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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는다”
【창간 55주년 특별기획: 캐나다 펜의 거장들과 소수계 언론의 미래】①
- 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
- Sep 02 2026 04:11 PM
국민 언론인, 피에르 버턴(Pierre Berton) 캐나다의 정체성을 펜으로 세운 저널리스트 한인 언론에 던진 메시지는 ‘기록의 책임’

UBC 역사 사진 컬렉션. 타자기 앞의 피에르 버턴. 사진 출처: 1941년 토템 연감
"한 국가의 정체성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그 땅을 일군 사람들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캐나다인들에게 '국민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로 추앙받는 피에르 버턴(Pierre Berton·1920~2004)이 평생을 관통하며 지켜온 신념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문 칼럼니스트, 방송인으로 활약한 그는 펜 하나로 캐나다라는 신생 국가의 정체성을 대중의 가슴속에 각인시킨 거장이다.
언론은 단순히 사실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정체성을 기록하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본보가 맞이한 창간 55주년 역시 캐나다 한인 이민사의 숨결을 기록해 온 자랑스러운 여정이었다.
캐나다 현대 언론과 대중문화의 뼈대를 세운 대표 언론인 3인을 조명하는 본보 기획 기사의 첫 번째 주인공은 딱딱한 역사를 대중 소설처럼 생생하게 풀어내며 캐나다인들의 자부심을 깨운 피에르 버턴이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의 아들, 언론의 중심에 서다
피에르 버턴은 1890년대 금광 열풍으로 뜨거웠던 유콘(Yukon)준주의 도슨 시티에서 태어났다. 금광 채굴꾼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에게 캐나다의 거친 자연과 역사는 관념이 아닌 '삶의 현장'이었다.
대학 시절 신문사 리포터로 언론계에 입문한 버턴은 불과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간지 최연소 편집장에 오를 만큼 비범한 취재력과 필력을 과시했다. 이후 '메클레인스(Maclean's)' 잡지의 편집장, '토론토스타'의 스타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며 캐나다 여론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역사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이야기꾼
버턴이 캐나다 언론·출판계에 남긴 가장 큰 족적은 "지루한 캐나다 역사를 가장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이다.
그가 집필한 캐나다 횡단철도 건설사 'The National Dream'과 'The Last Spike'는 발간 즉시 전국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TV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이민자 사회를 포함한 수백만 캐나다인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위대한 역사'를 일깨워주었다. 평생 5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그는 총독상(Governor General's Awards)을 3회나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피에르 버턴의 잊지 못할 일화
중후한 지식인이었던 그였지만, 대중을 사로잡은 비결은 특유의 파격과 재치, 그리고 거침없는 위트였다.
- 84세 국민 거장의 "대마초 마는 법" 생방송 특강
2004년,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달 전 84세의 버턴은 코미디 프로그램 'Rick Mercer Report'에 출연했다. 트레이드마크인 나비넥타이를 매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아주 세련되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대마초(마리화나)를 말아 쥐는 법을 시연했다. 침으로 종이 끝을 적셔 마감한 뒤 "저는 피에르 버턴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화나를 마는 법입니다"라고 던진 진지한 멘트는 전 국토를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캐나다 방송 역사상 가장 유쾌한 레전드 장면으로 남았다.
- 만화책 읽다 해고된 날, 대특종으로 복직하다
청년 기자 시절, 버턴은 편집실에서 한창 재미있게 만화책을 읽다가 데스크에게 적발되어 그 자리에서 해고당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오후, 버턴이 미리 취재해 두었던 대형 특종 기사가 터졌다. 그를 잘랐던 편집장은 몇 시간 만에 버턴을 찾아와 사과했고, 그는 하루 만에 당당히 복직했다.
- 캐나다인에 대한 명언: "흔들리는 카누 위에서의 로맨스"
버턴은 캐나다인 특유의 유연함과 예의 바른 국민성을 유머러스하게 비꼬아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캐나다인이란 흔들리는 불안정한 카누 위에서도 유연하고 정중하게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다."

UBC 역사 사진 컬렉션. 피에르 버턴이 1990년 그레이트 트래커 만찬에서 타자기 앞에 앉아 있다. 사진 래리 셔반 Larry Scherban
이민자 사회와 한인 언론에 던지는 메시지
피에르 버턴은 라디오 진행자, 퀴즈쇼 패널, 칼럼니스트로 수십 년간 활동하며 "언론인은 대중과 같은 언어로 호흡해야 한다"는 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창간 55주년을 맞이한 본보에 버턴이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바로 '기록의 책임'이다. 만약 지난 55년간 본보가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사투를 벌인 한인 1세대들의 삶, 블루어 한인타운의 형성, 한·캐 수교 및 주류 정계 진출의 역사 등을 한글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캐나다 한인 이민사는 주류사회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최근 본보가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과 체결한 지면 디지털화(아카이빙) 협약은 피에르 버턴이 강조했던 사료 의식의 현대적 결실이다.
본보의 펜 끝을 통해 기록된 한인 이민 55년의 역사는 이제 디지털이라는 옷을 입고 캐나다 전체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영구히 기억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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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사 편집위원 (gm@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