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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셔츠 데이(Orange Shirt Day)
권천학(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원예진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
- Oct 01 2026 01:02 PM
9월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오렌지색 티셔츠를 챙겨 입는다. 반팔이라 좀 추울 것 같아서 긴팔의 짙은 오렌지색 티셔츠를 먼저 입고 밝은 오렌지색 반팔티셔츠를 껴입는다. 티셔츠의 앞면에는 ‘Every Child Matters’(모든 어린이는 소중하다)라고, 뒷면에는 ‘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의 날)이라는 말이 날짜와 함께 프린트되어있다.
9월30일은 캐나다의 연방공휴일인 ‘진실과 화해의 날(National Day for Truth and Reconciliation)'로 2021년부터 매년 9월 30일에 시행되는 법정공휴일이다. 법정공휴일이라 해서 캐나다의 모든 기관들이 쉬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법정공휴일과 온타리오 주정부의 법정공휴일은 별개다. 연방정부의 공휴일이지 온타리오 주정부의 공휴일은 아니다. 연방정부의 9개 법정공휴일에 온타리오 주정부관할의 기업이나 기관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온타리오 주정부 관할의 기업이나 정부기관이 반드시 유급휴일로 정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토론토도 여기에 해당된다. 토론토의 일반기업이나 학교 우체국 은행 시청... 등이 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방관할 사업장만 법정공휴일로 유급휴가일로 적용받을 뿐 토론토의 일반기업의 근로자들이 자동으로 유급휴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식구들 모두가 여느 날과 같이 직장으로 출근하고, 학교로 등교했다.

티셔츠의 앞면: ‘모든 어린이는 소중하다’ 할머니의 마음이 배어나온다. 이하 사진 출처 권천학 작가
1973년 9월30일 아침, 6세 소녀 필리스 웹스타드(Phyllis Webstad)가 기숙학교에 첫 등교하는 날이다. 할머니는 손녀의 첫 입학을 축하해주려고 미리 준비하여서 고이 간직해온 주황색셔츠를 꺼내어 입혀 보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 등교일이다. 그러나, 등교하자마자 옷을 빼앗기고 학교 측에서 지급하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필리스 웹스타드 만이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원주민 아이들의 머리를 자르고, 원주민 식의 이름을 영어로 바꾸기도 하고, 평소에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적 표현을 금지당했다. 동화정책의 일환이었다. 피지배국가의 국민들의 정체성을 없애려는 지배국가의 조직적인 정책은 이른 바 ‘문화적 동화 정책(Cultural Assimilation)’이라는 명분으로 시행되었다. 일제치하의 우리도 그랬다. 창씨개명을 하고 한국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해야 했고... 폴란드가 프로이센(독일)의 지배를 받을 때도 강제 독일화 강제 독일화(Germanization)를 당했고,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땐 강제 러시아화(Russification)를 당했다. 지배당하는 나라의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하는 비참한 역사의 상처이다.

티셔츠의 뒷면: 진정으로 진실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훗날, 필리스 웹스타드는 증언했다. “That orange shirt was taken from me, and I never wore it again.” “나는 그 주황색 셔츠를 빼앗겼고, 다시는 그것을 입지 못했다.” 첫 등교일, 얼마나 설렜을까. 또 가난한 할머니가 애써 마련해 준 그 주홍색 티셔츠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기숙학교의 비리와 처참함이 밝혀지고 원주민 학대에 대한 잔혹함도 밝혀지면서 그 끔찍함에 사람들은 놀랐다. 원주민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s)에 보내어져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했고, 언어와 문화를 억압당하면서 인종적 학대와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 질병에 무자비하게 내팽개쳐지고, 음식조차 굶주려가면서 무참히 단체로 죽어나가야 했던 아이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역사의 행간에 묻히고, 가면에 가리워진 인간의 위선과 잔인함의 참상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경악했고,... 오래 동안 짓밟혔던 분노와 억울함이 드디어 ‘진실과 화해’라는 명제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필리스 웹스타드가 빼앗긴 그날이 9월30일이 되고, 빼앗긴 그 주홍색 셔츠가 ‘Orange Shirt Day’의 상징이 되었다.
내가 고교생일 때였다. 아직 졸업반이 아닌데도 일찍부터 대학에 갈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이었다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었지만 딸이었기 때문에 그 걱정부터 앞섰다. 학비도 문제고 서울에서 살아야하는 하숙비도 문제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영어사전을 뒤지다가 우연히 ‘boarding school(기숙학교)’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학비와 숙식이 제공되는 공립학교라는 설명이, 마음에 콱 박히면서 그때부터 캐나다라는 나라는 꿈의 나라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육십이 넘어서 캐나다에 이민 와서 살게 되었고, 나이 들어 노년이 되어 가는데, 언젠가부터 밝혀지기 시작하는 기숙학교의 비리와 기타 백인들의 학대와 무모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비참함이 밝혀지는 사이 문득, 그때 사전에서 보았던 지상천국 같은 그 기숙학교의 실체가 바로 그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학교는 19세기 후반부터 1996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파헤쳐진 것도 많지만 또 얼마나 묻혀있을지 모를 일이다. 캐나다에서의 원주민 학대는 이제 끝났겠지만 그 마음의 상처는 쉬 닦이지 않을 것이다. 그저 품고 있을 뿐. 세계에는 아직도 짓밟히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지금 꿈의 나라에 나는 살고 있다. 그런데... 마치 잘 포장된 선물상자 속에 썩은 과일이 들어있는 것과 같았다.
진실과 화해! 그 명제를 이끌어낸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나마 대단한 용기가 감사하다. 그나마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담은 몸짓 중의 하나일 뿐이다. 진실과 화해가 용서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처를 품고 있을 뿐이다. 그 아픔을 진실로 공유하고, 진정으로 죄스러워 하며, 모두 함께 갈 때, 비로소 화해는 실현된다. 아팠던 그들의 가슴에 오렌지색처럼 환한 빛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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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진 인턴기자 (press1@koreatimes.net)