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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발병 스물넷의 딸

치료 회피한 부모... 사회가 ‘양지’로 이끌어야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06 2026 12:53 PM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영화관에 사람이 가지 않는 시대다. 그래도 최근에는 세계적인 대작들이 관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가운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흥행을 이어가는 작은 영화가 있다. 올해 7월 개봉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독립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9만여 명의 많은 관객을 모았다.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큰 반전도, 극적인 갈등도 없기에 재미와도 거리가 멀다. 그런데 모든 관객들이 몰입하게 되고, 영화가 끝난 후 다 같이 침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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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찍은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왼쪽부터 시계방향)과 누나 마사코, 어머니, 아버지의 옛 가족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의대에 다니던 스물네 살의 누나에게 갑자기 이상한 변화가 시작된다.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사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말을 한다. 조현병이 의심됐지만 의사이던 부모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한다. 이상행동의 범위가 집을 넘어서자 현관문에 자물쇠를 걸어 가두기까지 하지만, 그렇다 해서 질병의 진행을 멈출 수는 없었다. 동생은 부모님의 대응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따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신 그는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의 삶을 계속 촬영해 나간다. 그렇게 첫 발병 후 25년이 흐른 시점,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된 증세를 보인 누나가 결국 정신과에 입원하게 된다. 맞는 약을 찾은 뒤 3개월 만에 퇴원한 누나는 예전에 비해 편안한 표정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고 가족들과 외출을 하며 훨씬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 길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삶은 흘러간다. 나이가 들며 어머니와 누나를 떠나보낸 동생이 백발의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지며 영화는 끝난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관객 모두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부모는, 누나는, 동생은 각각 어떻게 해야 했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치료 대신 회피 택한 의사 부모

먼저 부모의 마음부터 들여다보자.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다른 직업도 아닌 의사들이 의대생 딸의 치료 시기를 놓쳤다. 그것도 25년 동안이나. 의사에 대한 기대를 놓지 못한 아버지는 20년 동안 의사 국가시험 문제를 풀게 한다. 옆에서 딸은 계속 망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막상 시급한 치료에 있어서는 부모가 서로 상대방이 바라지 않아서 할 수 없다며 계속 회피하기만 한다. 동생의 걱정을 전해 듣고 누나의 상태를 보겠다는 심리상담사의 제안에 ‘찾아보니 논문이 합리적이지 않아 보낼 수 없다’며 거절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는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안타까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섞인 마음에. 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비슷한 선택을 하는 보호자들을 적지 않게 봐왔고, 그 선택이 환자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도 목격해왔기 때문에 복잡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이해하기 힘든 모습들은 영화 속 부모가 특별히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매사에 합리적인 선택만 내린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거대한 스트레스 앞에서는 그 모습을 잃는다. 의사 부모가 조현병이라는 질환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것을 진정으로 수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버거워 ‘스트레스 때문에 잠깐 저러는 거야, 시간 조금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생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경우들이 참 많다.

또한 자녀와 자신을 충분히 분리하지 못할수록 이런 반응은 더 강해질 수 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인식이 더 강하다. 부모를 따라 의사가 되길 바랐던 딸의 발병을, 자신의 추락처럼 여기는 마음이 현실 직시를 더 어렵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딸의 관 속에 가족 세 사람의 이름이 함께 적힌 논문을 넣는 모습에서 이런 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수치심·죄책감 심어주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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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의 누나 마사코. 엣나인필름 제공

 

이런 심리적 요인이 불합리한 판단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나, 그렇다 해서 이를 절대 부모 개인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조현병이 아닌 암이었어도 같은 반응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테다. 조현병을 바라보는 사회의 오랜 편견이 이런 반응을 만든다. 조현병은 분명 심각한 질환이다. 19세기 말, 이 질환을 처음으로 구분한 정신과 의사 크레펠린은 평생에 걸쳐 진행하는 모습에 ‘조발성 치매’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의학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 환청과 대화하며 망상 속으로 점점 고립되어가는 사람을 바라본 이들은 얼마나 큰 공포를 느꼈을까.

