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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장난감처럼 나도 버려질까

“난 쓸모없어” 불안이 만든 불행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12 2026 12:18 PM

영화 ‘토이 스토리 5’의 제시


영화 '토이 스토리 5'의 장난감들은 버려질까 봐 불안하다. 이번에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여덟 살 보니가 선물받은 개구리 모양의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다. 릴리패드는 순식간에 보니의 시간을 차지하고, 우디가 떠난 뒤 무리를 이끌던 제시의 자리는 밀려난다. 이 시리즈가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큰 공감을 주는 것은 아날로그 장난감과 놀았던 세대라서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익숙하게 해 오던 일이 더 빠르고 능숙한 무언가에게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이 함께 건드려지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불안이 5편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1편에서 우디는 앤디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 자리를 버즈에게 빼앗겼다. 버즈 역시 자신이 특별한 우주 비행사가 아니라 대량 생산된 장난감 중 하나라는 사실을 마주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토이 스토리는 이후에도 매 편마다 비슷한 결의 불안을 다른 형식으로 풀어 냈다.
 


버려짐보다 아픈 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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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 스토리 5'의 주인공인 오래된 카우걸 인형 제시.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제시는 우디가 넘긴 보안관 자리를 맡아 보니의 방을 이끌고 있다. 보니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면서도 쉽게 말을 걸지 못하자 옆집 쌍둥이 집에 잠입해 살피기까지 한다. 그런데 딸의 소외를 보다 못한 보니의 부모가 릴리패드를 주문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보니가 릴리패드와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그렇다고 보니가 제시를 잊은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버려졌다면 슬퍼하면 될 텐데 애매함은 마음 둘 곳부터 없게 만든다. 제시가 릴리패드를 찾아가 따지지만, 릴리패드는 크게 맞서지도 않는다. 설계된 대로 보니가 친구를 사귀도록 돕고 있을 뿐이라고 답하고는 제시가 나오던 옛 TV 영상을 화면에 띄우며 제시가 아주 오래된 장난감이라고 덧붙인다. 릴리패드에 제시는 밀어낼 경쟁자도 아닌 그저 오래된 물건이었다. 적의보다 이 무심함이 제시를 더 아프게 했을 것이다.

이후 보니가 친구의 파자마 파티에 가게 되자 제시는 말 장난감 불스아이와 함께 보니의 가방에 몰래 들어간다. 보니는 가방 속 제시와 불스아이를 발견하고 반가워하지만 아직도 장난감을 갖고 노느냐는 친구들의 놀림에 수치심을 느끼고 둘을 차에 남겨 둔 채 릴리패드만 들고 파티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빠져나온 둘은 한 노부부에게 발견되고 첫 주인 에밀리가 오래전 제시의 몸에 적어 둔 주소 때문에 에밀리가 살던 집으로 보내진다. 지금 그 집에는 블레이즈라는 여자아이의 가족이 살고 있다.

그 집에서 제시는 잊힌 전자 장난감들을 만난다. 그들은 배변 교육용 장난감 스마티 팬츠, 위성항법장치(GPS) 장난감 아틀라스, 디지털 카메라 장난감 스내피로 블레이즈가 자라는 동안 쓰다가 지금은 치워둔 기기들이다.
 


쓸모없어짐의 공포가 밀려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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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 스토리 5'의 한 장면. 개구리 모양의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가 제시와 불스아이 앞에서 메신저로 친구 신청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어로 '낡았다'는 뜻의 obsolete라는 단어가 있다. '습관처럼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solere와 뿌리가 닿아 있는 말로, 어원을 따라가면 '익숙함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다. 한때는 분명 누군가의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이 다른 쪽으로 옮겨 간 상태. 실제로 갤럽은 기술 때문에 자신의 일이 낡은 것이 될까 봐 걱정하는 미국 직장인이 몇 년 새 15%에서 22%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런 불안을 일컬어 포보(FOBO·fear of becoming obsolete), 즉 뒤처지고 쓸모없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부른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과는 조금 다른,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진료실에서 하루에 몇 번씩 들을 때도 있는 불안이다.

제시는 낡은 전자 장난감들의 도움으로 보니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그런데 그룹 채팅에서 친구들이 여전히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본 보니는 기껏 집으로 데려온 제시를 두고 돌아선다. 제시는 방금까지 자신을 도운 기기들에 "너희는 쓸모없어"라는 말을 내뱉는다.

