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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오피니언

“우리는 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황현수의 들은 풍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01 2026 11:46 AM


“우리는 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지난 늦여름, 토론토에 고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방문하여 한국 문화예술을 널리 알린 덕분에 이곳 동포들도 덩달아 위상이 높아진 듯하다. 8월 말에는 방탄소년단(BTS)이 <토론토 로저스 스타디움(Rogers Stadium)>에서 콘서트를 개최했고, 9월 중순에는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에 배우 설경구, 조인성, 조여정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고국의 많은 영화계 인사들이 매년 9월에 토론토 국제영화제(Toronto International Film Festival/TIFF)를 찾는 이유는 이 행사가 세계 영화계에서 매우 독보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칸, 베니스, 베를린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영화제로 꼽히는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북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칸영화제가 예술성과 작품성을 알아보는 무대라면, 토론토영화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검증받는 대형 마켓이자 축제의 장이다.

칸이나 베니스가 전문 심사위원들의 평가로 상을 준다면, 토론토 국제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관객상(People’s Choice Award)’은 오직 일반 관객들의 투표로만 선정된다. 이 때문에 “토론토 관객상을 받으면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수상 확률이 높아진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관객의 반응을 가늠하는 확실한 지표가 되는 데이터라 할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은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거머쥔 뒤, 바로 이곳으로 날아왔다. 그가 영예의 ‘에버트 감독상’을 받기 위해 무대에 오르자 수많은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이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내며 뜨겁게 축하했다. 이번에 수상한 ‘에버트 감독상(Ebert Director Award)’은 한국 영화계로서는 최초의 수상인데, 단순한 공로상을 넘어 ‘시대의 선구적인 영화 거장’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라고 보면 되지 싶다.

이창동은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청년기는 여느 서민 가정처럼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처음부터 메가폰을 잡았던 것은 아니며,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후 신일고등학교 등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전리>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분단과 도시화, 산업화가 남긴 깊은 상처들을 예리하게 그려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아냈다.

소설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지만, 점차 글방 속에 갇히는 순수 문학의 형식에 일종의 회의와 갈증을 느꼈다.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 부조리와 모순을 좀 더 대중적인 예술 매체인 영화를 통해 토해내고 싶었다.

1993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각본과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 후 여러 작품의 각본 작업을 거치며 영화 제작의 문법과 공식을 체득하게 된다. 현장의 고된 경험을 자양분 삼아, 1997년 첫 연출작 <초록물고기>를 세상에 내놓으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소설가로서 다졌던 단단한 서사적 깊이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연출력과 융화되어 마침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영화와 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하게 사회의 진실을 파고들어 온 예술가에게 참여정부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건넨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창동을 초대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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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은 2026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인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시> 등이 그의 작품이다. AP통신

 

그는 장관에게 지급되는 관용차와 기사를 정중히 사양한다. 취임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 캐주얼한 차림으로 지프 형태의 레저용 차량을 직접 몰고 청사에 들어서다 입구를 지키던 청원경찰들에게 제지를 당한다. 청사에 장발의 자유로운 예술가 풍모를 한 사람이 들어가려 하자, 입구에서 청원경찰이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 여기 장관이요” 하니, 당연히 농담이거나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실랑이가 벌어지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를 알아본 직원들이 서둘러 나서면서 해프닝은 끝났다. 그의 서민적이면서도 엉뚱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단면이다.

사실 그는 전형적인 행정 관료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예술가로서의 기질과 확고한 철학적 소신이 있었기에, 정치와 행정의 거친 현실 속에서 적지 않은 고뇌와 부딪혔을 것이다. 이 감독은 훗날,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는 깊은 애정과 신뢰를 품었으면서도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비판적 시선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의 시나리오는 흥미롭거나 자극적 사건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1999년의 <박하사탕>, 2007년의 <밀양>, 2010년의 <시> 등 그의 작품은 사회의 폭력과 모순을 슬프고도 찬란하게 스크린에 녹여낸다.

8년 만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 전반이 극심한 불황과 제작비 급등을 겪으면서, 투자배급사들이 수익성이 확실한 상업 오락 영화 위주로만 지갑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창동 감독의 작품도 충무로 투자사들에게 “흥행 보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선뜻 제작비를 지원받지 못했다. 국내 자본만으로는 영화를 완성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 손을 내민 건,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였다. 그는 외국 자본의 플랫폼 진출을 싫어 했었다.

칸과 베니스를 매료시킨 세계적인 거장마저 국내 투자자들에게 외면 받을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한국 영화계의 제작 생태계가 얼마나 메마른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optimize.jpeg<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의 삶을 다룬 영화다. 설경구, 전도연, 조여정, 조인성 등의 개성 있는 배우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나, 공감하지 못하는 부조화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넷플릭스·연합뉴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설경구, 전도연)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려는 감독 부부(조여정, 조인성) 간의 미묘한 거리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영화는 4인의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우리는 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난 9월 중순, 토론토영화제 기간을 통해 북미 관객들에게 최초로 선보인 이 작품은, 다가오는 11월 초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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