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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보자 순식간에 숲속으로”
철창 벗어난 사육곰, 진짜 곰이 됐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3 2026 12:18 PM
한국 농가서 구출 사육곰 28마리 미국·덴마크 등 해외 이주 새 삶 오랜 농장 생활 후유증 상당 극복 사람 기피 등 자연환경에 잘 적응
올해 6월 초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생동물 보호시설 TWAR(The Wild Animal Refuge)을 찾은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와 강재원 사회변화팀장은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시설 내부를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한국에서 건너온 곰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버스에서 내려 지켜보려 했지만 곰은 이미 숲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조 대표는 “평생 좁은 철창에 갇혀 사람이 오가는 환경을 피할 수 없었던 곰들이 넓은 공간에서 스스로 사람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고 있었다”며 “그만큼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야생동물 보호시설 TWAR에서 생활하고 있는 '글로리아'가 이름을 부르자 인공 굴에서 나오고 있다. 글로리아는 2022년 한국에서 사육곰 21마리와 이곳으로 이송됐으나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해 별도의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이곳에는 2022년 3월 한국 사육곰 농장에서 구조된 곰 22마리가 왔으나 2마리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 20마리가 살고 있다. 대부분은 전체 면적 40㎢ 가운데 최소 66만㎡의 자연형 서식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지낸다. 강 팀장은 “직원들이 차량으로 순찰하며 곰들의 행동과 먹이 양을 관찰하고, 사람이 접근하면 숨어버려 동작감지카메라를 설치해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글로리아’, 다리가 불편한 ‘오스카’, 관절에 문제가 있는 ‘루비’는 별도 공간에서 지낸다. 오랜 농장 생활이 남긴 후유증이다. TWAR을 운영하는 패트릭 크레이그 TWAS(The Wild Animal Sanctuary) 창립자 겸 대표는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평생 철창 안에 살다 보니 발에 원래 없어야 할 근육이 생기고 원을 그리며 걷는 곰도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정상적으로 걷는다”고 전했다. 그는 “상근 수의사들이 개체별 건강을 정기 평가하고 관절염이 있는 곰에게 보조제를 제공하며 기록을 남기고 있다”며 “첫 22마리가 안정적으로 지내는 걸 확인한 뒤 다음 구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별도 지원은 기대하지 않지만, 수출 허가와 출국에 필요한 행정 절차는 계속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단체는 지난 6월 덴마크 롤란드섬의 ‘누텐보르 사파리파크’로 6마리를 이송했다. 지금까지 해외로 이주한 국내 사육곰은 모두 28마리다. 또 영국 서퍽주의 동물원에 9월 중 사육곰 5마리를 이송할 계획이다.

덴마크 롤란드섬, 마리보시에 위치한 누텐보르 사파리파크에서 지내고 있는 사육곰의 모습. 동물자유연대 제공
해외로 떠난 곰들이 새 삶을 찾는 사이, 국내 사정은 다르다. 한국에서는 올해부터 사육곰의 소유·사육·증식과 웅담 채취가 금지되면서 40년 넘게 이어져 온 사육곰 산업이 제도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법 시행 직전까지도 웅담채취용 용도변경은 이어졌다. 지난해 웅담채취용으로 승인된 사육곰 96마리 가운데 실제 도살은 16마리였고 80마리는 법 시행 직전 사육용으로 되돌아갔다. 현재 국내 농가에는 210마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전체 사육곰 260마리 중 올해 말까지 174마리를 보호 조치하고 나머지는 내년 월악산국립공원(40마리)·해외 이송(50마리)·민간시설(20마리) 등 최대 110마리 규모의 추가 보호·이송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74마리는 기존 보호 중인 50마리에, 전남광주 구례 공영 시설·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자연적응훈련장·공영동물원 등 즉시 입식 20마리, 충남 서천 공영 시설(64마리)·강릉 민영동물원(30마리)·야생생물보전원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10마리) 등 연내 104마리를 더한 규모다. 174마리를 제외하면 86마리가 남는데 내년 계획(110마리)은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 예산 확보를 전제로 한 보호·이송 가능 규모라는 게 기후부 측의 설명이다. 기후부는 “예산 반영을 기획예산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올해 6월 덴마크 누텐보르 사파리파크로 보내진 사육곰들은 약 2만3,000㎡ 공간의 자연형 방사장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정부의 계획이 실제 구조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우선 당장 입식 대상으로 분류된 곰 일부는 농장주와의 매매 협상이 끝나야 농장을 떠날 수 있다. 시설이 마련돼 있어도 가격을 둘러싼 협상이 지연되면 구조 시점 역시 늦어지는 셈이다.
보호시설 부족으로 한 차례 더 거처를 옮겨야 하는 곰들도 있다. 올해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시설로 들어가는 19마리(자연적응훈련장 9마리·생태학습장 10마리)는 그곳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반달가슴곰 복원 과정에서 활용되는 시설에 임시로 머문 뒤 구례·서천 사육곰보호시설이나 공영동물원 등에 자리가 나면 다시 옮겨야 한다. 기후부는 “추후 보호시설이 마련되면 순차 이송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건너간 곰들은 전체 면적 40㎢ 가운데 최소 0.66㎢를 자유롭게 오가며 지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30마리를 보내기로 한 강릉의 민간동물원이 먹이주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과 기존 사육농가 2곳을 사육곰보호시설로 등록한 조치를 두고도 동물복지 측면의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전문 수의인력을 통한 건강관리와 정기적인 시설 점검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곰을 농장에서 빼내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송 이후 어떤 환경에서 어떤 관리를 받으며 살아갈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 대표는 “곰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이송을 결정해야 한다”며 “넓은 부지와 생태적 조건을 갖춘 해외 이주도 적극 고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정부가 당장 시설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건 이해한다”면서도 “예산 확보와 매매협상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곰들을 우선 보호할 추가 이행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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