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1km의 마라톤
박엘리야(문인협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Oct 01 2026 12:00 PM
새벽 4시에 알람을 해두었지만, 눈을 뜨니 3시 52분이었다.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이불에서 나오자,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세수와 양치를 천천히 하고 전날 미리 준비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깨끗하게 빨아 둔 운동복 위에 겨울 파카와 긴 바지를 겹쳐 입고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가는 길이 한산했지만, 대회장에 도착하니 노랫소리가 새벽어둠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행사장 텐트에 들어가 번호판을 받고 배에 고정했다. 547번이었다. 마라톤이 시작할 때까지는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짐을 맡기러 텐트 밖으로 나가니 검푸른 하늘 위로 붉은빛이 피어나고 있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고 음악도 힘찬 노래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해 왔던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출발 10분 전이었다. 시월의 새벽 공기에 허벅지가 빨개졌다. 출발선에 섰고, 다리가 출발하기도 전에 심장은 이미 달리기를 시작한 듯했다.

Chat GPT 생성 이미지
시작을 알리는 전자음이 울렸다. 나이아가라 폭포 마라톤이라 쓰인 배너를 지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시작이다. 날이 점점 밝아 오는 것과 함께 인간 구름이 앞으로 흘러갔다. 얼마 가지 않아 1km라고 써진 간판을 만났다. 아무리 긴 책에도 첫 장이 있듯이.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1km를 지나갔다. 마라톤을 달리는 것은 사실 특별한 작업은 아니다. 1km에 1km를 쌓는 것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앞으로 이렇게 정확히 1km씩만 달리다 보면 아무리 긴 길도 결국 끝이 난다. 그 순간 나는 1km와 2km 사이의 어느 지점을 달리고 있었고 나머지 구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의 코스는 나이아가라 폭포 밑에 있는 래피드뷰 공원에서 시작해서 폭포 근처까지 3km를 달린 뒤 공원으로 돌아와 남쪽으로 길게 내려왔다가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저 멀리 폭포가 만든 물안개가 하늘로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고 해 뜨는 나이아가라를 보기 위해 일찍부터 폭포를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요일이든 새벽이든 폭포는 시간도 날짜도 괘념치 않고 웅장하게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새벽에도 낮에도 밤에도, 내가 볼 때도 내가 보지 않을 때도, 폭포는 어김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폭포에는 해가 뜨고 지는 게, 누가 보거나 보지 않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느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끝없이 쏟아내는, 기적 같은 장면이 쉼 없이 벌어지는 폭포를 보고 있자니 커다란 우주를 생각할 때처럼 아득하고 의아했다. 달리기는 내게 그런 아득함과 의아함에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까마득한 세상과 그 속의 나를 이해하고 싶었던, 미미한 자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달리기라는 단순하고 질긴 행위 속에는 내 생에 대한 어떤 이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5km가 넘어가자, 정면에서 뜨는 태양이 눈을 부시게 했고 잠시 눈을 감거나 바닥을 보며 달렸다. 어쩌면 나도 질끈 눈을 감아 버려야 했을까. 뜨거운 태양 속에 담긴 진실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고개를 돌려 다른 데나 쳐다보며 주어진 시간을 편하게, 소중하게 보내야 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달렸던 많은 시간 속에 아무런 가르침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주저하고 의심했다. 후회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달리는 길의 오른쪽에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흘러 들어가는 깊은 강물이 고요하게 흘러갔고, 왼쪽으로는 집들이 줄지어져 있었다. 집 앞에 심어져 있는 노랗고 빨간 가로수가 길에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새벽부터 달리는 주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 갈채에 힘을 얻어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10km가 지나고 20km에 다가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중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 그간 달려왔던 길은 어찌나 길던지. 35km가 넘어가자, 힘이 빠져서 더욱 길게 느껴졌다. 지친 몸은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이 드는 것도 이런 걸까. 지친 몸으로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반복만 하게 되는. 나는 달리고 있는 지금을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인지하고 싶었다. 달리기를 시작했던 간절한 마음을 숨 쉬는 순간 내내 간직하길 바랐다. 허리를 다시 세우고 남은 거리를 향해 중얼거렸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마지막 1km가 남아 있었다. 마라톤 초반 1km와 후반의 1km는 모두 같은 1,000m다. 다행히 길어지지도 않고 아쉽지만 짧아지지도 않는다. 내 바람과 신념, 그 어느 것에도 상관이 없을 정확한 1km였다. 그 정확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걸음에 한 걸음을 쉬지 않고 더하는 일뿐이다.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건 상관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단순하고 질긴 행위를 통해 내게 남는 건 달려야 했던 열망과 그에 담은 나의 노력이었다. 앞을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디뎠다.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