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문화·스포츠
‘조선판(朝鮮版) 오만과 편견’으로 NYT 1위
한인 작가가 조선시대를 쓰는 이유
- 최이지수 인턴기자 (media2@koreatimes.net)
- Jul 09 2026 01:29 PM
허주은 신작 ‘Behind Five Willows’ 영어권 출판시장 주목 제인 오스틴 고전, 조선 문체반정 시대 배경으로 재해석 “한국사와 제인 오스틴, 내가 사랑한 두 세계가 만난 작품”
조선시대 금지된 소설을 둘러싼 오해와 검열, 그리고 사랑을 그린 한국계 캐나다 작가 허주은(June Hur)의 신작 Behind Five Willows가 영어권 출판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을 조선시대 한국을 배경으로 새롭게 풀어낸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YA 하드커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고 출판사와 저자 측은 밝혔다. 캐나다 대형 서점 인디고도 이 책을 “즉시 뉴욕타임스 1위 베스트셀러”로 소개하고 있다.
Behind Five Willows는 조선시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둘러싼 통제 속에서 금지된 소설을 필사하고 유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 캐나다는 이 작품을 “제인 오스틴에 대한 따뜻하고 로맨틱한 오마주”이자 “정부의 금서 정책에 맞서 비밀스럽게 싸우는 독자와 작가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지난 5월 28일 허주은 작가가 노스욕 공립도서관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조휘빈 기자
허 작가는 지난 5월 28일 노스욕 공립도서관에서 진행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이 책을 ‘오만과 편견에 살인을 더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미스터리를 주로 써온 그는 “내 책들은 대체로 어둡고 살인과 액션이 들어간다”며 “편집자가 ‘가볍고 포근한 로맨틱 코미디를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큰 도전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가 조선시대판 오만과 편견을 떠올린 배경에는 개인사가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한 허 작가는 13세 때 영어 수업에 어려움을 겪던 시절, 아버지가 건네준 오만과 편견을 읽고 “완전히 사랑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리젠시 시대 영국과 조선 후기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보였다”며 “결국 왜 이 둘을 합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허 작가는 이 작품을 “나의 옛 세계와 새 세계가 만난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역사와 제인 오스틴이라는 두 애정의 대상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사와 제인 오스틴, 내가 사랑하는 두 가지를 함께 담을 수 있어 이 책은 내 마음속에서 아주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핵심 설정은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다. 원작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무도회장과 네더필드에서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쌓지만, 조선시대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고 대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허 작가는 “서로 말하거나 바라보는 것조차 금지된 시대에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차라리 만나기 전에 먼저 사랑하거나, 깊은 우정을 쌓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Behind Five Willows는 조선시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둘러싼 통제 속에서 금지된 소설을 필사하고 유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펭귄랜덤하우스 캐나다 사진
여주인공 혜원은 금지된 소설을 베껴 쓰는 필사자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흑련’이라는 이름의 작가인데, 알고 보면 이 인물이 조선판 미스터 다아시에 해당한다. 혜원은 소설을 사랑하지만, 상대는 소설을 싫어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실은 그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의 작가라는 사실이 드러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오해에서 출발해 점차 깊어진다.
허 작가는 작품의 배경을 문체반정이 진행되던 조선시대로 잡았다. 그는 “사람들은 소설을 위험한 것으로 보았고, 소설이 사람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며 “소설을 유통하려면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베껴 돌려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책을 쓸 때마다 역사가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며 “이 작품의 중심은 사실 로맨스보다 한국사, 검열, 책과 문학에 대한 사랑, 그리고 비밀 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설이 오늘날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허 작가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통제하려는 이야기”라며 “지금도 책 금지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은 사람들이 어려운 주제와 질문을 탐색하고 씨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시대 책 문화에 대한 조사도 작품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허 작가는 “양반 여성들이 책을 빌리느라 파산할 정도였다는 기록을 봤다”며 “또 책 여백에 그림과 메모를 너무 많이 남겨 본문을 읽기 어려울 정도였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많지 않다고 느꼈다”고 했다. 필사자의 역할도 단순한 복사가 아니었다. 허 작가는 “당시 필사자들은 그대로 베끼기만 한 것이 아니라 편집하고, 꾸미고, 표현을 고치기도 했다”며 “혜원을 거의 출판사 편집자 같은 인물로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선택지가 제한된 조선시대 여성 혜원은 필사를 통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들어간다. 허 작가가 계속 조선시대 여성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조선시대 여성의 삶이 늘 궁금했다”며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은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동시에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내 독자 중에는 여성들이 많고, 많은 독자들도 과거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릴리 쳉 토론토 시의원은 축사를 통해 허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 출간을 축하하며 “한국계 캐나다인 자매인 허주은(June Hur)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휘빈 기자
북미 독자들에게 낯선 한국사를 영어 소설로 전달하는 일도 그의 중요한 과제다. 허 작가는 “영어로 쓰는 작가로서, 북미 독자 대부분이 한국사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늘 의식한다”며 “실제 역사 인물을 다룰 때는 최대한 정확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북토크 행사는 단순한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넘어 한국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진 자리로 꾸며졌다. 릴리 쳉 토론토 시의원은 축사를 통해 허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 출간을 축하하며 “한국계 캐나다인 자매인 허주은(June Hur)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행사장에서는 판소리 소리꾼 이상아씨의 공연도 이어졌다.
허 작가는 “3년 넘게 이 책을 작업했다”며 “이 책을 기다려준 독자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이제야 정말 세상에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조선의 금서와 필사자, 제인 오스틴의 로맨스, 그리고 북미 독자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Behind Five Willows는 한국사를 더 이상 낯선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독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옮겨놓고 있다.
www.koreatimes.net/문화·스포츠
최이지수 인턴기자 (media2@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