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다
‘출입 금지’가 없는 자연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Sep 13 2026 02:28 PM
카약 타고 누비는 섬 수도 스톡홀름 여행
'사유지 출입금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을 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팻말이다. 울창한 임야든 푸른 바다 위 무인도든, 땅 주인이 출입을 허가하지 않으면 발길을 돌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노를 저어 누군가의 개인 섬에 입도해도, 그곳에서 하루이틀 야영을 해도 처벌은커녕 법의 보호를 받는 나라가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군도 스모달라뢰 인근 섬의 울창한 숲 속에 작은 목조 건물이 보인다.
이 나라에서는 주거지로부터 반경 70m 안이거나 농작물 경작지가 아니라면 섬과 숲의 주인이 누구든 해수욕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만인에게 자연향유권, 현지어로 알레만스레텐(Allemansrätten)이 보장되는 북유럽의 스웨덴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26만7,570개 섬을 보유한 나라인 만큼 섬을 오가며 여가와 휴양을 즐기는 문화가 일찍이 발달했다. 날이 좋으면 배를 타고 나가 '오늘은 여기가 좋겠군' 하고 마음에 드는 섬에 내려 일광욕을 즐기는 낭만이 가능한 곳이다. 수도 스톡홀름부터가 섬으로 구성돼 있고 스톡홀름 주위 군도 지역에 3만4,316개 섬이 분포해 있어, 자연을 향유하기 위해 수도에서 멀리 떠날 필요도 없다.
카약을 타고 섬 수도 스톡홀름을 누비다

모터보트 한 대가 스톡홀름 군도의 섬과 섬 사이 물길을 지나고 있다.

현지인들이 스톡홀름 군도 일대 해역에 요트를 멈춰 세우고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자연향유권은 북유럽 국가의 핵심 정신이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경제적 권리보다 땅을 걸을 수 있는 태초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자연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다는 원칙에 기반한 이 권리는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일부 보장되고 있지만 북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적극적으로 보장된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자연향유권을 헌법으로 보장한다. 국민뿐 아니라 만인에게 보장된 태초의 권리로 보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도 같은 혜택을 누린다. 일부 보호종을 제외한 꽃, 버섯, 베리는 누구나 자유롭게 채집할 수 있다. 2박까지는 텐트를 치고 야영할 권리가 보장되며 모닥불도 피울 수 있다. 감시·처벌 없이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와 신뢰에 기반한 원칙이다.
자연향유권에 기반한 스웨덴의 휴양 문화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방법은 카야킹이다. 스톡홀름 군도는 외해의 거친 파도를 막는 천연 방파제로 기능해 섬과 섬 사이 바다는 잔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카약을 타본 경험이 없는 사람도 무리 없이 카야킹을 즐길 수 있다.
스톡홀름 시내에서 차량·배편으로 1시간가량 거리의 스모달라뢰(Smådalarö)에서 생애 처음 카약에 올랐다. 2인승 카누는 한 번 타본 적이 있지만 1인승 카약은 처음이었다. 작은 미동에도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통에 '지금이라도 내려야 하나' 걱정이 들긴 했지만 그도 잠시뿐, 어느새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스모달라뢰 인근 바다에서 여성 둘이 카야킹을 즐기고 있다.

스모달라뢰 고르 수변 사우나에서 달궈진 몸을 바다수영으로 식히고 있는 투숙객들.

스모달라뢰 고르의 수변 사우나. 스웨덴 수변 사우나는 붉은 목재로 짓는 것이 정석이다.
좌우로 노를 저을 때마다 수변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의 말소리도 잦아든다. 들리는 소리는 어디 앉았는지 모를 새의 지저귐과 이따금 수면을 가르는 자기 자신의 노 소리뿐. 계곡이나 하천처럼 흐르는 물에서 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신경 쓸 급류도, 갑자기 낮아지는 수위에 드러날 암초도 없다.
현지인들은 군도 지역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거점 삼아 카약으로 주위 섬과 바다를 탐방한다. 젊은 세대는 아무래도 섬집을 소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별장을 사용하지 않을 때 서로 대여해 주는 문화가 활발하다고. 현지 거처가 없는 외국인 관광객은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스모달라뢰라면 유명 휴양 호텔 스모달라뢰 고르가 대표적. 실내외 온수풀, 사우나 시설 등을 갖추고 있어 레저 활동 후 심신을 쉬기에 딱이다. 수변 사우나에서 한껏 열기를 머금고 바로 앞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스웨덴식 정통 사우나다.
바닷길로 방문할 수 있는 미술관

아티펠라그는 전시관 외부 공간 곳곳에도 작품(나무 뒤 사람 형상)이 숨어 있다.

