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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돌아오자 어둠이 드리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재판: 평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21 2026 01:51 PM
마이클 잭슨이 돌아왔다. 전 세계 영화관에선 잭슨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영화 ‘마이클’이 상영 중이고, 과거 히트곡 ‘빌리 진(Billie Jean)’ 등과 앨범들이 빌보드 차트에 다시 올라 있다. 잭슨에 대해 잘 모르던 Z세대가 새롭게 그의 음악에 ‘입덕’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재판: 평결'. 넷플릭스 제공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만 돌아온 건 아니다. 추문으로 얼룩진 마이클 잭슨도 함께 돌아왔다. 잭슨의 전기 영화가 화제가 되자 넷플릭스는 지난 3일 잭슨의 2005년 아동 성추행 재판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재판: 평결’(이하 ‘평결’)을 재빠르게 공개했다. OTT 순위 전문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이 다큐멘터리는 공개 직후 수십 개 국가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영화 ‘마이클’은 잭슨의 소년 시절에서 시작해 팝 역사를 바꾼 불후의 걸작 ‘스릴러(Thriller)’를 거쳐 동명의 앨범과 함께 시작한 1988년 ‘배드(Bad)’ 투어로 끝난다. 당연히 1993년 조던 챈들러의 부친이 그에게 처음 제기한 아동 성추행 의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당초 제작진은 수십 년간 이어지고 있는 잭슨의 성추문 의혹을 정면돌파하고자 관련 내용을 촬영했으나 단 한 컷도 쓰지 못했다. 챈들러 가족이 잭슨과 합의서를 작성할 때 자신들에 대한 내용을 상업적으로 영상화하지 않기로 약속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유무죄를 떠나 잭슨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마이클’이 다루는 잭슨의 화양연화 시기는 물론 1993년 이후 2009년 사망까지 16년의 시간도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2005년 약 세 달간 이어진 재판은 ‘팝의 제왕’이 왜 21세기 들어 갑자기 스러졌는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었던 이유 말이다.
잭슨 팬들의 악평 쏟아져..."편향되고 왜곡된 시각"
영국 방송인 마틴 바시르의 다큐멘터리 '리빙 위드 마이클 잭슨'에 출연한 마이클 잭슨(오른쪽)과 개빈 아르비조. 영상 캡처
영화 ‘마이클’과 다큐 ‘평결’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정반대다. 11일 현재 미국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따르면 ‘마이클’의 관객 지수는 97%인데 ‘평결’은 6%밖에 되지 않는다. 잭슨의 열성 팬들은 다큐가 의혹과 관련해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평단은 편향성보다는 여러 차례 반복된 이야기를 그다지 새로운 내용도 없이 재탕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다.
실제로 잭슨 사후 여러 편의 관련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가장 최근 화제가 됐던 작품으로는 2019년 미국 TV 채널 HBO와 영국 공영방송 채널4를 통해 방송돼 논쟁을 야기했던 ‘리빙 네버랜드’와, 같은 감독이 지난해 공개한 속편 ‘리빙 네버랜드 2: 서바이빙 마이클 잭슨’이 있다. 이에 맞서 잭슨을 옹호하기 위해 제작된 ‘마이클 잭슨: 체이스 더 트루스’와 ‘스퀘어 원’ 같은 작품도 있다.
‘평결’은 국내에서 정식 채널로 한글 자막과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마이클 잭슨 성추문 관련 다큐멘터리다. 50분 안팎 분량의 3개 에피소드로 구성됐고 영국 BBC에서 10년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닉 그린 감독이 연출했다. 2003년 영국 방송인 마틴 바시르가 주도한 TV 다큐멘터리 ‘리빙 위드 마이클 잭슨’이 불러일으킨 파장으로 시작해 2년 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형사재판 전개 과정을 다룬다. 검찰과 변호인, 목격자,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 법원에서 일어난 일을 취재한 기자, 잭슨의 측근 등이 출연한다. 표면적으로는 양측 의견을 고루 전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지만 유죄를 주장하는 검찰과 관련 사건을 취재·보도했던 기자의 이야기에 조금 더 무게가 실려 있는 편이다. 재판의 쟁점을 상세히 다루다 보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이야기는 또 다른 다큐 ‘리빙 위드 마이클 잭슨’에서 시작된다. 잭슨은 바시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암 치료를 도와준 소년 개빈 아르비조와 같은 침대에서 잔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성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 발언은 곧바로 역풍을 맞았다. 1970년대 잭슨을 처음 만나 친구가 됐다는 전기 작가 J. 랜디 타라보렐리는 “바시르 다큐의 그 순간을 보면 마이클의 인생이 바로 그때 끝났다는 걸 확실히 짚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검찰의 수사가 곧바로 시작되면서 개빈과 부모의 태도는 바뀌었다. 개빈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모친은 잭슨이 가족을 네버랜드에 감금했다고 증언했다.
