얼굴 밸런스가 너무 안 맞는데?”라고 불평, 아니 감탄했다. 안경원은 곧 예약 손님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31기 경수는 사랑도 찾았다. 아니다. 사랑인가?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 비즈니스는 영원하다.
지나치게 ‘나는 SOLO’ 출연자들의 진심을 곡해하는 것 아니냐고? 나도 처음에는 진심이라는 게 있다고 믿었다. 초창기 ‘나는 SOLO’는 분명 리얼리티 관찰 다큐멘터리였다. 넷플릭스 ‘솔로지옥’이나 티빙의 ‘환승연애’와 비교해 보시라. 그 프로그램들은 시작부터 거의 연예인급이라 할 수 있는, 도저히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없을 듯한 젊은 출연자들로 채웠다. 출연자의 욕망과 제작진의 욕망은 그리 어긋나지 않는다. 그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출연한다. 제작진 역시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매번 젊고 싱싱하고 탄탄한 몸들을 해변 위에 전시한 뒤 카메라로 훑는다. 출연하려면 체지방 15%를 넘겨서는 안 된다.
그러니 나는 ‘솔로지옥’에 출연할 수는 없다. 체지방은 너무 높고 나이는 말도 안 되게 높다. 내가 망상 속에서나마 출연할 수 있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나는 SOLO’뿐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이 제한을 아예 없애야 한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7기 상철의 나이는 방영 당시 47세였다. 1976년생이다. 나와 같다. 물론 7기 방영 연도가 2022년이었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 '나는 SOLO 50대 특집’이 만들어진다면 가능은 할 것이다. 그런 특집이 만들어질 리가 있겠냐고? ‘나는 SOLO’는 벌써 31기다. 51기쯤에는 50대 특집도 생길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또 내 나이는….
SBS Plus·ENA 연애 리얼리티 쇼 '나는 SOLO' 31기 경수가 영숙과 순자의 선택을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방송 캡처
‘나는 SOLO’로 스타가 된 사람은 없다. 셀러브리티가 된 사람도 없다. 인플루언서가 된 사람도 거의 없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낳은 최고의 인플루언서, 아니 유명인, 아니 ‘그냥 좀 유명한 사람’은 16기 영숙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빌런이었다. 끊임없이 출연자들과 싸우고 다투고 갈등했다. ‘나는 SOLO’ 16기를 보지 않은 사람도 영숙이 누군지는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챙겨간 발레복이 아까워 아무런 맥락도 없이 갑자기 뜰에서 나홀로 춤을 추던 장면은 캡처본으로 남아 영원불멸의 밈(Meme)이 됐다. 사람들은 영숙을 싫어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영숙은 빌런으로 남았다. 방송 후에도 출연자들과 사생활 폭로전을 벌이던 그는 최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200만 원은 가소롭다. 16기 영숙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1만이다. 공구도 진행한다. 가방도 팔고 옷도 판다. 인플루언서라면 누구나 파는 효소는 팔지 않는 것 같다. 효소는 식품이라 워낙 사고가 잦아서 팔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11만이라는 팔로어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도저히 당도할 수 없는 수치다. 그 정도면 평생 비즈니스 플랜으로 충분하다.
얼마 전 16기 영숙은 인스타에서 “나쏠(나는 SOLO) 왜 쳐나갔냐”는 악플에 이렇게 답했다. “돈 벌어서 애랑 먹고살려고 (나갔다). 시청률 최고 찍어줬잖아? (시청자들과) 기브 앤 테이크 깔끔했는데 왜? 재밌게 쳐 웃겨주고 매주 저녁마다 설레게, 티비 앞에 쳐 앉게 해줬는데 뭐가 문젠데?” 나는 그걸 보며 무릎을 쳤다. 16기 영숙은 알고 있었다. ‘나는 SOLO’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시청자의 미움을 받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미움 역시 관심이다.
SBS Plus·ENA 연애 리얼리티 쇼 '나는 SOLO' 16기 영숙이 발레를 하는 장면. 방송 캡처
31기 ‘나는 SOLO’도 빌런을 낳았다. 모든 여성 출연자 사랑을 독차지한 남자 경수를 둘러싼 여성들이 빌런이 됐다. 옥순, 영숙, 정희는 경수와 커플로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여성인 순자를 견제했다. 그냥 견제는 아니다. 30대 여성 셋이 다른 여성이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상황에서 뒷담화하는 장면을 보고 여성인 친구가 말했다. “여고 시절 트라우마 돋네.” 소셜미디어는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했다. 빌런이 된 여성들은 각자 소셜미디어에 사과문을 올렸다. 서로 언팔을 했느니 사과를 했느니 온갖 뉴스가 이어졌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 서 본 적 없는 일반인들이다. 겨우 5박 6일 합숙하며 찍어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될지 알았을 리가 없다. 카메라란 재미있는 물건이다. 처음엔 의식하게 된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당신은 카메라의 존재를 잊는다. 인간의 본질은 어떻게든 카메라의 존재를 뚫고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거기에 편집이라는 마법을 더하면 인간의 본질은 더 강력하게 왜곡된다.
'나는 솔로' 31기 옥순이 영숙, 정희와 있는 자리에서 "난 아닌 거 같아! 둘(경수와 순자)이 안 어울려"라고 말하고 있다. 방송 캡처
아니다. 나는 빌런들이 모두 다 현실의 빌런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나는 SOLO’의 빌런들은 우리가 모두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행하는 행동들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나는 SOLO’로 우리 자신을 본다. 우리의 가장 은밀하게 못난 부분들을 발견한다. 누군가를 얻기 위해, 누군가를 제치기 위해, 누군가보다 돋보이기 위해 했던 과거의 나를 목도한다. 31기 빌런 삼총사도 곧 인스타그램을 다시 열고 뭔가를 팔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빌런은 내일의 인플루언서다.
더해서, 나는 ‘나는 SOLO’가 언젠가는 연예 대상에서 작품상이나 대상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는 SOLO’만큼 지금 한국 예능의 본질,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그렇다. 작품이다)은 없다. 202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도 없다. 나는 16기 영숙이 그해 SBS 연예대상에서 연기상 정도는 받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미래의 내가 출연하게 될 기수가 상을 받으면 더 좋겠다. 효소나 안경을 팔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국일보 칼럼 조회수는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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