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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팀의 운명을 바꾼다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09 2026 12:16 PM
지난 6월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보느라 짜릿한 한 달을 보냈다. 하지만, 한국 축구가 무너지는 지점에 홍명보 감독의 ‘삐딱’이 있었다.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마지막 인사에서도 그는 예의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실망과 씁쓸함을 뒤로 하고 떠났다.
사실 냉철하게 생각하면 홍 감독도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누가 대표팀 감독을 하더라도 경기는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떠날 테니, 한번 잘해 봐라’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를 화나게 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몇 해 전 보았던 축구 감독에 대한 영화가 떠 올랐다. 영국 축구의 전설적인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Brian Clough)가 ‘리즈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던 44일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댐드 유나이티드 (The Damned United)>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축구 영화가 아니라, 질투와 자만심이 한 인간의 커리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주인공 클러프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축구를 잘 가르친다고 믿는, 일종의 '천재적인 트러블 메이커'였다. 어느 날, 클러프는 상대 팀 감독인 돈 레비를 만나러 간다. 클러프는 내심, 그 대단한 감독에게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상대 감독은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 굴욕적인 사건 이후, 클러프는 "저 사람과 저 팀을 반드시 내 손으로 박살 내겠다"는 복수심 하나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클러프는 잉글랜드 리그 하위권 팀을 맡아, 기적적으로 우승시키며 승승장구한다. 이때 그에게는 '피터 테일러'라는 완벽한 짝꿍 코치가 있었다. 클러프가 밖에서 화려하게 떠들고 전술을 짤 때, 코치는 뒤에서 선수들 마음을 다독이고 실무를 챙기는 '현실적인 파트너'였다
그런데 성공에 취한 클러프는 점점 오만 해진다. 결국 꿈에 그리던 '리즈 유나이티'의 감독 자리가 나자, 단짝인 코치마저 버리고 혼자 부임한다. "내 실력으로 충분히 개조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더 댐드 유나이티드 (The Damned United, 2009)>는 영국 축구 감독, 브라이언 클러프(Brian Clough)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Prime Video
새 팀에 들어간 클러프는 첫날부터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얻은 모든 승리는 다 부정행위로 딴 거야. 이제부터 내 방식대로 할 거니까 다 잊어버려."
그러나 이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선수들은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을 비난하는 새 감독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결국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클러프는 팀 전체와 싸우다가, 부임한 지 겨우 44일 만에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겸손을 잃은 한 천재가, 최고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이제 다시 <2026 북중미 월드컵>으로 돌아가 보자. 홍명보 감독이 사퇴 기자 회견을 한 날, 캐나다가 남아공과 16강 진출 경기를 한다. 이 캐나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은 미국 출신의 제시 마치(Jesse Marsch)다.
그는 2024년 5월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2025년 9월 FIFA 랭킹 26위라는 캐나다 역사상 최고의 순위를 기록했고,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973년생인 그는 미국 위스콘신주 라신(Racine)에서 성장했다. 그곳은 미시간호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로,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마치 감독의 아버지는 트랙터 부품을 만드는 공장 조립 라인에서 32년간 근무한 노동자였다. 마치는 5살 때부터 축구에 매료되어 유소년 클럽은 물론, 고등학교 시절 이미 지역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 진학하여 밥 브래들리(Bob Bradley) 감독 아래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기틀을 다진 후, MLS에서 14 시즌을 뛴 성공적인 선수였다. 2010년부터 미국 국가대표팀 수석 코치를 시작으로 <몬트리올 임팩트>, <뉴욕 레드불스>, <RB 라이프치히>, <레드불 잘츠부르크> 등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제시 마치는 한국 축구 대표팀 부임을 위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최종적으로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된다. LA=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우리 한국 축구와 인연도 있다. 2024년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차기 감독 후보로 마치와 협상을 진행했었다. 당시 박주호 전력강화위원 등이 그를 강력히 추천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후 캐나다로 향한 마치 감독의 성공을 보며,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그때 마치 감독을 선임했어야 했다”는 탄식이 쏟아지고 있다.
마치 감독의 철학을 관통하는 가장 유명한 문구는 'Empty the Tank(연료통을 비워라)’다. 이는 단순히 열심히 뛰라는 뜻이 아니라, 선수들 스스로가 팀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게 하는 리더십이다.
그는 문화를 구축하는 데 있어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강한 압박이나 헌신적인 수비는 훈련장에서부터 반복적인 습관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독일 프로 축구팀 시절부터 다져온 '고강도 전술(High-intensity football)'을 캐나다 대표팀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상대가 공을 받은 뒤가 아니라, 패스가 나가는 순간부터 압박하라"고 가르친다. 마치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강점으로 "사람을 믿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것"을 꼽는다. 마치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신이 선수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경기장 안에서 더 자신감 있게 움직이도록 독려한다.
그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여러 프로팀을 거치며 겪은 실패를 통해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기보다는 팀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한다. 그는 2030년까지 캐나다 대표팀과 장기 계약을 마쳤다.
지도자의 태도가 팀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지 증명해 낸 그의 행보를 보며, 대한축구협회의 안목이 다시금 아쉬워지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한국 축구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K-축구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누적해 온 난제들을 수술대에 올려 새로운 개혁안과 지도자를 선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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