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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의 'AI 1년 유예'
한국 교육이 봐야 할 것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07 2026 01:35 PM
'영구' 아닌 '한시유예' 택한 뉴욕 순기능·위험 사이 정교한 경계 '학습 주도권' 지켜내는 게 핵심
최근 뉴욕시가 유아부터 초중학생까지 1년간 교실 내 인공지능(AI)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최대 학군의 결정이다. 스크린타임(전자기기 사용시간)도 2학년 이하는 금지하고, 3∼5학년은 하루 30분, 6∼8학년은 45분 이내로 권고했다. 고등학생에게는 AI 리터러시 수업과 교사가 감독하는 시범 프로그램만 허용된다. 교사도 승인된 도구로 수업을 설계할 수 있지만, 채점·상담·진급 판정 등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판단에는 쓸 수 없다. 장애학생과 다언어 학습자 지원은 예외다.

지난 8월 13일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이 뉴욕 시티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를 '기술 거부'로 읽으면 핵심을 놓친다. 뉴욕시가 택한 것은 영구 추방이 아니라 한시적 유예다. 기술의 침투 속도가 아동의 발달 속도를 앞지르지 않는지 점검하는 시간이다.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뒤늦게 깨닫고 각국이 청소년 사용을 법으로 제한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각성도 엿보인다.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질문은 무겁다. 새 기술이라는 이유로 교실에 먼저 들여놓고 부작용은 나중에 수습하는 방식이 과연 교육적인가.
유아와 초·중등 시기는 읽고 기억하고 추론하며 오류를 고치는 힘을 길러야 할 때다. 생성형 AI가 탐색을 돕는 도구가 아니라 정답을 내놓는 대행자로 쓰이면, 학생은 문제와 씨름하는 과정을 건너뛴다. 브루킹스연구소가 400여 편의 연구를 종합한 보고서도 아동의 무분별한 AI 사용이 득보다 실이 크다고 진단한다. 방금 낸 글조차 기억 못 하는 '디지털 기억상실'은 인류학적으로도 예사롭지 않다. 도구가 사고의 습관을 바꾼다는 신호다.
그렇다고 일괄 금지가 능사는 아니다. '기술을 잘 쓰게 하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는 반론도 있다. 뉴욕시의 한 전직 부시장은 금지조치가 교사와 학부모의 손발을 묶는다고 비판했다. 학교 밖에서 AI를 맘껏 쓰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격차가 벌어질 수도 있다.
두 축을 나눠서 봐야 한다. 생성형 AI의 문제는 사고 대행, 오류·편향, 개인정보 침해다. 화면 노출의 문제는 집중력·신체활동·대면 상호작용이다. 얽혀 있지만 처방은 다르다. 일괄 차단이 아니라 목적과 위험에 따른 정교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 학교는 AI를 막는 동안에도 답변의 오류와 편향을 가려내고 출처를 확인하는 '판별 교육'을 해야 한다. 사용법보다 판단력이 먼저다.
뉴욕시의 결정은 완성된 해답이 아닌 검증을 위한 실험이다. 그럼에도 'AI를 쓸 것인가'를 넘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디까지 쓸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평가와 상담처럼 인간적 교감과 전문적 책임이 본질인 영역을 AI에 넘기지 않겠다는 원칙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도 AI 디지털교과서와 AI 중점학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이제는 보급 속도를 혁신의 척도로 삼기보다 연령·교과·기능·데이터 수집 범위에 따라 허용 기준을 세분화할 때다. 성취도뿐 아니라 문해력·집중력·자기조절 능력, 교육격차와 교사·학생 관계까지 살펴야 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기술을 많이 쓰게 하는 것도, 아예 못 쓰게 하는 것도 아니다. 도구의 도움을 받을 때와 스스로 씨름할 때를 구분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다. 진정한 미래 역량은 기술을 빠르게 소비하는 능력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기기를 끄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내는 학습 주도권이다. 뉴욕의 실험이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위해 기술을 쓰는가.
김경달 고려대 미디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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