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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특정 다수보다 진짜 친구”
새 감각 찾는 젠지의 SNS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n 21 2026 01:44 PM
싸이월드에서 셋로그까지, 안녕 나의 낯선 친구
요즘 젠지(Z세대)가 쓰는 앱은 대표적으로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셋로그, 레트로, 찰리와 걷기. 셋 다 성격이 조금씩 다르다.
젠지 세대가 애용하는 어플들. 왼쪽부터 셋로그, 레트로, 찰리와 걷기. 앱스토어 갈무리
셋로그는 한 시간마다 푸시 알림이 온다. 알림이 오면 2~4초짜리 영상을 찍어 올린다. 2명에서 12명까지 방을 만들 수 있고, 각자가 찍은 영상이 분할 화면으로 자동으로 이어진다. 하루가 끝날 때쯤엔 우리가 각자 찍은 영상들이 하나의 브이로그가 되어 있다. 편집 없이. 필터 없이. 다시 찍을 수도 없다. 알림이 왔을 때 찍지 않으면 그냥 없는 것이다. 그 시간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
레트로(Retro)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만든 PM이 회사를 나온 뒤 만든 앱이다. 자신이 만든 기능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고,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초대한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사진을 주고받고, 앱이 자동으로 주간 사진 일기를 만들어준다. 알고리즘 없음. 좋아요 없음. 팔로어 수 없음. 광고 없음. 기억을 위한 사진만 남는다. 철학이 있는 앱이다. 그 철학이 무엇인지는 앱을 열어보면 바로 느껴진다. 조용하다. 인스타를 열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조용함이다.
찰리와 걷기는 걸음 수에 따라 '찰리'라는 캐릭터가 통통해지거나 건강해지는 만보기 앱이다. 걸을 때마다 포인트를 모아 캐릭터를 꾸미고, 친구와 걸음 수를 비교하고, 알림을 보낸다. 가장 가볍고, 가장 게임 같고, 가장 귀엽다. 근데 이게 단순해 보여도 핵심을 찌르는 게 있다. 혼자선 잘 안 되는 걸, 같이하면 된다. 그 오래된 진실을 앱으로 만든 것이다.
'레트로(Retro)' 어플 앱스토어 미리보기 페이지 갈무리
셋 다 인스타가 지배하던 시대에 지쳤거나, 그 시대를 처음부터 불편하게 느꼈던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다 셋로그를 시작했다. 직접 써봐야 쓸 수 있으니까. 동생에게 부탁했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모른다. 딱히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동생의 일상을 굳이 피드로 볼 이유가 없었고, 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SNS 이전부터 존재했고, SNS 없이도 유지됐다. 휴대폰이 있었고, 카카오톡이 있었고, 명절이 있었다. 아, 근데 동생은 명절에도 오지 않는다. 오지 못하는 게 맞다. 완전히 이민을 갔으니까. 그러니까 우리에게 명절은 없었다. 나는 동생이 잘 살고 있다는 걸 충분히 연락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같은 클라우드와 계정을 쓰니까. 동생도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검색 한 번이면 되니까. 우리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충분하다는 말이 사실은 포기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모른다.
칼럼 덕분에 동생과 셋로그 방을 만들었다. 방 이름을 우리가 직접 지었다. 멜번과 서울.
저녁, 알림이 왔다. 멜버른에서 동생이 먼저 올렸다. 팬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 고기가 싸다. 나는 마침 고기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안이었다. 신기했다. 내 발을 찍어 올렸다. 나도 고기 먹으러 가는데.
그게 전부였다. 2초짜리 영상 두 개. 대화도 아니고, 콘텐츠도 아니고, 그냥 그 순간의 스냅이었다. 근데 이상하게 웃겼다. 멜버른과 서울이 같은 시간에 같은 걸 먹고 있다는 것이. 시차도 있고 거리도 있는데, 우리가 동시에 고기 앞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걸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이. 동생이 먼저 올리지 않았다면 나는 몰랐을 우연이었다.
'찰리와 걷기' 앱스토어 미리보기 페이지 갈무리
인스타였다면 이런 순간을 올릴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올릴 이유가 없었다. 고기 굽는 영상이 팔로어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나. 잘 찍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고, 아무 맥락도 없는 영상이다. 근데 동생한테는 맥락이 있었다. 나의 저녁이었으니까.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였으니까.
동생이 말했다.
"언니, 우리만의 인스타 스토리 같아."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인스타 스토리라는 형식은 같은데, 수신자가 다르다. 아무리 친한 친구만 보여주기 기능이 있어도, 세상이 아니라 동생. 팔로어가 아니라 가족. 그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인스타그램은 퍼블리셔 모델이다. 게다가 나는 작가다. 공식 스케줄이나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노출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팔로어가 소비한다. 진짜 친구는 없고 그저, 잘 찍고, 잘 편집하고, 잘 올려야 했다. 못난 순간은 지웠다. 보여줄 만한 것만 남겼다. 그러다 보니 피드에는 나의 자랑스럽고 가장 좋은 날들만 쌓였고, 우리는 서로의 가장 좋은 날들만 구경하게 됐다.
젠지는 그 피로를 나보다 훨씬 먼저, 훨씬 강하게 느낀 것 같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스타가 있었고, 인스타와 함께 자랐고, 인스타로 관계를 배웠다. 그러니 그 구조의 한계도 더 빨리 몸으로 알았을 것이다.
