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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인의 ‘자살 방조죄’ 걱정
죽음 자체를 원한 건 아니었다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Aug 29 2026 01:16 PM
조력사망 앞 상황은 달랐지만 모두 삶에 깊은 애착 지녔던 이들 못 견딜 고통에서 해방되길 원해
"내일 밸브를 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난해 7월 스위스에 도착한 A씨가 조력사망 전날 내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피자집을 운영하며 바쁘게 지내던 A씨는 3년 전 뇌출혈 수술 뒤 원인불명의 어지럼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 에세이를 읽고 다이렉트 메시지(DM)로 연락해 왔다. 나는 A씨를 그의 아파트 벤치에서 만났다. 그는 심한 어지러움으로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함께 스위스에 가는 동생이 법적으로 처벌될 우려는 없을지, 의사 인터뷰에서 혹시 거절당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짧은 만남 이후 우리는 친구처럼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는 고맙다며 나에게 머그컵을 선물해 주었다.

삽화=신동준 기자
조력사망 전날, A씨는 '숙소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다'고, '맛없는 송아지 고기가 38프랑'이라고 투덜댔다. 가슴이 뛰고 두렵다고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작별 인사를 보냈지만 답은 없었다. 나는 가만히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근이영양증이라는 희소병을 앓는 B씨는 스위스의 조력사망 기관 디그니타스 직원인 카린의 소개로 만났다. 회원 중에 한국인이 있는데 절차를 궁금해하니 내가 이야기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고, B씨의 연락처를 받아 통화했다. '혼자서는 비행기를 타고 긴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가족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동행한 가족이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작가님의 경험을 듣고 싶다'고 했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B씨를 만났다. 친구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온 그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고통을 차근차근 말했다. 2년 전 폐렴으로 중환자실 입퇴원을 반복한 이래 그는 디그니타스에 회원가입을 했다. 50대 중반, 가족과 지인들은 아직 이르다며 만류했다. 그 자신은 스위스에 가지 못하고 중환자실에 가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면서도,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면 망설여진다고 했다. 엄마가 스위스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도 깊은 고민과 몇 번의 번복이 있었다.
"망설일 만큼 망설이세요." 나는 B씨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는 얼마 전에도 욕실에서 넘어져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스위스행을 최대한 미루고 있다.
C씨를 처음 만난 건 2024년 가을이었다.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은 뒤 스위스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기를 원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상담사로 일하며 간호사들의 심리 상담을 주로 맡았던 C씨는, 누구보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햇살이 쏟아지던 어느 날, 노천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위었지만 밝게 웃고 있었다. 비니를 눌러쓴 그는 내게 빵 봉투를 한 아름 건넸다. "제가 빵을 좋아하는데 이제는 먹을 수가 없어요. 대신 작가님이 맛있게 드셔주세요."
다음 만남은 그해 겨울, 인왕산이 보이는 서촌에서 한 달 살기를 하는 그를 찾아갔다. 그때 우리는 산을 바라보며 샌드위치를 함께 먹었다. 나아져서가 아니라, 악화되었기에 먹고 싶은 걸 먹겠다는 감각이었다. 세 번째 만났을 때는 한층 더 여위어 있었다. 스위스 조력사망 기관에 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를 한다고 했다. 다만 노모가 마음에 걸린다고.
마지막 만남은 장례식장에서였다. 그는 2025년 봄, 서울의 호스피스에서 눈을 감았다. 가족은 스위스행을 조금씩 미루다가 몸 상태가 급속히 안 좋아졌다면서, 큰 고통 없이 갔다며 눈물을 보였다. 영정 속에서 환하게 웃는 미소는 처음 만난 날의 미소와 똑 닮아 있었다.
세 사람이 스위스행을 두고 맞닥뜨린 현실은 달랐다. A씨는 몸이 더 나빠지기 전에 겨우 도착했고, B씨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다. C씨는 출국을 미루는 사이 떠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공통적이다. 그들에게서 내가 본 것은 죽음에 대한 갈망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이었다. 조력사망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하지만 엄마를 포함, 내가 만난 환자 누구도 죽음 그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더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스위스에 갔거나, 가지 않았거나, 가지 못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묻게 된다. 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결코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도 A씨가 선물해 준 머그컵에 따뜻한 차를 마신다.
남유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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