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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현장지성'이 무기다
안진호 ㈜아이디이노랩 대표이사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18 2026 02:09 PM

그래픽=정지연·Chat GPT
나와 같은 탁구장에서 운동하는 김 부장은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영업을 해왔다.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맥주잔을 기울이던 자리, 내가 인공지능(AI) 관련 일을 한다는 걸 아는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요즘 제안서를 AI로 쓰는데, 깜짝 놀랐어. 부하 직원한테 시키고 기다릴 것도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오더라고."
그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었던 건 AI가 뛰어나서만은 아니다. 거래처 담당자의 성격, 그 회사 특유의 의사결정 방식, 지난 협상에서 묻어난 미묘한 감정의 결. 무엇이 들어가야 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아는 20년의 안목 때문이다. 같은 도구를 쥐여줘도 신입사원은 같은 제안서를 만들지 못한다.
AI를 둘러싼 논의는 기술의 성능에 집중된다. 그러나 AI 기술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될수록 정작 중요한 질문은 달라진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신 "인간은 그 결과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이다.
AI의 답은 그럴듯하지만 현장의 복잡한 사정은 담지 못한다. 제안서라면 사람이 빈틈을 메우면 그만이지만, 판단까지 맡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 AI가 지어낸 가짜 대법원 판례가 소송 서면에 인용돼, 재판부가 판결문에 '존재하지 않는 사건번호'라고 못 박은 일도 있었다. 그럴듯함과 정확함은 다르다.
김 부장의 안목에 이름을 붙이자면 '현장지성'이다. 책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길러진 지성, 사람과 조직, 명분과 현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읽어내는 힘이다. AI는 데이터를 빠르게 연결하지만, 그 연결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는 일은 이 지성의 몫이다.
물론 현장지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뛰어난 안목도 도구를 쥐지 못하면 발휘될 기회조차 없다. 현직에서 뛰는 이들은 물론, 재취업과 창업으로 새 현장에 나선 신중년에게 AI는 경험과 안목을 증폭시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기술보다 안목이 중요하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기술을 손에 쥔 뒤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명제다.
다음 맥주 자리에서 김 부장에게 건넬 말도 정해두었다. AI의 초안을 받으면 한 번 더 되물어보시라고. "이 제안이 그 거래처에서 통하지 않을 이유 세 가지는?" 그 답의 빈틈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20년의 안목이 일을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그날 그가 놀란 것은 AI의 성능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말로 옮기기 어려웠던 자신의 감각이 도구를 만나 눈앞에서 형태를 갖추는, 그 낯선 경험이었을 것이다. AI 시대에 사라질 것과 남을 것을 가르는 선이 있다면, 그 선은 기술이 아니라 안목 위에 그어진다.

안진호 ㈜아이디이노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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