아티펠라그 산책길 울타리에 숲으로 향하는 통로가 뚫려 있다.
카약과 사우나가 스웨덴의 섬을 즐기는 고전적인 방법이라면, 오늘날은 자연과 문화를 함께 즐기는 방식이 각광받고 있다. '섬 미술관' 아티펠라그(Artipelag)가 대표적이다. 스톡홀름 동쪽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시내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아기띠 브랜드 베이비뵨의 창업자 비요른 야콥손이 사재를 투자해 2012년 개관했다. 미술관 명칭은 아트(Art)와 아키펠라그(Arkipelag·군도)를 합친 조어다.
내부 전시는 유료지만 숲과 해변에 설치된 외부 조각 작품은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중간 울타리가 뚫려 있는 지점이 있다. 이것도 자연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설계다. 누구든 미술관 부지의 숲에서 산책하고 야영할 수 있도록 진입로를 만들어 둔 것.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정문은 육로를 향해 나 있지만 모터보트나 카약을 타고 해변으로 입도해 미술관을 방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시내와 바로 연결되는 육로 접근성이 좋아 방문객 대다수는 차로 오지만 바닷길을 이용하는 방문객도 꾸준하다고.

아티펠라그는 전시관 내부에 암석 지형이 튀어나와 있다. 마치 미술품처럼 안내봉이 설치돼 있다.

아티펠라그는 전시관 외벽은 검은 타르가 칠해진 나무로 마감돼 있다.
해로로 방문하면 바다에서는 미술관 건물이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인근 숲에 완전히 가려져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한 건축가의 의도라고. 건물 외벽은 검게 칠해져 있다. 전통적으로 목선에 방수용 타르를 먹이던 공법을 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바닥을 뚫고 올라온 거대한 암석이 눈에 들어온다. 부지에 원래 박혀 있던 편마암 바위를 뽑아내는 대신 그대로 남긴 것이다. 미술관은 이 바위를 '관람객이 보게 되는 첫 예술 작품'이라 소개한다. 지하 화장실에 가면 이 바위의 하단부를 볼 수 있다. 화장실 안쪽 벽으로 활용되고 있고, 반대편은 소규모 전시관의 벽면이다.
박물관·공원 밀집한 문화의 섬 유르고르덴

스톡홀름 유르고르덴 스칸센 직원이 전통 방식으로 모직물을 짜고 있다.

스톡홀름 유르고르덴은 스칸센 직원이 전통 복장을 한 채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스톡홀름을 구성하는 14개 섬 가운데 유르고르덴(Djurgården)은 본래 왕실 사냥터로 쓰이던 섬이다. 현재는 박물관과 공원이 밀집한 문화 관광의 섬이다. 대표적인 문화시설은 세계 최초의 야외 박물관 스칸센이다. 교사 출신 민속학자 아르투르 하셀리우스가 1891년 설립했다. 북유럽 전통 건축과 삶의 방식을 재현한 민속촌이라고 볼 수 있다. 외형만 재현한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옛 건물 150여 채를 매입해 이곳으로 통째로 옮겼다고. 한국의 민속촌처럼 옛 복장을 한 직원들이 당시의 모직물 짜기, 유리공예 등을 시연하며 질문도 받아준다.
하셀리우스는 스칸센 설립에 앞서 노르디스카 박물관도 설립했다. 스칸센이 삶의 방식을 체험하는 곳이라면 노르디스카는 유물 전시에 집중하는 박물관이다. 유물 하나하나를 따로 진열하는 대신에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 쓰인 물건을 한데 모아 당시 분위기를 재현한다. 가령 근대 공공주택을 재현한 전시실에서는 직접 '집'에 들어가 거실 의자에 앉아볼 수 있다. 네덜란드풍 르네상스 양식의 외관도 눈길을 끈다.

스톡홀름 유르고르덴 노르디스카 박물관은 독특한 외형으로 눈길을 끈다.
스톡홀름 유르고르덴은 노르디스카 박물관은 당시의 분위기와 공간감 구현을 중시한다.

스톡홀름 유르고르덴은 바사 박물관에 전시된 바사호.
같은 섬에 바사 박물관도 있다. 1628년 건조 후 첫 항해에 나서자마자 침몰한 17세기 군함 바사호를 통째로 인양해 전시한 박물관이다. 건조 당시 왕권을 과시하기 위해 특별히 크고 호화롭게 건조됐는데, 이 점이 화근이 돼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다에 가라앉았다고 한다. 침몰 후 333년 만인 1961년 스톡홀름 항에서 건져 올렸는데 선체의 98% 이상이 보존돼 있었다. 현대식으로 계산하면 1,210톤급 전함으로, 원형이 보존된 대형 목선 중 수령이 가장 오래됐다. 세계에는 바사호보다 오래된 목선이 다수 존재하지만 대부분 형체가 심하게 훼손돼 골격만 남았다.
스웨덴 하면 세계적 그룹 아바(ABBA)도 빼놓을 수 없다. 유르고르덴에는 아바 뮤지엄이 있다. 의상, 악기, 녹음실을 재현한 체험형 전시관이다. 같은 섬에 위치한 놀이공원 그뢰나룬드에서는 맘마미아 더 파티가 열린다. 뮤지컬 '맘마미아' 이후 시간대를 다루는 뮤지컬 공연으로 지중해식 식사를 곁들이는 디너쇼 형식으로 진행된다. 2016년 첫선을 보인 이래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곡 간 대사는 스웨덴어로 진행되나 아바의 노래는 전부 영어로 부른다.
스톡홀름=글·사진이한호 기자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