왜 제시는 하필 그 순간 그런 말을 했을까. 버려지는 경험을 연달아 하고 두려움이 가장 커진 순간이었다. 제시는 이미 에밀리로부터 한 번 버려진 적이 있기에, 낡은 장난감이 버려지는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먼저 선을 긋는 것이다. 내가 같은 부류로 묶이기 전에 밀어낸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투사라고 부른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의 감정을 바깥의 대상에게 돌려 놓는 방어기제다. '나도 쓸모없어지고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그대로 안고 있기가 버거울 때 마음은 그 공포를 눈앞의 상대에게 쏘아보낸다. 쓸모없는 것은 내가 아니라 저들이라고.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그 공포와 거리가 생긴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거리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제시는 곧 스마티 팬츠에게 사과하며 쓸모없는 것은 사실 자신이라고 울면서 털어놓는다. 쏘아 보낸 공포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진료실에서도 비슷한 말을 듣는다. 십 년 넘게 일한 직장인이 이제 막 입사한 신입에게 위협을 느꼈다고 했다. 신입이 인공지능(AI)을 능숙하게 다루고 빠르게 결과물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도태되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제가 이제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 순간에는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능력들이 아직 남아 있고 능력을 확인하던 방식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도 마음은 금방 전체로 퍼진다. 오래 쌓아온 시간이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온 의뢰가 '컨설턴트의 업무를 AI로 어떻게 대체할지'에 대한 컨설팅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없애는 방법을 자신의 전문성으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 실제 AI가 사람의 업무를 얼마나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지는 아직 논쟁 중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밀려난 것처럼 반응한다. 제시가 그랬듯 한 번 밀려 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 반응은 빠르고 강하게 나타난다.
 


나를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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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이 스토리 5'에서 블레이즈의 옛 전자 장난감인 아틀라스, 스마티 팬츠, 스내피가 불스아이와 제시를 도와주고 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왜 역할 하나가 바뀌는 일이 존재 전체가 무너지는 일처럼 느껴질까. 그 역할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설명해 온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나'라는 정체성이 '내가 하는 일'과 분리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렇다. 심리학자 마리 야호다는 일이 사람에게 돈 말고도 여러 가지를 준다고 보았다. 하루의 시간 구조, 사람과의 접촉, 공동의 목적에 기여하고 있다는 감각 같은 것들이다. 일을 멈추면 경제적인 변화뿐 아니라 하루의 루틴이 달라지고 관계의 통로가 좁아지고 내 이름 앞에 붙던 설명이 떨어져 나간다. 이것들이 한꺼번에 끊기면 사람은 자신의 가치 전체가 사라진 것처럼 느낀다.

이 불안에서 필자가 속한 정신의학 분야도 자유롭지는 않다. 요즘 유튜브 댓글에는 AI가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보다 낫다는 말이 심심찮게 달린다. 언제든 답해 주고, 지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 대체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과 의사의 일 중 상당 부분은 사람의 말을 듣고, 정리하고, 되돌려 주는 일이다. 그것만 놓고 보면 AI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사람이 가진 불안정성, 침묵, 머뭇거림 같은 것들이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역시 AI가 언젠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마음을 마주할 때 "당신은 가치 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대신 천천히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하나는 자기 가치의 근거를 한 곳에 몰아두지 않는 것이다. 자존감이 일과 성과라는 기둥 하나에만 얹혀 있으면 그 기둥이 흔들릴 때 사람 전체가 함께 무너진다. 그래서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것들을 일 바깥에서 떠올려 본다. 누군가의 친구라는 것, 무언가를 꾸준히 좋아한다는 것, 사소하지만 내가 맡고 있는 역할들. 진료 초반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오지도 않고 와닿지도 않는다. 그만큼 한 기둥에 오래 기대어 살아온 것이다. 돌아보면 우디와 버즈, 제시도 그랬다. 처음에는 하나의 쓸모에 자신을 걸었지만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친구가 되고, 무리의 리더가 되고, 낡은 장난감들의 곁을 지키는 존재가 된다. 이들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역할에 더하여 다른 자리들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38818135-28cc-4b79-b06a-6fcb2bf51a09.jpg영화 '토이 스토리 5'의 장난감 친구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다른 하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과 이미 일어난 일을 분리하는 것이다. 대체 불안의 상당 부분은 '나는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나는 이미 쓸모없다'는 결론으로 앞당겨 확정하는 데서 온다. 제시가 낡음을 곧바로 버려짐으로 여긴 것과 같은 구조다. 미래의 가능성과 현재의 사실은 다르다. 그 사이에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내리려던 판결은 한 박자 늦춰질 수 있다.

낡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괴롭다. 하지만 습관이 옮겨 갔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제시와 장난감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배워야 하는 것은 낡은 것이 고장 난 것도,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라는 사실 아닐까.

허규형 연세가산숲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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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oreatimes.net/주간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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