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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뜨락
김용출(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03 2026 11:51 AM
사람들은 살기에 바빠 동분서주할 때도 계절은 모르는 사이에 왕래하는 모양이다. 나는 집 뒤뜰 데크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 생각의 수레바퀴는 어느새 어릴 적 고향의 여름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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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머리에 이고 살던 시골의 한여름, 용광로의 열기를 뿜어내듯 마을 앞 강가의 자갈밭은 더위로 달아올랐다. 강물 소리조차 더위에 취한 듯 게으르게 흐르는 오후, 대나무 숲에 드리운 짙은 산 그림자를 본다.
여름은 온 세상을 진초록으로 만들고 들판은 온통 야생화 천지, 초가집 지붕 위에 박꽃이 피고, 저녁이 되면 모깃불 피워놓고 평상에 앉아 형이 들려주던 귀신 이야기에 몸이 으스스 떨려 저절로 납량이 되었던 어린 시절,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밤이면 개똥벌레의 현란한 반짝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와 있던 맑은 밤하늘의 달, 달빛, 무수한 별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을 헤아리다 다 헤아리기도 전에 고모의 무릎을 베고 잠들던 밤, 고향의 여름은 내 망각의 세월에 물을 퍼부었다.
한낮엔 느티나무, 참나무에서 매미울음 소리가 자지러졌지. 멀리서 우는 뻐꾸기 소리, 연꽃은 호수에 가득했다. 느닷없이 하늘은 빛을 잃고 천둥소리 울리고 비바람 쏟아지면 이어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 그렇게 여름도 몸살을 했다. 감기, 몸살을 하면서 아기가 크듯, 여름도 그것이 소임인 양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발가벗고 동무들과 어울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멱감던 강물, 포플러의 싱그러운 그늘, 농번기의 시름을 잊고 누워있는 황소, 이러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내 어릴 적 여름이라는 이름의 계절이다.
장면은 삽시간에 바뀌어 여기는 토론토, 내가 사는 작은 집이다. 어릴 적 그토록 아름다웠던 서정도 잊은 채, 현대문명의 포로가 된 도시의 여름을 보낸다. 덥다고 에어컨을 켜고, 냉방병에 걸리는 줄도 모르고 더위를 식히다 여름도 어느 사이 지나갔다.
가을 뜨락을 보면서 또다시 반복되는 세월과의 해후, 세월은 덧없이 잘도 가구나. 그러면 그만큼 인생도 늙어가는 것이려니. 뜨락엔 무궁화도 마지막 꽃잎이 애처롭게 가지 몇 개에 매달려있다. 화려했던 지난날은 순간, 어느 사이 고개 숙인 모습이 되었다. 코스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필 때의 단정하고 가냘팠던 모습은 감추어졌다. 가을꽃 국화, 곱고 탐스럽던 자태는 무서리에 맞아 머리 젖은 행색이 애처롭다. 고추도 상추도 들깨도 부추도 파장이 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텃밭에 내려설 때 그래도 여름동안 주었던 정을 잊지 말란다. 코스모스와 무궁화는 씨를 남기고 떠나고 부추와 상추는 주인의 입맛을 돋우지 않았느냐고. 노년이 누구나 만나는 과정이듯 계절의 오고 감이 섭리인 것을 감사와 사랑으로 떠나보내란다. 주고 떠나는 것에 고마움을 표하란다. 비록 다시 만날 기약은 없지만.
텃밭의 땅은 잿빛 살결을 드러내고 그 위로 낙엽이 뒹굴고 있다. 뜰의 잔디도 더 이상 자라기 싫단다. 기운이 다해서인가. 그 주위를 철없는 다람쥐만 사방을 휘젓고 다닌다. 깡패 새로 소문난 로빈도 보이지 않은 지 오래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지나가 버렸다. 주위의 소소한 것에 오래 내 마음을 주고 싶었는데. 가을 뜨락의 모습에 마음이 썰렁해진다. 나이와 함께 사색은 많아지고, 감회에 젖는 시간이 많다. 잠시 텃밭에 머물렀던 애정조차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잠시 피었다 시들고 질 것을 왜 피어나기를 할까. 피어나지를 말지. 무성했던 때를 뒤돌아볼 사이도 없이 꽃은 지고, 노닐던 새들조차 떠난 지금, 서늘한 가을바람이 잔디 위에 널린 낙엽을 훑고 지나간다. 싫지만 또다시 인생을 유추해 보아야 하는 시간이라는 듯, 저 말 없는 자연의 변화 속에 인생 무상이 낙엽처럼 서글프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이 말했다. 태어나지 않음이 가장 행복한 일이고, 태어났으면 속히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그다음 행복이라고. 그렇다. 인생 백 세를 노래한들 무슨 소용이며 천년의 갑절을 산들 무슨 대수냐. 영원의 낙을 누리지 못하고 다 한곳으로 간다고 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인생의 낙이라고 좋아하던 것은 밤의 한 경점처럼 끝나는 것을. 이 진리를 아는 것이 괴로움이라. 차라리 모르면 좋았을 것을.
가을 뜨락처럼 황량해지는 마음의 텃밭에서 인생의 허무를 밭갈이한다. 식물이야 내년을 기약한다지만 노년의 늙은 몸이 어찌 내년을 기약할 수 있으랴. 정녕 마음만 신산해진다. 애당초 텃밭을 가꾸지 말걸. 꽃나무도 채소도 가꾸고 심지를 말걸. 후회할 줄 알면서 왜 가꾸고 심었던가. 마음의 울림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간다. 짧았지만 주고 떠난 것들에 대한 감사는 깜빡 잊어버리고.
202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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