잭슨이 1993년 첫 성추행 의혹으로 챈들러 가족과 민사소송에 휘말렸을 때 약 2,0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60억 원)에 합의한 전례가 있다는 점은 잭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자신은 어떠한 잘못과 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합의서에 담았으나 돈으로 덮은 것 아니냐는 의심은 10년이 지나도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잭슨은 바시르에게 당시 서둘러 합의했던 이유에 대해 “사건을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을 살고 싶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챈들러 부친과의 합의가 사후까지 이어질 민사소송의 시발점이 될 거라곤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엇갈리는 증언, 뒤집힌 진술, 흔들리는 믿음
2005년 재판 당시 법정에 들어서기 전 팬들에게 손가락으로 'V' 사인을 하고 있는 마이클 잭슨. 넷플릭스 제공
‘평결’만 보면 잭슨은 분명 여러모로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반대로 미국 OTT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스퀘어 원’은 소년들의 부모들이 불순한 의도로 자녀의 증언을 왜곡했다고 주장한다. 이 다큐는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유튜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 다큐는 여러모로 엇갈리는 내용이 많아서 끝까지 보고 나서도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주장과 진술 외엔 뚜렷한 증거가 없기에 더욱 그렇다. 지나치게 소년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좋아했던 잭슨의 성향과 기이할 정도로 순진한 성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때 잭슨이 제2의 가족처럼 지냈던 프랭크 카시오가 그와 함께 봤다는, 아이들이 나체로 나오는 비디오는 무얼 의미할까. 잭슨을 공격했던 이들에게 명성이나 부를 얻으려는 의도가 앞서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번복된 진술과 주장에 거짓은 없을까.
증언은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잭슨과 대척점에 섰던 소년들은 진술을 뒤집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주로 잭슨에게 가스라이팅당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개빈의 어머니가 아들의 절도 현장을 포착한 백화점 직원과 싸운 뒤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해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낸 이력은 개빈 모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네버랜드에서 일했던 직원 중 일부는 언론에 자신들이 성추행 현장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는데 이들이 근무 당시 잭슨에게 불만이 많았으며 매체로부터 적잖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2005년 마이클 잭슨 재판을 담당했던 론 조넨 검사. 그는 재판 후 아르비조 가족의 지인 루이즈 펄랭커와 결혼했는데 그 역시 다큐멘터리 '마이클 잭슨 재판: 평결'에 주요 인터뷰이 중 한 명으로 출연한다. 넷플릭스 제공
의심이 또 다른 의심을 낳는 가운데 이 3부작 다큐가 전하는 진실도 있다. 2005년의 재판이 진실을 규명하는 현장이기보다 전 세계 언론이 뛰어든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였으며 결국 대중의 호기심과 편견을 부추기는 볼거리로 전락했다는 점, 그리고 잭슨의 음악 인생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이다. 잭슨은 재판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고통을 잠재우려 약물 과다 복용을 반복한 끝에 2009년 세상을 떠났다.
‘평결’은 끝까지 잭슨의 명성과 그에 대한 대중의 집착이 진실을 가린 건 아닐까 의심하지만, 어쨌든 12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2005년 재판에서 전원 만장일치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잭슨은 더 이상 세상에 없지만 재판은 이어지고 있다. 잭슨이 사망한 뒤 과거의 증언을 뒤집어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이 여러 건 진행 중이다. 과연 진실은 언젠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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