'셋로그(setlog)' 어플 앱스토어 미리보기 페이지 갈무리
셋로그는 그 구조를 부쉈다. 정확히는, 수신자를 바꿨다. 불특정 다수에서 진짜 관계로. 퍼블리셔에서 진짜 친구로. 관객이 사라지자 꾸밀 이유도 사라졌다. 발 사진이 올라오고, 고기 굽는 영상이 올라오고, 천장이 올라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가 올라온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게 오히려 더 그 사람처럼 느껴진다. 잘 찍은 사진보다, 못 찍은 영상에서 사람이 보인다.
광장에 나서기는 싫은데 사라지기도 싫은 사람들이 있다. 주절주절 설명하기는 귀찮고, 그냥 오늘 내 하루 한 컷으로 나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 아는 사람끼리 소곤소곤. 셋로그는 그 마음에 딱 맞게 만들어진 앱이다.
보여주기 위한 관계와 보여줄 수 있는 관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젠지는 선택을 했다.
장사를 하는 친구가 물었다. 셋로그, 자기도 해야 하냐고. 젠지가 한다고 하니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아니라고 했다. 너한테는 소용없다고.
그 친구에게 SNS는 손님을 만나는 공간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브랜드를 알리고, 신뢰를 쌓는 공간. 셋로그는 그걸 못 한다. 애초에 하려고 만들지 않았다. 셋로그는 이미 아는 사람을 더 깊게 만나는 도구다. 새 관계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 관계를 탄탄하게 유지하는 도구. 관계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깊이 하는 것. 그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
그 말을 하고 나서 문득 같이 고기를 굽던 친구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야, 그럼 새 친구는 어디서 만드냐.
셋로그를 쓰고 싶은데 같이할 사람이 없다는 말들이 보인다. 어떤 방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초대는 누가 해주나요? 이런 말. 앱은 있는데 관계가 없는 사람들. 셋로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다.
셋로그 사용이 점차 확대되면서 SNS에 셋로그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 인스타그램 '셋로그' 관련 연관 게시물 갈무리
과거 클럽 하우스가 생각난다. 코로나 시절 음성으로, 아이폰만 쓸 수 있었으며, 초청 없이는 가입도 불가했다. 나는 정말 재미나게 잘 썼지만 기묘했던 건 폐쇄성이 아닌 프로필 아래, 초청해준 사람까지 달려 있었다. 마치 "나 이 사람이 데려온 사람이에요" 같은 느낌. 실리콘밸리 네트워킹 문화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는 차치하고, 미국에서도 어색했었는지 쫄딱 망했다.
생각해보자.
넓다와 깊다의 의미
나이가 들수록 새 친구는 어렵다. 이건 통계도 아니고 연구도 아니고, 그냥 삶이 그렇다. 학교를 벗어나고, 직장이 바뀌고, 동네가 바뀌고, 어느 날 보면 연락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 있다. 그리고 어떤 시점이 지나면, 새 친구를 사귀는 일 자체가 줄어든다. 우리의 우주는 비좁아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가 견고해지기 때문에, 다른 말로는 다른 우주와 충돌하기도 쉽다는 말이다.
언젠가 나는 인스타가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넓혀준 게 아니라 전시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팔로어가 늘어도 진짜 내 친구가 늘지는 않았다. 하트가 쌓여도 외로움이 줄지는 않았다. 물론 새로 나온 셋로그도, 레트로도, 찰리와 걷기도 그 질문에는 답을 못 한다. 이미 있는 관계를 더 잘 유지할 수 있게 해줄 뿐, 없는 관계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사람에게 셋로그는 텅 빈 방이다. 알림이 와도 찍을 이유가 없고, 방을 만들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
이 질문은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무엇이 더 낫다는 말는 못 하겠다. 다음 세대의 SNS가 해결해야 할 것은 관계의 질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싸이월드가 있었다. 2000년대 초, 미니홈피에 일촌을 맺고, 방명록을 남기고, 도토리로 배경음악을 샀다. 페이스북이 왔다. 세계가 연결됐다. 모르는 사람과도 친구가 됐고, 뉴스와 정치와 일상이 한 피드에 뒤섞였다. 인스타그램이 왔다. 사진 한 장이 천 마디를 대신했다. 아름다운 것들이 넘쳤고, 우리는 아름다워지려고 애썼다. 피드는 점점 광고를 닮아갔다. 틱톡이 왔다. 관계보다 콘텐츠가 중심이 됐다. 팔로어를 몰랐던 사람의 영상이 하룻밤에 수백만 뷰를 찍었다. 아는 사람보다 재밌는 사람이 더 중요해졌다. 그 모든 변화 속에서 트위터, 지금의 엑스(X)만이 살아남았다. 주인이 바뀌고, 이름이 바뀌고, 구조가 바뀌었는데도 죽지 않았다. 아마 텍스트라는 형식이 가진 질김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초 '국민 메신저'였던 싸이월드는 메타버스의 기초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05년 운영되던 KEB외환은행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 우리의 다음은 뭘까.
더 쪼개질까. 아니면 다시 합쳐질까. 그게 다시 퍼블리셔 모델이 된다면, 젠지는 또 도망칠 것 같다. 그들은 이미 그 구조의 맛을 알고, 그 구조의 피로도 안다. 다음 세대의 SNS가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어쩌면 그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멜버른의 동생이 고기 굽는 영상을 올렸을 때, 나는 오랜만에 동생이 생각보다 훨씬 가깝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젠지는 계속 그 새 감각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연결되고 싶은데 전시되기는 싫은, 가까워지고 싶은데 소비되기는 싫은, 보여주고 싶은데 평가받기는 싫은, 그 좁고 모순된 자리를. 모든 자리가 지나친 그 자리를 셋로그가 하고 있다.
아직 정답은 없다. 나의 다음 친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이소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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