지난 오랜 세월 인류가 선택한 대응 방식은 격리와 차별이었다.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라 배척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수천 년을 이어오며 사회 곳곳에 뿌리 깊은 편견으로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누나를 집 안에 가둔 부모님의 선택에 ‘자식을 지키려는 것’이라 평한 동생의 말은 부분적 진실이기도 하다. 특히나 수치심에 예민한 일본 사회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주변의 시선과 체면, 이른바 ‘세켄(世間)’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비난할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기에 이 영화가 일본에서 큰 흥행을 거두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일본과 비슷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모습들이 많이 있고,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게 됐다. 일본이 수치심을 강조하는 문화라면, 우리나라는 죄책감의 문화다. 질병을 개인의 나약함과 의지박약의 문제로 보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한다. 다른 질병들과 다름없이 신체 장기 중 하나인 뇌에 발생한 질병인데, 공감과 연민이 아닌 비난과 죄책감을 받아간다. 그러니 질병을 숨긴다.
 


개인 보완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1cb0d32c-891f-44cc-9edc-0f9f0c97c999.jpg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에서 누나의 조현병 발병 이후 부모님이 현관문에 채운 자물쇠. 엣나인필름 제공

 

물론 조현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포용만을 보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신과 의사인 나 역시 길에서 혼잣말을 크게 하거나 계절에 심하게 안 맞는 옷차림의, 그래서 치료받지 않은 환자로 추측되는 사람을 만날 땐 본능적으로 약간 거리를 두기도 한다. 다음 행동이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뉴스에 가끔씩 보도되는 강력범죄들도 대중의 공포심을 키운다. 하지만 잘 치료받고 있는 조현병 환자의 경우는 완전 다르다. 치료받는 환자의 강력범죄율은 일반인 집단보다 더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을 비난하고 편견을 더 키워 숨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처음 증상이 시작된 뒤 적절한 치료가 시작되기까지의 기간을 DUP(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라고 한다. 향후 예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로 이 DUP의 길이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유럽 및 호주 국가들보다 확연히 길다. 그 치료받지 못하는 기간 질병은 진행되고 환자의 뇌는 손상되며, 당연히 치료는 더 어려워진다.

반복해 말하지만 사람은 항상 합리적일 수 없다. 연약한 존재다. 그러니 개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지 말고, 개인의 연약함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선진국일 테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조현병 발생 시 치료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모두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맡기고 있다. ‘아니, 개인의 질병은 당연히 가족 내에서 책임지고 치료해야지, 무슨 소리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10초만 눈을 감고 상상해보자. 내 아이가, 배우자가 갑자기 환청을 듣고 피해망상이 생겨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병원을 가보자고 하면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정신병자로 만드냐며 소리 지르고 저항한다. 가족들이 합심하여 겨우 입원시킨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자신을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크게 원망하며 가족 간의 관계가 무너지는 경우도 흔하다.

DUP가 짧은 선진국들은 이럴 때 환자를 직접 찾아와 평가하고 치료를 설득하는 공공서비스팀을 갖춘 경우가 많다.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있거나 심각한 자기방임 등의 상태에서는 공공 위기대응체계가 환자의 이송과 입원 절차를 맡고, 이후 법원이나 독립 심사기관이 입원의 정당성을 심사하기도 한다. 치료 필요성을 알아채는 것부터 환자를 설득하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 필요한 경우 강제 입원 결정에 대한 부담까지 모두 개인에게 떠맡기는 우리 사회와는 분명 다르다.

만약 그런 시스템이 이 가족에게 주어졌다면 어땠을까.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그저 누나를 지켜보며 보내야 했던 너무나 길고 슬픈 시간이 조금은 다르게 쓰이지 않았을까.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가족에 대해서도, 주변의 이웃들에 대해서도,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성찰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개인의 몫만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이 무거운 질문에 우리 사회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답해야 할 시간이다.

김지용 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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